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정말 세다. 아무리 바람 많은 제주도라지만, 따뜻한 햇볕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동네 깡패들과 대적해 서 있는 배우 김주혁의 셔츠 차림이 스탭들의 푹신한 점퍼와 비교하니 더욱 추워 보인다. 그가 첫 주연을 맡은 영화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은 제주도 법환리라는 동네 공터에서 촬영이 한창이다. 이 영화는 통장도 아니고 이장도 아니고 동네 반장 직함을 갖고 있는 홍두식(김주혁)이 도도하지만 속은 여린 치과의사 윤혜진(엄정화)을 만나 사랑을 이뤄간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날 촬영 분량이 많지 않은 엄정화는 늦은 오후에 간단한 신만 찍었다.
걸음마를 못하는 아기도 하루 만에 뜀박질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간단하고 짧은 동작이긴 해도 무경험의 배우가 1시간도 안 돼서 와이어액션을 소화해낸 과정을 보면, 누구라도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바람이 심해지고 해도 기울 무렵 액션신 촬영이 시작됐다. 상대를 향해 거침없는 발차기와 주먹 실력을 보인 사람은, 김주혁이 아니라 임세호 무술감독. <두사부일체> <낭만자객> 등을 작업한 그는 빠른 말투로 조연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노련하게 액션신 촬영을 진행한다. 발목이 삐끗해서 바닥에 주저앉다가도 벌떡 일어선다. 이어 커다란 크레인이 도착했다. 와이어액션은 난생처음이라는 점잖은 남자 김주혁이 크레인에 달린 와이어를 몸에 건다. ‘발차고 공중돌기’ 목표를 앞두고 무술감독에게 단계별로 훈련을 받는다. 1단계, 달려나가 발차기. 2단계, 달려나가 발차고 공중돌기. 놀랍게도 30∼40분 만에 그럴듯한 액션신이 연출된다. 모두 박수를 친다.
현재 제주도 촬영을 모두 마치고 서울로 이동한 <어디선가…>는 1월 첫주가 지나면 대부분의 촬영이 마무리된다. 제작은 <두사부일체>를 만든 제니스엔터테인먼트가, 투자·배급은 시네마서비스가 맡았다. <튜브>의 현장편집을 거친 신인 강석범(32) 감독이 연출하는 <어디선가…>는 꽃피는 봄과 함께 올 4월에 개화한다.
제주=사진 정진환·글 박혜명
◆ 이 키스신은 본래 밤에 촬영했어야 했다. 그러나 제주도에 태풍주의보가 내리는 바람에 이튿날 아침 취재진들 앞에서 “이런 키스신”이라며 소개해 보였다. (아래 왼쪽 사진)
◆ 홍두식은 강석범 감독의 후배를 모델로 삼은 캐릭터다. “그 친구가 한 동네에 굉장히 오래 살아서 저집 아무개는 지금 뭘 하고 그 옆집 누구는 어떻게 됐고 하는 사정이 정말로 훤했다. 게다가 백수였는데, 그 동네에서 비디오가게를 가건 만화가게를 가건 어딜 가도 그 친구가 꼭 있었다.” 본래 시나리오 작가가 되려고 했었다는 강석범 감독은 <튜브>의 백운학 감독에게 연출론과 편집론 등 많은 걸 배웠다고 말했다. (아래 오른쪽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