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키 브라운> 이후 6년 만에 선보이는 타란티노의 신작 <킬 빌>이 10월10일 미국 개봉을 앞두고, 조금씩 그 베일을 벗고 있다. 감독 자신이 작품에 대해 입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 타란티노에 따르면, <킬 빌>은 ‘복수’에 관한 서사극이다. 또한 영화광 타란티노의 잡식 취향에 관한 ‘결정판’이기도 하다.
<킬 빌>은 여성 킬러가 빌이라는 악당을 죽인다는, 비교적 단순한 이야기다. 독사암살단(Deadly Viper Assassination Squad)으로 알려진 범죄조직의 일원 브라이드(우마 서먼)는 자신의 일에 회의를 느끼고 조직을 떠난다. 소박한 촌부와 결혼해 평범한 여성의 삶을 살아가기로 한 브라이드는 그러나, 결혼식에서 옛 동료들(대릴 한나, 비비카 폭스, 루시 리우, 마이클 매드슨)과 팀의 리더인 빌(데이비드 캐리던)로부터 총탄세례를 받고 혼수상태에 빠진다. 5년 뒤 깨어난 그녀는 복수를 감행한다. 마지막 목표는 물론, 옛 보스인 빌을 죽이는 것이다.
복수의 대상은 5명인데, 흥미로운 사실은 브라이드가 도쿄, 텍사스, 멕시코, 베이징을 넘나들며 이들을 만날 때마다 챕터가 바뀌면서, 야쿠자 사무라이영화, 스파게티 웨스턴, 쇼브러더스 스타일 쿵후영화 등으로 작품 장르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 <킬 빌>의 배우들은 영화광 타란티노의 우상들이다. 뼛속까지 부패한 악당 빌 역의 데이비드 캐리던은 70년대 쿵후영화에 자주 출연했던 배우. 우마 서먼도 그녀의 임신과 출산 등을 감안, 프로젝트를 유보할 정도로 타란티노가 절절히 원한 인물이다. 사무라이 검의 달인 하토미 한조를 연기한 이는 일본 액션무술영화의 대표스타였던 소니 치바로, 타란티노는 <스트리트 파이터>를 본 직후 그에게 매혹됐다고 털어놨다.
이 밖에 갱스터영화, 코믹북의 영향도 드러나 있고, 10분 분량의 아니메가 삽입되기도 했다. 챕터마다 다른 촬영감독을 고용하려고까지 했다(결국 다양한 촬영기법을 구사하는 <JFK>의 밥 리처드슨으로 만족했다)는 타란티노가 이중에서 가장 큰 야심을 보이는 대목은 오렌(루시 리우) 일당과의 결전장면. “영화사상 가장 잔인한 장면”으로 예고되는 이 대목은 도쿄 나이트클럽에서 브라이드가 혈혈단신으로 70여명의 야쿠자를 대적하는 설정인데, 25분 분량이지만 촬영에 무려 8주가 소요됐다고 한다(참고로, <펄프 픽션>은 전체 촬영에 10주가 걸렸다).
피바다 속에서 팔과 다리가 떨어져나간 채 뒹구는 수십구의 시체. 너무 끔찍하다고? 이런 거부반응에 동요할 타란티노가 아니다. 그는 “실제로는 아무도 죽지 않는다. 가짜 피가 그토록 끔찍하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이건 그냥 영화”라는 걸 강조한다. 언론이 우려하는 작품의 폭력성과 선정성 대신 그가 의도한 것은 “아드레날린이 폭발하는 영화”였다고. <킬 빌>은 서양인으로는 드물게 일찍이 아시아 무술영화에 심취했던 타란티노가 후카사쿠 긴지, 스즈키 세이준, 그리고 장철에게 헌사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일본 액션무술영화의 전설인 소니 치바와 70년대 쿵후영화의 아이콘인 데이비드 캐리던이 주요 역할로 출연한다는 것도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제작사인 미라맥스는 3시간 남짓한 <킬 빌>의 완성본을 ‘볼륨1’과 ‘볼륨2’로 나눠 약간의 시차를 두고 개봉하기로 했다. 이러한 결정은 단순히 러닝타임의 문제가 아니라 전반부가 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킬 빌>의 1부는 국내에선 11월17일 개봉한다. 박은영
♣ 평범한 여인으로 살고자 한 브라이드의 꿈은 결혼식에 찾아온 불청객들의 총탄으로 만신창이가 되고 만다. 사진은 결혼식에 찾아온 옛 동료들의 모습과 생매장당한 브라이드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