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들리 스콧의 <에이리언> 극장에서 보셨어요?
디지털 보정 25년 만에 감독판으로 재개봉, 에일리언 공격장면 6분 추가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영화의 배급 윈도 중에 동시상영관이라는 것이 있었다. 개봉관에서 1차적으로 상영을 끝내고 다시 변두리 재개봉관에서 한번 더 상영되었던 영화들이 두편 혹은 세편씩 묶여져 상영되는, 비디오마저 대중화되지 못했을 때는 말 그대로 영화들의 종착역과 같은 곳이었다. 그런 동시상영관의 스크린에 비가 오거나 무질서하게 커다란 검정 구멍들이 나타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때로는 필름이 타면서 영화가 중단되고 한 10여분 지나 다시 시작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하지만 개봉관에서 미쳐 보지 못한 영화들을 저렴한 가격에 몰아서 볼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생각보다 인기가 많았고, 금요일만 되면 작은 박스에 검정색 글씨로 영화 제목들과 극장명만 써 있는 동시상영관들의 광고가 일간지에 실리곤 했다.
리들리 스콧의 영화 <에이리언>과 제임스 카메론의 <에이리언2>를 순서대로 연달아 본 것도 바로 홍익대 근처 어딘가에 있었던 동시상영관이었다. SF액션영화로 포장되어 먼저 개봉되었던 <에이리언2>를 못 본 상태에서 나중에 개봉되었던 <에이리언>까지 못 봐서 안타까워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신문 한 귀퉁이에서 그 두편을 동시상영하는 극장의 광고를 보았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약 4시간 동안 연달아 두편의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얼마나 뿌듯했는지. 특히 상대적으로 우리나라에서의 흥행성적이 안 좋았던 <에이리언>의 가치를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는 사실이 아주 기뻤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1편 개봉 20주년을 맞아 4편의 <에이리언> 시리즈가 하나로 묶여져 DVD박스판으로 출시되었을 때, 2편은 스페셜 에디션이 출시된 반면 1편은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한창 DVD를 위해 감독들이 직접 참여한 스페셜 에디션들이 쏟아져 나오던 시기라 리들리 스콧의 손길이 닿은 스페셜 에디션 혹은 확장판 등을 기대했었는데, 실망이 클 수밖에 없었던 것.
게임으로 출시되어 인기를 끌고 있는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2>
촬영현장에서의 리들리 스콧과 시고니 위버.
감독판에서 추가된 장면들은 주로 에일리언에게 선원들이 당하는 장면들이다.
그렇게 실망했던 팬들이 상당히 많았다는 사실에 자극을 받았는지, 지난 할로윈 데이를 기해 리들리 스콧 감독이 직접 재편집을 한 <에일리언: 감독판>이 미국에서 개봉되었다. 1편의 개봉 25주년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감독판의 가장 큰 특징은 6분가량의 장면들이 추가되었다는 점이다. 주로 톰 스커릿과 해리 딘 스탁튼이 연기한 주인공 리플리의 동료들이 에일리언에게 어떻게 당하는지를 좀더 상세히 보여주는 것들이다. 이 장면들 중 일부는 DVD의 삭제장면 서플먼트에 이미 들어 있던 것들이기는 하지만, 본편 영화에 직접 끼워지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리들리 스콧은 그 장면들이 17분가량 되는 영화의 클라이맥스 부분의 흐름을 약간 느리게 하는 것 같아 삭제했었다고 밝히면서, ‘그때 빼지 말았어야 했다. 다시 넣어보니 클라이맥스에 엄청난 힘을 불어넣어주는 매력이 있다’고 말했다. 그와 함께 필름 전체를 디지털로 스캔하여 색감을 보정하였으며, 사운드트랙에 담긴 음악·음향을 새롭게 강화한 것이 감독판의 특징이다. 또한 일부 호흡이 긴 장면들은 조금씩 잘라내지기도 했다.
재미있는 것은 그런 특징을 가진 감독판이 만들어진 과정이었다. 약 2년 전 이십세기 폭스사가 보유 중인 영화들의 원본 네거티브 필름들의 상태를 점검하는 과정에서 20년이 훨씬 넘은 <에이리언>의 필름이 예상보다 훨씬 깨끗하게 보존되어 있는 것이 발견된 게 그 시작이었다. 폭스사는 필름 보관상태로 보아 디지털로 보정하면 훌륭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며 리들리 스콧에게 감독판의 제작을 제의했고, 리들리 스콧이 원하는 대로 재편집을 할 수 있게 최대한 협조한다는 조건으로 그 제의를 수락했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리들리 스콧이 원하는 삭제장면 원본 네거티브 필름들과 사운드트랙을 찾아내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그래서 전문가들로 구성된 일군의 ‘발굴팀’이 관련 자료가 보관되어 있을 만한 곳들을 뒤지기 시작했고, 결국 촬영에 사용되었던 런던의 한 스튜디오에서 필름 조각들을 찾아내는 전과를 올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어렵게 모습을 드러낸 감독판에 대한 팬들의 반응은 대부분 긍정적이다. 대부분의 <에이리언> 팬사이트들에는 극장에서 감독판을 볼 수 있게 된 것을 기뻐하는 네티즌 팬들의 게시물들이 상당수 올라와 있다. 한 인터뷰에서 <에이리언>을 극장에서 보지 못했던 현재의 젊은 영화 관객을 위해 감독판은 큰 의미가 있을 거라는 리들리 스콧의 예측과 맞아떨어지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켠에서는 감독판의 개봉이 내년에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를 공개할 예정인 폭스사의 마케팅 전략의 일환이라며 거부 반응을 나타내는 이들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영화의 개봉과 동시에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의 티저 예고편이 상영되기 시작했다는 점은 그런 시각에 힘을 실어주고 있기도 하다.
물론 폭스사가 어떤 식으로든 이번 기회를 상업적으로 활용하려 애쓰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자명한 사실이다. 오히려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면 그 누구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새롭게 다듬어진 <에이리언>을 극장에서 만나게 되었다는 사실 자체에만 의미를 둔다면, 이번 이벤트는 <에이리언> 시리즈의 팬들에겐 축복과 같은 일이기도 하다. 안타까운 것은 그런 축복을 우리나라의 팬들도 받을 수 있는 지가 아직 불투명하다는 사실이다. 이철민/ 인터넷 칼럼니스트 [email protected]
▶ <에일리언: 감독판> 공식 홈페이지: http://www.alie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