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편이 게임이라면…, 상상예찬!
올 여름 <매트릭스 리로디드>와 함께 출시된 <엔터 더 매트릭스>는 영화와 게임의 연계가 어디까지 와 있는가를 잘 보여준 하나의 예였다고 할 수 있다. 연작 영화에서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는 이야기 구조상의 구멍을, 게임을 통해 성공적으로 메웠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 속의 조연을 앞에 내세워 영화와 차별화를 둔 것도 이전의 영화 기반의 게임들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참신한 요소이기도 했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 강도 높은 폭력으로 사회적 이슈가 되었고 그로 인해 간접광고의 효과까지 얻었지만, 판매량은 기대 수준을 밑돌았던 것이다. 아무리 성공적인 영화를 기반으로 했다고 해도 게임에서의 성공 여부는 쉽게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셈이다. 이 때문에 향후 출시될 예정인 영화 기반의 대작 게임들의 성패 여부에도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는 중이다. 루카스 아츠사에서 제작되어 현재 제한된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베타 서비스를 진행 중인 온라인 게임 <스타워즈 갤럭시>나 <반지의 제왕> 속 세계를 확장시켜 만들어지고 있는 온라인 게임 <반지의 제왕>이 그 예들.
그런데 그런 대작영화 기반의 게임들에 한창 관계자들의 시선이 머물러 있는 사이, 영화와 게임의 연계를 한 차원 높인 게임이 출시되어 화제가 되었다. 주인공은 바로 지난 8월 미국에서 발매된 PC게임 <트론 2.0>. 제목만으로도 이 게임이 어떤 영화와 연계됐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제목 뒷부분에 붙은 2.0이라는 버전 표시다. 1982년 그러니까 21년 전 개봉되었던 제프 브리지스 주연의 영화 <트론>을 시리즈의 1편으로 정의하고, 그 속편의 개념으로 이 게임이 제작·판매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공식적으로 게임이 영화의 속편으로 등장한 것은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트론>의 속편영화를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해온 1편의 감독 스티븐 리스버거는 물론, 당시로서는 충격적이었던 컴퓨터그래픽을 만들어냈던 특수효과 담당자 리처드 테일러까지 참여해 확실한 정통성까지 갖추었다.
PC게임으로 출시된 <트론 2.0> 박스
LA에 그려진 <트론 2.0>의 벽화 앞에 선 1편의 감독 스티븐 리스버거.
게임 중간에 영화에서 강한 인상을 남겼던 라이트 사이클 경주를 직접 즐길 수 있다.
게임의 내용은 속편답게 전편의 이야기를 충실히 이어가는 형식이다. 전편에서 컴퓨터 세계를 지배하려는 마스터 컨트롤 프로그램에 대항하기 위해 트론(브루스 박스라이트너)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사라졌던 프로그래머 알란(브루스 박스라이트너 1인2역)의 아들 제트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 21년 전 실종된 아버지를 구출하고자 컴퓨터에 들어간 제트는, 전편에서 플린(제프 브리지스)과 알란이 보았던 세계와는 사뭇 다른 세계를 만난다. 스팸, 인터넷 트래픽, 방화벽, 바이러스 등 21년 전에는 분명 없었을 새로운 존재들 때문에 복잡하고 시끄러운 공간이 된 것이다. 한편 회사의 보안담당 이사가 컴퓨터 안으로 들어와 녹색의 괴물이 되어 제트를 막아서는 역할을 한다.
그런 설정하에서 게이머들은 제트가 되어 각종 적들을 물리치면서 아버지의 구출이라는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따라서 게임의 형식은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여타 슈팅 게임들과 유사하다. 다만 컴퓨터 속의 세계인 만큼 총을 사용하지 않고 원반을 주요 무기로 삼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특징이라면 게임 중간에 영화를 통해 강한 인상을 남겼던 라이트 사이클 경주를 직접 즐길 수 있게 되어 있는 점, 인터넷을 통한 멀티 플레이가 지원되어 훨씬 더 복잡한 구도에서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되어 있다는 점 등이다. 또한 게임 속에 등장하는 트론과 제트의 목소리를 브루스 박스라이트너가 직접 녹음해, 속편으로서의 연계고리를 극대화한 것도 눈에 띈다.
한 인터뷰에서 스티븐 리스버거는 “이 게임을 만들기 위해 영화와 게임간의 관계 설정을 완전히 뒤엎어보려 노력했다. 그 결과 게임이 21년 전 영화의 속편으로 충분히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라며 속편으로서의 게임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면서도 “아직도 <트론>의 속편을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밝혔는데, 만약 게임이 성공을 거둔다면 <트론 3.0>이라는 제목으로 3편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밝히기도 했다. 물론 지난 8월 말 출시된 게임의 판매 성적은 아직 공식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상태. 게임의 유통을 담당하고 있는 브에나비스타 인터렉티브의 공식적인 입장도 현재까지는 ‘노 코멘트’이다. 게임을 통한 속편의 출시에서 <트론>만큼 매력적인 내용을 가진 영화가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영화로 3편이 만들어지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논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임에 대한 반향이 조금이라도 긍정적이면 <트론> 3편의 제작에 대한 논의는 활발해질 것이 분명하다. 리처드 테일러도 인터뷰를 통해 “1편과 게임에서 선보인 라이트 사이클 같은 혁신적인 시도들을 이미 구상하고 있다. 이전에는 만들어진 적이 없었던 프랙탈 숲이나 사이버 생명체 등이 내 머릿속에 들어 있는 3편의 이미지들이다”라며 스티븐 리스버거를 거들고 있기 때문. 게다가 <트론 2.0>에는 관여하지 않았던 제프 브리지스마저 한 영화 전문지와의 인터뷰에서 “3편의 시나리오가 쓰여지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 속에서 내가 <지옥의 묵시록>의 크루츠 대령과 유사한 이미지로 등장한다는데 꼭 읽어보고 싶다”라며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물론 실제 그 시나리오라는 것이 존재하는지 불분명하고, 만약 존재하더라도 21년 전 엄청난 손해를 경험했던 디즈니와 직접 관련돼 있는지는 미지수이지만 말이다. 이철민/ 인터넷 칼럼니스트 [email protected]
<트론 2.0> 공식 홈페이지 : http://www.tron20.net
<트론> 팬페이지 : http://www.tron-secto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