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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네적 스파게티 웨스턴의 세계,<수녀와 카우보이>
권은주 2003-11-19

이른바 ‘달러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하는 <석양의 무법자>(1966)를 완성한 뒤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자기가 다음에 만들 영화에서 마지막으로 한번 더 지금까지 해왔던 역할을 반복해줄 수 없겠느냐는 제안을 했지만 이스트우드는 거절했다. 이후 두 사람은 다시는 감독과 배우로 함께 영화작업을 하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스트우드의 중요한 영화적 스승 가운데 하나인 레오네의 짙은 그림자로부터 이스트우드가 완전히 발을 뺀 것은 아니었다. 테드 포스트 감독의 <헌팅 파티>(1968)나 존 스터지스 감독의 <조 키드>(1972)에서든 아니면 이스트우드 자신이 직접 연출한 <평원의 무법자>(1973)에서든 레오네 이후의 웨스턴 세계 속을 배회하던 이스트우드의 과묵하고 냉정한 터프 가이들은 어김없이 레오네의 세계를 지나쳐 온 것 같은 인상을 주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수녀와 카우보이>도 예외에 속하지 않는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이 영화의 제작자는 시나리오 작가에게 레오네의 영화들에게서 가져온 눈에 확 띄는 인용들로 시나리오를 새로 쓰게 했다고 하니, 이건 명백한 레오네 영화의 모방작임에 틀림이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모작을 그저 흘려보낼 수 없는 것은 이것을 연출한 이가 이스트우드의 또 다른 영화적 스승인 돈 시겔이라는 점 때문이다. 모작이긴 하되 자기만의 영화적 터치를 갖고 있던 영화감독이 만든 모작, 그러면서 이스트우드의 영화인생에 깊은 영향을 끼쳤던 두- 그것도 서로 완전히 구별되는 스타일을 과시했던- 영화감독이 억지로라도 어느새 만나는 영화, <수녀와 카우보이>는 우선적으로 바로 그렇기에 눈길을 줄 수밖에 없는 영화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경쾌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말을 타고서 황야를 가로질러가는 남자를 보여주는 첫 장면부터 영화는 우리에게 앞으로 레오네적 스파게티 웨스턴의 세계를 보게 될 것임을 알려주는 듯하다. 크레딧 시퀀스가 끝나면 지체없이 이 남자 호건(클린트 이스트우드)은 스토리 전개상의 중요 출발지점에 당도한다. 한 여자가 악한들에게 겁탈당하려 하는 것을 목격하게 된 그는 악한들을 모두 처치하고 여자를 구해준다. 알고 보니 이 여자는 사라(셜리 매클레인)라는 이름을 가진 수녀로 멕시코 혁명군에 도움을 주고 있기 때문에 프랑스 기마대에 쫓기는 몸이었다. 한편 호건은 프랑스군의 요새를 장악하는 데 도움을 주고 그 대가를 지불받겠다는 ‘거래’를 멕시코 혁명군쪽과 이미 한 상태. 사라가 프랑스군 요새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인물임을 알고 난 호건은 사라와 동행하게 된다.

이런 유의 웨스턴영화들을 이미 봐온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장쾌한 총격전에서 영화가 클라이맥스에 이를 것이라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자연히 <수녀와 카우보이>에서도 우리가 예상한 바로 그 지점쯤에 대규모의 총격전이 마련되어 있긴 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마치 <와일드 번치>(샘 페킨파, 1969)의 마지막 총격전을 연상케 하는 그 장면이 관객이 가질 법한 시각적 폭력에의 욕구를 충족시킬 만큼의 활력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바로 이때 우리는 돌이켜보면서 이 영화에서 긴장이 최고조에 달한 지점은 이미 지나갔음을 알게 된다. <수녀와 카우보이>에서 그 지점은 마지막 총격전에 있었던 게 아니라 인디언이 쏜 화살을 맞은 호건이 사라와 함께 그 화살을 뽑으려 고투하고, 그런 사이 고통을 잊으려 술만 마셔대던 호건이 정신을 못 차리면서도 사라의 다그침과 도움을 받아가며 프랑스 기차를 폭파하려고 하던 그 긴 시퀀스에 자리했던 것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건맨과 수녀 사이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삐걱거리면서도 훌륭한 조화를 이뤄냈던 것이다.

<수녀와 카우보이>의 원제는 ‘사라 수녀의 노새 두 마리’이다. 그중 한 마리는 그녀가 타고 다니는 노새를 가리키는 것일 테지만 그럼 다른 한 마리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노새를 가리키는 ‘mule’이란 단어에는 고집불통인 사람의 뜻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사라 수녀의 또 다른 노새 한 마리는 바로 오직 세상에서 자기만 있는 줄 오해하는 독불장군 호건이 아닌가 하고 짐작하게 된다. 이제 영화는 사라 수녀가 노새 두 마리를 모두 얻기까지의 이야기라고도 간단히 정리내릴 수도 있겠다. 물론 그 사이에는 눈앞에 일어나는 일을 우연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그건 기적이라고 믿는 사람 사이의 거리가 이야기된다. 하지만 그 둘은 하나는 터프 가이이고 또 다른 하나는 터프 레이디라는 점에서 맞서기도 하고 협력하기도 한다. 요컨대 <수녀와 카우보이>는 웨스턴의 모양새를 한 터프한 로맨틱코미디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점에서 이것은 레오네 영화의 모방작이면서도 꽤 영리한 모방작이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홍성남/ 영화평론가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