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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부터 레스페스트디지털영화제, 18개 섹션 300여편 소개
문석 2003-11-11

상상력에 ‘플러그 인’

가장 젊고 혁신적인 영화제 중 하나로 꼽히는 ‘레스페스트디지털영화제 2003’이 11월14일부터 20일까지 연세대 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다. 1995년 ‘The Low Resolution(저해상도)영화제’란 이름으로 샌프란시스코의 조그만 아트갤러리에서 시작돼, 98년에 레스페스트란 이름으로 바뀐 이 영화제는 디지털영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상영 또한 디지털 영사방식으로 이뤄진다. 이 영화제는 영화, 미술, 음악, 디자인 등을 결합하는 ‘하이브리드’에 큰 무게를 실으며 새로운 영상문화와 그 변화 가능성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올해 행사의 슬로건은 ‘Plug into Imagination!’. 상상력을 발동해 영상의 새로운 대륙을 개척하자는 취지가 느껴진다. 개막작으로 프랑스 미셸 공드리의 뮤직비디오, CF를 모은 ‘미셸 공드리 특별전’을 선정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80년대부터 뮤직비디오뿐 아니라, 영상문화 전반에 충격을 던졌던 그의 다양한 작품 25편은 상상력과 테크놀로지의 행복한 결합을 보여준다. 전설의 스케이트 보더 마크 ‘가터’ 로고위스키의 이야기 <스톡트>, <은하철도 999>의 마쓰모토 레이지와 프랑스의 테크노 2인조 다프트 펑크의 합작품 <인터스텔라 5555>도 관심을 모으는 작품들. 테크노 뮤직비디오를 모은 ‘시네마 일렉트로니카’, 시규어 로스, 벡, 라디오 헤드 등이 등장하는 ‘록 뮤직비디오 모음’은 레스페스트만의 전통 메뉴. 김병우 감독의 디지털 장편 <아나모픽>과 뮤직비디오와 모바일 아트는 한국 영상세대의 신선한 약진을 확인하게 해준다. 광고 관련 잡지 <샤츠>에서 선정한 광고 모음 ‘샤츠 2003년 베스트 컬렉션’이나 레스페스트 일본의 주요 작품을 모은 ‘도쿄 레스믹스’도 쉽게 접하기 힘든 영상들. 이외에도 디지털 장비를 통해 필름효과를 내는 데 있어 권위자인 일본 누쿠이 유지 감독의 워크숍, 어도비, 디스크리트 등 다양한 디자인 툴의 강좌 등도 함께 열린다. 그러나 18개 섹션 300여편의 장·단편영화가 상영되는 레스페스트디지털영화제 2003을 모두 주파하기란 어려운 일. 이중 절대 놓쳐서는 안 될 프로그램 5개를 소개한다.

1. ‘미셸 공드리 특별전’

미셸 공드리는 독창적인 상상력과 고도의 테크닉으로 90년대 초반 이후 세계 뮤직비디오계를 선도해왔다. 특히 비욕의 데뷔곡 <Human Behavior>를 만든 이후, 그는 세계에서 가장 앞서가는 아티스트인 라디오 헤드, 케미컬 브러더스, 화이트 스트라입스 등과 손을 맞춰왔다. 그의 반짝거리는 아이디어는 프랑스에서 만든 장 프랑수아 코언의 <La Tour De Pise>(1993)의 뮤직비디오에서부터 확인된다. 그는 노래 가사가 흘러나옴에 따라 다양한 간판 글씨를 차례로 보여줘 노래의 낭만적인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다. 그의 편집은 정교하기 이를 데 없는데, ‘거울구조’를 보여주는 듯한 치보 마토의 <Sugar Water>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공드리의 장점은 음악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 절묘한 작품은 다프트 펑크의 <Around The World>. 수십명의 군무를 통해 테크노의 리듬과 뿅뿅거리는 멜로디를 표현, ‘눈으로 보는 음악’이라 할 만하다. 케미컬 브러더스의 는 그의 기발한 아이디어, 정교한 편집과 CG, 치밀한 구성 등이 한데 어우러지는 ‘미셸 공드리의 모든 것’이다. 그 자신이 드러머로 참여했던 밴드 위위의 뮤직비디오나 화이트 스트라입스, 푸 파이터스의 뮤직비디오, 리바이스 광고 또한 그의 테크닉을 한껏 보여준다.

2. ‘글로벌 단편 # 02’

‘블록버스터’라 할 만한 <물리트>는 발리우드 뮤지컬을 모방하면서도 교묘히 뒤트는 작품이다. 한 이발사와 공주의 금지된 사랑을 발리우드 스타일로 묘사한 이 영화는 과장된 캐릭터와 클리셰 덕분에 배꼽 빠지는 웃음을 준다. 고지마 준지와 고바야시 겐타로 감독의 <일본식 전통: 관계>도 기발하다. 일본에서 남자가 여자에게 프로포즈하는 방법을 ‘우연을 가장해 만난다’, ‘아이, 노인, 애완동물을 아끼는 모습을 보여줘라’ 등 단계별로 소개한 뒤, 실제 남녀를 등장시킨 ‘사례연구’를 보여주는 이 영화의 유머감각은 대단하다. 마거릿 대처, 미스터 T, 빌 클린턴 등 마스크를 벗을 때마다 새로운 사람으로 변신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인 마크 웨이츠 감독의 , 핫도그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역추적하는 토머스 힐랜드의 30초짜리 초단편 <핫도그> 또한 즐겁다. 다른 섹션이지만, 수백편의 고전영화를 짜깁기해 만든 엉뚱하고 황당하며 신나는 모험극 <고속영화>(글로벌 단편 # 01)나 한 포장 전문가의 이야기인 <룸서비스>(글로벌 단편 # 03)도 놓치면 아쉬운 작품들.

3. <인터스텔라 5555>

프랑스의 진보적인 테크노 듀오 다프트 펑크는 스파이크 존즈, 미셸 공드리, 로만 코폴라 등 최고의 감독들과 뮤직비디오 작업을 했지만, 뭔가 갈증을 갖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우연히 마쓰모토 레이지 감독과 접촉하게 된 이들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은하철도 999> <캡틴 하록> 등의 레이지 감독이 직접 이들 음악을 갖고 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레이지 감독은 앞서 말한 쟁쟁한 감독들처럼 새로운 영상에는 큰 관심이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한 악당이 다른 우주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밴드를 납치해 지구 무대에 올린다는 이야기에서 그는 TV애니메이션의 기법을 그대로 활용해 단순한 선, 반복되는 장면, 다소 유치한 그래픽을 보여줄 뿐이다. 한마디로 조악한 듯 보이는 그의 영상은 이상하게도 다프트 펑크의 몽롱한 음악과 어우러지면서 생명을 얻는다. 아날로그적 화면과 디지털 음악의 오묘한 조화랄까. 올해 칸영화제, 부산영화제 등에서도 소개된 바 있다. ‘5555’ 의미는 부제 ‘THE 5TORY OF THE 5ECRET 5TAR 5YSTEM’.

4. <스톡트>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마크 ‘가터’ 로고위스키는 최고의 스케이트 보더였다. 당시 그는 토니 호크보다 더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었다. <스톡트>는 90년대 중반 살인사건을 저지르고 감옥에 갇혀 있는 ‘가터’의 삶을 통해 미국의 하위문화를 해부한다. 80년대 중반만 해도 스케이트 보딩은 일부 젊은이들만이 열광하는 분야였다. 보드를 잘 탄다는 것은 그저 즐거움을 위한 것이었고, 이런 열정은 여러 젊은이들의 인기를 모았다. 하지만 90년대에 접어들어 스케이트 보드는 이른바 ‘익스트림 스포츠’라는 이름 아래 주류 시스템에 자리잡기 시작했고, 인기 절정에 있던 가터 또한 스타로 떠올랐다. 그는 <ESPN> 같은 스포츠 네트워크에서 MTV까지 등장했고, 그가 광고하는 스케이트 보드와 스포츠 의류는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가터가 한 여성을 살해한 뒤 사막에 유기한 사건은 그 무렵 발생했다. 그는 유명세에 취해 있었고, 불안해하고 있었다. 헬렌 스티클러 감독은 토니 호크를 비롯한 보더들, 가터의 주변 인물들을 철저히 인터뷰해 당시의 분위기를 입체적으로 보여주며, 하위문화의 주류문화로의 ‘전락’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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