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는 사실상 공무원이나 다름없어요.” “예?”
“올해 만들고 있는 작품이 모두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거든요. 문화콘텐츠진흥원에서 3편, 영화진흥위원회에서 1편, 게임산업진흥원에서 1편 등 5편 모두 그렇죠.”
애니멀의 구봉회 감독과 조경훈 대표의 목소리엔 자신감이 가득했다. 엽기발랄 모바일용 애니메이션 <메디컬 아일랜드>가 ‘준’에서 여전히 최상위권의 인기를 누리고 있기 때문일까. 며칠 전 서울시 주최 ‘쓰레기문제 해결을 위한 플래시 애니메이션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아 얻게 된 1천만원의 상금으로 주머니가 두둑해진 까닭도 분명 있으리라.
“특혜시비가 나오기도 하지만 저희는 당당해요. 얼마 전 콘텐츠진흥원이 외국 애니메이션 전문가들에게 맡겨본 심사에서 저희가 1등을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정말 기분 좋았죠.”
구 감독은 인하대 무역학과 91학번이다. 한 대기업에서 세무 관련 일을 보다가 우연히 미야자키 하야오의 <모노노케 히메> 메이킹필름을 보고 “이제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회사를 때려치웠다. 한겨레문화센터를 거쳐 서울무비와 곰무리에서 일했다. 그러면서 제작사와 기획사의 장단점을 몸으로 체득했다.
조 대표는 연세대 경영학과 94학번. 동아리 ‘만화사랑’의 멤버로 “못그리는 내 그림을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좋아” 만화를 그리다가 <블루시걸>로 시작된 90년대 중반 애니메이션 붐에 홀려 국내 유수의 하청회사를 기웃거렸다. 그리고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발견했다.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애니메이션을 배우던 조 대표는 이곳 출신 창작집단 ‘애니멀’ 1기로서 구 감독과 뜻을 함께하게 됐다.
조 대표와 구 감독이 자신들의 실력을 처음으로 세상에 내놓은 것이 3분짜리 플래시애니메이션 <리벤지 임파서블>(2001). 이 작품이 인터넷에 오르자 네티즌들은 “이걸 어떻게 둘이서 한달 만에 만드느냐. 사기다”라며 항의할 정도였다.
“정말 미친 듯이 만들었어요.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어떤 작품을 만들어야 할지 저희도 몰랐던 때거든요. 그래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도해보자고 생각했지요.”
이름이 알려지면서 제작의뢰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애니메이션뿐 아니라 게임제작도 시작했다. 그러면서 6명의 애니멀 회원들은 ‘클라이언트’가 존재하는 냉혹한 현실과 마주쳤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아닌, 자신이 잘하는 일을 해야 했다. ‘애니멀’은 그렇게 동아리모임에서 ‘회사’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힘든 시절이었어요. 서로간에 갈등도 많았죠. 지금도 의견차는 여전히 있지만 중요한 것은 이제는 자기가 할 일이 무엇인지 서로 잘 안다는 것이죠.”
‘애니멀’이 추구하는 것은 재미다. “내가 보고 싶은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내가 하고 싶은 게임을 만든다”고 말한다. 이들의 작품은 강렬하다. 유려한 캐릭터가 돋보이는 게임 <천년>의 인트로(2002)가 그렇고, 생체실험을 일삼는 엽기 의사와 간호사가 등장하는 언밸런스한 설정이 섬뜩한 <메디컬 아일랜드>(2003)가 그렇고, 쓰레기 처리문제를 테트리스 수법을 통해 간명하게 담아낸 <쓰레기의 제왕>(2003)이 그렇다.
이들은 이제 극장용 작품에 정식으로 도전장을 냈다. 고교생 밴드 얘기를 그린 <지구방위고등학교>다. 현재 시나리오 작업 중이다. 시나리오가 다 끝나야 제작에 들어갈 생각이다. ‘재미’와 ‘자신감’이 넘치는 작품을 볼 날이 그리 머지않은 것 같다. 정형모/ <중앙일보>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