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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 앞에서 누가 자유로울 수 있나? <반지의 제왕: 두개의 탑>
권은주 2003-09-24

“영화사를 새로 쓰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었죠.” 올해 말 공개 예정인 DVD <반지의 제왕: 두개의 탑> 확장판에 앞서 출시한 일반판 서플먼트에 수록된 다큐멘터리 속 한 장면. 이안 매켈런이 온화하게 웃음짓는 순간, 우리 모두는 머리를 조아리며 동의를 표하는 동시에 경배를 바칠 수밖에 없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동시대에 접할 수 있다는 것은 원작소설에서 영화로 그리고 게임으로 이어져왔던 판타지의 어떤 절대적인 원류 중 하나의 실체를 본다는 감격으로부터 출발하여 선사시대 이전 인간의 생태계를 모델로 구상한 장대한 신화적 서사시를 현대인의 시각에서 다시금 더듬어본다는 것까지 모두 포함하는 쾌감의 행위가 되어가기 때문이다.

애초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반지의 제왕>을 완성했던 J. R. R. 톨킨의 비전은 꽤 미묘하며 애매한 종류의 것이었다. 선과 악의 선명한 대립구도 속에서 악의 세력이 아무리 강하고 매혹적이라 하더라도 결집된 선의 연합세력 앞에선 굴복할 수밖에 없다는 원작 시리즈의 최종적인 결론은, 인류의 절멸을 보는 듯한 현실 앞에서 절망하면서도 끝까지 인간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지식인의 안간힘을 보는 듯했다.

알다시피 <반지의 제왕> 시리즈는 일종의 장대한 웨스턴드라마다. <스타워즈>의 수순이 그러했던 것처럼 어쩌면 <반지의 제왕> 소설에서 영감을 얻었던 조지 루카스였기 때문에 더욱 닮아 보일 수 있는 것처럼 선과 악의 선명한 대립구조 속에서 끝없는 전투를 거치며 최후의 고독한 승자를 양산하는 서부극의 일관된 공식은 대하 서사극에는 더없이 잘 어울리는지도 모른다. <반지의 제왕: 두개의 탑>에서 사우론과 사루만, 우르크하이 군대, 그리마 등 ‘어둠의 세력’과 반지원정대라는 ‘선의 세력’ 사이의 끝없는 전투가 내러티브의 큰 중심을 이뤄간다. 로즈마리 잭슨 같은 경우 저작 <환상성>에서 톨킨이 악의 세력을 ‘어둠의’ 타자로 그려냄으로써 서구 중심주의적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타자성을 충실하게 반복하고 있을 뿐인 백인 지식인의 한계를 드러냈다며 신랄한 비판을 가하기도 했는데 분명 중간계의 곳곳에 관한 묘사, 그리고 주요 인물들을 캐리커처화하는 방식에서 그런 혐의는 피할 수 없다. 선은 환하고 아름답고 고요한 무엇으로 일관되게 그려지고(요정들을 그려내는 장면에서 두드러진다), 악은 어둡고 끈끈하고 본능적인 어떤 것으로 일관되게 형상화된다(특히 어둠의 핵을 그려내는 컴퓨터그래픽 장면은 여지없이 여인의 음부를 떠올리게 하지 않는가).

그러나 B급영화에 대한 열렬한 애정으로부터 자신의 영화인생을 시작했던 피터 잭슨은 서부극의 쾌감 속에서 미묘한 뒤틀림을 정확하게 잡아낸다. 그는 프로도와 골룸 사이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강조하면서, 반지로 상징되는 절대권력 앞에서 연약해지지 않을 존재가 누구인지를 끊임없이 질문한다. 거울 이미지로서의 두 호빗(골룸 역시 한때는 호빗족이었다)이 껴안고 뒹굴거나 마주보거나 물에 얼굴을 비춰보는 장면을 끊임없이 삽입시키면서 주체와 타자 사이의 희미한 경계선을 자꾸만 지워버리고 있는 것이다. 욕망 앞에서 누구나 자신의 추악한 실체를 직시할 수밖에 없다는 것, ‘결코 피할 수 없는 전쟁’은 선과 악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다름 아닌 ‘나 자신’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 이 어마어마한 블록버스터의 속내에 감춰진 ‘미시적’인 주제는 바로 거기서 비롯된다.

PS: 이번 출시판에서는 올해 말 개봉될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의 몇몇 장면을 맛보기로 감상할 수 있다!김용언 [email protected]

Lord of the Rings: The Two Towers2002년, 감독 피터 잭슨출연 일라이자 우드, 이안 매켈런, 비고 모텐슨장르 드라마DVD 화면포맷 아나모픽 2.35:1오디오 돌비디지털 5.1 EX & 2.0 서라운드출시사 스펙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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