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수팬 몰빵 ‘누이좋고 매부좋고’
아내가 둘째를 임신한 이후부터 그 둘째가 5개월이 된 지금까지, 어딘가 모르게 미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아 아들을 위한 이런저런 이벤트를 많이 기획해 실행에 옮기고 있는 중이다. 그중 하나가 사람이 별로 없는 토요일 오전이면 집에서 가까이 있는 롯데월드에 함께 놀러가는 일. 하지만 그때마다 스릴이나 속도를 전혀 느낄 수 없는 라이드들, 예를 들어 ‘모노레일’이라든가 ‘풍선여행’ 혹은 배를 타고 석촌호수를 유람하는 ‘제네바 유람선’ 등만을 골라 그것도 몇번씩 반복해서 타야만 하는 것은 약간 고역이었다. 그러다 얼마 전엔 큰맘먹고 아들 녀석을 꼬드겨 어두운 지하 동굴 속을 배로 여행하며 신기한 구경거리들을 볼 수 있다는 ‘신밧드의 모험’이라는 라이드를 탔다. 처음에는 그저 뭐 움직이는 인형들이 조금 으스스한 분위기나 연출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는 그게 아니었다. ‘후름라이드’ 정도는 아니지만 배가 큰 낙차를 두고 떨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었고, 전반적인 분위기도 으스스한 정도를 넘어 공포스러운 면이 어느 정도 있었던 것.
그런 예상치 못한 선택에 아들 녀석이 무서워 울거나 할까봐 큰 걱정을 했는데, 아들 녀석의 반응은 다소 의외였다. 라이드 내내 숨을 죽이고 내게 딱 붙어 있기는 했지만, 라이드가 끝나고 배에서 내리면서 ‘조금 무섭다’고 말하는 것 이상의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것. 그때 문득 2년 반 전에 첫돌도 채 지나지 않은 아들 녀석을 데리고, 플로리다주 올랜도에 있는 디즈니월드에 갔을 때가 생각났다. 아들 녀석에게 재미를 느끼게 해주겠다고 유아용 라이드들을 태워주었지만 무서웠는지 그때마다 녀석은 나나 아내의 품에 얼굴을 묻고는 이내 잠이 들어버리곤 했던 것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턴가는 한 사람이 아들을 보고, 나머지 한 사람이 성인용 라이드를 번갈아 타는 것으로 작전을 바꾸어 나름대로 어른들만 재미있게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이미 아기에서 아동으로 훌쩍 커버려서, 어른도 약간의 스릴과 공포를 느낄 수 있는 라이드를 탈 정도가 된 아들 녀석이 대견해 보이기까지 할 정도다.
라이드의 내부 중 한 장면의 디자인 컨셉과 실제 완성된 모습.
<캐리비안의 해적: 블랙펄의 저주> 라이드 건조 당시 움직이는 인형 옆에서 선 월트 디즈니의 모습.
재미있는 것은 그런 생각을 하게 해준 롯데월드의 ‘신밧드의 모험’이라는 라이드가 실은 디즈니월드에서 나와 아내가 번갈아 탔던 ‘캐리비안의 해적’이라는 라이드를 본떠 만들어졌고, 그 라이드가 이번에 개봉된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블랙펄의 저주>의 원작이라는 사실이다. 보통은 히트한 영화가 원작이 되어 테마파크의 라이드들이 만들어지는 것이 일반적인 순서인데 이 영화는 그 정반대라고 할 수 있다. 캐리비안의 해적 라이드가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저 인기가 많다고 영화화되었을 리는 만무하다. 그보다는 1967년 3월부터 LA 근교의 디즈니랜드에서 서비스가 시작되어, 지난 36년 동안 미국인들에게 사랑받아오면서 자연스럽게 라이드 자체가 하나의 텍스트로 발전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한 원인이라 하겠다.
그렇게 캐리비안의 해적이 ‘놀이기구’에서 ‘텍스트’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월트 디즈니의 시대를 앞서간 비전에 기반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1965년 디즈니랜드 오픈 10주년을 기념해 한 TV프로그램에 출연한 그는 “세상의 모든 것들, 심지어 종이 위에 그린 그림까지 움직일 수 있게 만드는 데 집중해왔다. 이제 우리는 전기를 이용해 사람, 동물 모양의 인형을 움직이게 하는 중이다. 나는 이것이 미래 엔터테인먼트 시대를 여는 새로운 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며, 이른바 ‘오디오-애니메트로닉스’(Audio-Animatronics)의 개념을 소개했다. 녹음된 음성에 따라 움직이는 실물 크기 인형들로 장면을 연출해놓고 배나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보는 라이드의 초기 개념을 완성한 것. 그리고 디즈니랜드의 개장 초기부터 그가 생각했던 ‘해적들이 가득 찬 마을을 여행하는 이야기’를 직접 구현해낸 것이 바로 캐리비안의 해적이었던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캐리비안의 해적에 엄청난 열정을 쏟아냈던 월트 디즈니가 결국 그 오픈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는 캐리비언의 해적은 그가 제일 좋아했던 디즈니랜드의 라이드로 알려져 있는데, 그건 그가 항상 다음번에 오픈할 라이드를 ‘가장 좋아하는’ 라이드라고 소개했던 버릇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행인 것은 월트 디즈니의 바람처럼 그 라이드를 수많은 미국인들이 지난 36년간 꾸준히 즐겨왔다는 사실이다. 그 과정에서 어두운 곳에 차나 배를 타고 들어가는 이른바 ‘다크 라이드’들 중 최고라 불리며, ‘인디아나 존스 라이드’, ‘쥬라기 공원 라이드’ 등과 함께 미국의 대표적인 라이드로 수많은 팬들을 만들어내기까지 했다. 캐리비안의 해적을 여러 번 즐겼다는 것을 자랑하는 골수팬들의 존재는 각종 팬 사이트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디즈니는 바로 그들의 존재에서 힘을 얻어 영화를 기획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영화의 내용과 라이드의 내용이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인 컨셉도 이전에 만들어진 수많은 해적영화들을 생각해볼 때, 딱히 라이드에서만 나온 것이라고 보기에 어려운 부분도 많다. 그나마 제목이 같다는 점을 제외하면 영화를 독립된 상품으로 이해하는 것도 그리 무리는 아니라고 할 정도. 그러나 디즈니는 <컷스로트 아일랜드> 등 최근 해적영화들이 그다지 재미를 못 봤다는 점을 상기하면서, 엄청난 팬을 확보하고 있는 라이드와 영화를 끈끈하게 묶어서 상품성을 높이려 했고 결과적으로 성공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성공의 여세를 몰아 벌써 주요 출연진, 제작진들과 속편 제작에 대한 계약까지 마친 상태로 알려져 있다. 물론 어떤 속편이 나올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역으로 영화가 라이드에 관람객을 몰아주는 현상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 현상을 ‘관람객 몰아주기의 선순환 구조’라고 부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철민/ 인터넷 칼럼니스트 [email protected]
<캐리비안의 해적: 블랙펄의 저주> 라이드 비공식 홈페이지 : http:// www.doombuggies.com/tnt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블랙펄의 저주> 공식 홈페이지 : http://pirates.movies.g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