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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회의 사무총장·디렉터스 컷 대표 이현승 감독
사진 오계옥이영진 2003-12-31

¨혼자 영화 잘 만든다고 영화계가 잘 돌아가진 않지¨

감투가 많으면 심신이 고달픈 법이다. 영화계에서 그런 인물을 꼽으라면 이현승 감독을 빼놓을 수 없다. 중앙대학교 영화학과 교수. 영화인회의 사무총장. 광주국제영화제 부집행위원장. 미쟝센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 디렉터스 컷 대표 등등. 굵직한 것만 10개 가까이 된다. 그러니 본인은 어딜 가든 영화감독이라고 소개한다지만, 다들 언제쯤 영화 찍느냐고 닦달이라고.

충무로 대소사에 그가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2001년 여름부터서다. 영화인회의 사무총장 직을 시작으로 스크린쿼터, 스탭처우개선 등의 현안들을 풀기 위한 자리에 영화인들을 끌어들이느라 바빴다. 특히 올해는 <여섯개의 시선> <이공> 등의 옴니버스 프로젝트을 꾸리느라 몸이 두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을 터. 학생들의 답안 채점하느라 바쁘다는 그를 약수동 시장통의 한 횟집에서 만났다.

직위가 많다. 몇개나 되나.세어본 적이 없어서. 옛날에 사기꾼들 보면 이름 뒤에 무슨 협회장, 무슨 대표 쭉 늘어놓지 않나. 흡사 그런 거지. 연말 돼서 각종 행사에 참석하느라 몸이 여간 고생이 아니다. 지난주 내내 술이었다. 새벽 1∼2시까지 버티다가 다음날 술자리를 위해서 빠져나오기를 반복했다.

<여섯개의 시선>의 총괄 프로듀서로, 또 <이공>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는데.국가인권위원회 남규선 과장이 민가협 총무하던 시절에 홍보물 같은 거 요청하면 내가 감독들 연결해주고 그랬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맨먼저 박광수 감독 만나서 이 얘기 저 얘기 하다가 옴니버스 프로젝트로 가자고 한 것이고 이후에 이진숙 프로듀서랑 같이 감독 섭외해준 것 정도. <이공>은 꾸리는 감독들이 영화아카데미 9기인데 중간 기수라 누가 해라 마라 하기가 힘드니까 옆에서 도와줬던 거다. 근데 (장)준환이는 뮤직비디오 찍느라, (이)재용이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끝낸 지가 얼마 안 돼 못하게 됐고 내가 하게 된 거지. 난 바빠서 안 하려고 했는데.

직접 연출한 은 반응이 좋던데. 관객상 있었으면 내가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다들 비주얼 버리고 가니까 잘된다고 하더라. (웃음) 제자의 단편 중에 창 밖에 지나가는 커플들 보면서 품평회하는 게 있었는데 거기서 시작했다. 보여지는 관계와 실제 관계를 대비해서 간극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반응이 기대보다 좋더라.

디렉터스 컷은 올해가 벌써 6회째다. 연말에 주목받는 행사가 됐다. 해보자고 했던 건 유영길 촬영감독님 영결식장에서였는데. <네온 속으로 노을지다> 끝내고 난 뒤 고민 끝에 다시 영화하자고 맘먹고 그 자리에 갔는데. 나야 조감독 시절부터 성장했으니까 두루 아는데 다른 친구들은 서로 잘 모르더라고. 뻘쭘하게 아는 이들끼리만 몰려다니고. 입봉하는 케이스도 다 다르니까 그랬겠지. 그런 거 보면서 김성수, 박찬욱 감독 등하고 모임을 만들자고 한 것이 지금까지 왔다.

여러 일 하다 보면 전보다 축의금 낼 곳이 많지 않나. 액수도 늘어났을 테고. 그거야 좋은 일이니 뭐 상관없는데. 사적 만남은 줄고, 공적 만남만 느는 게 좀 그렇다. 여러 사람들 모으고 일 추진하다 보면 아무래도 부탁을 많이 하게 되는데 나중에 그 사람들이 내게 부탁하면 안 들어줄 수가 없다 보니까 또 맡게 되는 것이고. 내가 무슨 정치인도 아닌데, 어디 가서 잠깐 인사하고 악수하고 빠져나오고. 지난번에 어떤 술자리에 늦게 갔는데 미리 와 있던 차승재 대표가 그러더라. 이현승 감독 왔으니 이 술자리도 영화계 모임으로 인증받았다고.

의외로 강성이고, 다혈질이다. 말싸움 끝에 가끔 몸싸움에 나서는 것도 봤고. (웃음) 이춘연 이사장이 전에 말리느라 힘들다고 한 적도 있다. 평소에는 천사다. 근데 아니다 싶으면 뒤집어진다. 현장에서도 나 때문에 놀라는 친구들 많다. 준비할 때는 웃다가, 그런 일 있으면 혹독하게 몰아붙이니까 충격을 받는 건데. 사실 감독들 중에 노멀한 사람 못 봤다. 단 한명도. 개성들이 다 있고 성질이 있으니까 현장에서 버티는 거 아닌가.

<씨네21>에 싣진 못했지만 전에 장상 총리 지명자의 인준 부결을 시민단체들이 지지한 것과 관련해 비판 글을 보낸 적이 있잖은가. 단순하게 말하면 여성 편을 든 건데. 얼마 전 <여섯개의 시선>과 관련해서는 여성단체들로부터 항의를 받기도 했다. 그땐 좀 답답했다. 앞의 건은 내막이야 잘 모르지만 남자였다면 그렇게 몰아붙이지 못했을 것이다. <여섯개의 시선> 때는 정재은 감독이 만든 <그 남자의 사정> 때문이었는데 사실 이 영화가 청소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이들의 신상공개를 반대하다는 게 아니라 그들의 인권 또한 한번 생각해보자는 것 아닌가. 토론 등을 통해서 사회적 여론 환기도 가능할 텐데 그냥 성명서 뿌리고 비판하고 사라져버렸다는 말을 듣고서는 이런 정도밖에 안 되나 싶었다.

올해 영화인회의 활동은 이전에 비해 위축된 듯하다. 이전에 너무 많은 일을 떠맡았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눈에 띄는 활동은 없었다. 발표는 안 했지만 하반기에 조직 개편을 좀 했다. 정책위원회를 제외하고 여타 위원회들은 소모임 형태로 축소했다. 위원회는 필요할 때마다 세팅할 계획이다. 유연성 있게. 또 연구인력을 강화해서 영상산업정책연구소를 부설로 만드는 것도 추진하고 있다.

영상산업정책연구소의 경우 영진위의 정책연구 기능과 어떤 차별점이 있나. 영진위의 정책팀은 실에서 사무국 산하 팀으로 격하됐다. 실무적 뒷받침만 하는 셈이다. 연구소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느꼈던 건 올해 쿼터 관련 회의에 나가서부터다. 미국쪽에서 쿼터 폐지를 주장하다가 이제는 인정한다, 일수를 조정하자고 압박해왔는데 우리는 효과적 대응을 못했다. 그걸 못하니까 문화주권은 지켜져야 한다는 동어반복을 했었다. 실제로 쿼터가 업자들을 위한 것이지 관객을 위한 것이냐는 내부 비판에도 적절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동안 장기적인 전망 아래서 추진됐어야 할 심도 깊은 연구가 부재해서다. 지금부터서라도 그걸 떠맡을 기구가 필요해서 얼마 전까지 영화진흥위원회쪽에 제안을 했었는데 예산 지원 등에 있어 아직은 여력이 안 된다고 해서 영화인회의가 먼저 운을 떼보자고 나선 것이다.

예산 확보가 관건 아닌가. 여기저기 뛰어다녀야겠지. 영상산업이라고 하는 게 다양한 프로젝트로 확장이 가능하다. 주무부서인 문화관광부 외에 여타 부서에서도 관심을 갖고 있으리라 본다. 안정적인 환경 마련에 주안점을 둔 것은 연구자들이 맘놓고 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사실 명망가들의 활동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정책 공부하는 친구들이 해줘야 하는데 언제까지 그들에게 자원봉사를 강요할 순 없다. 이제는 한국영화산업이 가내수공업은 아니잖나. 팔고 남은 걸 들고 오는 게 아니라 우리 마을에 도자기가 몇개 필요하고 수요는 얼마나 예상되고 또 취향은 어떻고 그걸 알아야 하는 단계가 됐다. 또 필요한 게 10개라면 어떻게 만들어야 한다까지. 그런데 이 일은 만든 사람한테서만 맡겨놔서는 안 된다는 거다. 전문적인 인력이 나서서 섬세한 모니터링을 해야 한다. 성명서 내는 것보다도 변화나 움직임을 진단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한 때다. 영화인회의 내에 고충처리위원회 같은 별도기구를 만들어 스탭 처우를 개선하고 영화사간 갈등을 중재할 수 있는 역할도 할 계획이다.

<시월애>(2000) 이후에 상업영화 연출은 손을 놓은 상태인데. 한다, 한다 했던 김추자에 관한 시나리오는 아직 정리 중이다. 예산이 많이 필요하기도 하고. 그 전에 한국영화 평균 제작비를 넘지 않는 영화를 내년쯤에 들어갈 계획이다. 장르는 에로틱 미스터리 스릴러. 버디 무비라고 할 수도 있고.

언론과 접촉이 많은 인사 중 한명이다. 그만큼 불만도 많을 텐데. 지나친 온정주의도 문제고 선정적인 접근도 문제다. 인신공격에 가까운 글을 고려없이 싣는 경우도 많다. 관객과 작품 사이의 매개자 역할을 충실히하나 묻고 싶다. 감독이 그래서 좋다. 영화 한편 하고 쉬는 동안 반성도 많이 하고 재충전도 하고 그런다. 그런데 기자들은 매일 쓰고, 매주 쓰고 그런다. 타성에 젖을 위험이 크다. 재롬 스톨니츠라는 사람이 그랬잖나. 평론은 실제로 가설이고, 가설이야만 한다고. 교조적 판단을 내리는 건 지양해야 할 것 같다. 작품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반면 너무나 좋은 글을 쓰는 것도 좀…. 글에 현혹되면 독자들이 정작 영화를 제대로 못 본다.

그러한 비판의 화살을 영화계 내부로 돌려보자. 눈앞의 것만 보고 가면 매번 위기와 불안의 굴레를 벗지 못한다. 조직만 놓고 말하자면 제작가협회는 좀 반성해야 된다고 본다. 힘도 있고 많은 활동을 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곳인데 제대로 못하고 있다. 사무실이 없어 전 회장이었던 유인택 대표는 차 뒤트렁크에 현판을 싣고 다녔다더라. 산업적인 핵심 조직이 돼야 하는데 회원사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이뤄지지 않는 것도 아쉽다. 나 혼자 영화 잘 찍고 잘 만들면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제작자뿐만 아니라 감독도 마찬가지다. 김소영 선생이 <씨네21>에 차이밍량이 표 팔더라고 쓴 걸 봤는데 그런 상황은 대만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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