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주류 영화계의 뒤편에서 오직 영화를 향한 열정만으로 악전고투하는, 하지만 재능은 좀 모자란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는 쉽사리 보는 이의 관심을 끌게 마련이다. 특히 언젠가 자신이 직접 영화를 만들어보겠다고 맘먹고 있는 이들에게는 더더욱. 피터 보그다노비치의 <니켈오데온>이나 팀 버튼의 <에드 우드>, 폴 토머스 앤더슨의 <부기 나이트> 그리고 덧붙이자면 톰 디칠로의 <망각의 삶>이 그런 영화들이다. 말하자면 이들 영화 속의 인물들은 펠리니의 과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장만옥의 이마베프>, 혹은 필립 가렐의 <야성적 순수>에 등장하는 ‘예술가형’ 영화감독들과 짝패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스스로를 명감독이라 생각하고 어린 시절부터 착실히 준비해온 한 인물이 자신의 친구들을 데리고 해괴망측한 공상과학영화를 찍고자 한다. 제작비를 마련하기 위해 오디션 응시자들로부터 응시료를 꼭꼭 받아 챙기고, 카메라는 스튜디오에서 몰래 훔쳐낸 것을 사용하고, 촬영허가증이 필요한 곳에선 게릴라식 도둑촬영으로 일관한다. 팀 버튼의 <에드 우드>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하긴 프랭크 오즈의 <보우핑거>는 분명 어느 정도는 팀 버튼의 영화를 의식하고 만들어진, 그리고 보기에 따라선 거의 후안무치한 모방으로도 여겨질 법한 좌충우돌 B급영화 제작기라 불려 마땅할 것이다.
텔레비전용 인형극 제작자로 출발한 (그리고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제다이들의 스승 요다의 목소리 역을 담당하기도 했던) 프랭크 오즈는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뒤 고전기 할리우드 코미디의 전통을 잇는 몇몇 흥미로운 영화들을 줄곧 만들어왔다. <흡혈식물 대소동>(1986)은 로저 코먼의 <공포의 작은 상점>과 그것의 오프브로드웨이 뮤지컬 버전을 참고해 만들어진 리메이크작으로, 할리우드 뮤지컬 코미디의 그로테스크한 패러디라 할 만한 영화이다. 그뒤에 만들어진 <화려한 사기꾼> <밥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결혼 만들기> 그리고 <인 앤 아웃> 등도 보는 이에게 제법 상당한 재미를 주는 영화들이다.
프랭크 오즈는 특히 코미디 배우 스티브 마틴과 몇편의 영화에서 함께 작업했는데, <보우핑거>에서도 그는 악전고투 끝에 명작(?)을 만들어내는 감독 보우핑거 역을 맡아 출연하고 있다(스티브 마틴은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직접 쓰기도 했다). 어느 날 회계사 친구가 쓴 공상과학영화 시나리오를 읽다 영감이 떠오른 보우핑거는 이런저런 삼류인생들을 모아 영화제작에 착수한다. 영화의 흥행을 위해 스타급 흑인배우 킷 램지(에디 머피)의 출연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그는 고심 끝에 묘안을 하나 짜낸다. 바로 외계인 침공에 관한 황당무계한 대사들을 읊조리는 연기자들을 무작정 그의 곁에 다가가게 만든 뒤, 놀란 그가 반응하는 모습들을 멀리서 몰래카메라로 촬영하는 것이다.
<보우핑거>의 몇몇 장면들은 폭소를 유발하지만 동시에 약간은 서글픈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제작비를 아끼기 위해 국경을 몰래 넘어오는 멕시코인들을 차량에 태워 싣고 와 스탭으로 쓰는가 하면, 킷 램지를 직접 촬영하기 힘들 경우엔 그와 외모가 유사한 남자를 찾아 먼 거리에서 롱숏으로 찍는 식이다(나중에 그는 킷의 형임이 밝혀진다. 에디 머피가 1인2역을 맡았다). 특히 배우 킷 램지를 유인- 보기에 따라서는 납치- 해 시나리오의 마지막 대사를 읊게 하고자 <보우핑거>의 촬영팀들이 벌이는 소동은 정말이지 가관이다. 촬영용 차량 위로 길게 솟은 크레인 위엔 한 무더기의 나뭇가지들로 몸을 감춘 촬영감독이 올라타 있다. 이들은 주연 여배우와 킷 램지가 탑승한 자동차를 도시곳곳을 누비며 죽을힘을 다해 뒤쫓는다.
<보우핑거>는 영화와 삶에 관한 대단한 통찰을 제공해주는 영화는 아니다. 대신 이 작품은 영화란 근본적으로 화면 바깥에서 벌어진 일을 감추기 위해 이런저런 ‘사기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허구적인 현실 내지는 ‘현실의 인상’을 주는 허구라는 지당한 사실을 꽤 감칠맛나게 보여준다. 예컨대 서로 다른 시간대에 따로 찍은 장면을 편집을 통해 이리저리 이어붙여 마치 킷이 여자 외계인에게 쫓기고 있는 듯한 인상을 만들어내는 장면 등이 그러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메시지가 앞서는 일은 절대로 없는 까닭에 <보우핑거>는 글머리에 언급한 여타의 영화들에 주로 나타나는 음울함의 정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대신 영화는 거기 참여한 이들의 기억을 통해 더욱 아름답게 채색되는 법이라고 말한다. <보우핑거>는 기어이 영화를 완성하고 킷을 포함한 모든 이들은 기억을 되새기며 흐뭇한 표정으로 스크린을 응시한다. 거기에 완성된 영화의 시사회에 참석한 이들의 박수갈채가 덧붙여진다. 믿거나 말거나. 유운성/ 영화평론가 [email protected]
Bowfinger|1999년|97분|컬러감독 프랭크 오즈출연 스티브 마틴, 에디 머피화면포맷 아나모픽 와이드스크린 1.85:1오디오 돌비디지털 5.1출시사 유니버설
▶▶▶ [구매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