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랜디스라는 이름은 이제 거의 잊혀져가는 것 같다. 그러나 <애니멀 하우스> <브루스 브라더스>, 마이클 잭슨의 뮤직비디오 <스릴러>, <런던의 미국 늑대인간>에 이르기까지 존 랜디스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영화라는 판타지 기계장치를 통해 상상할 수 있는 경계선들을 부지런히 넘나들었던, 주목해야 할 이름이다. 슬랩스틱과 판타지에 대한 무한한 애정, 지금 이 순간 가장 인기있고 흥미로운 대중문화에 대한 본능적인 감식안이야말로 존 랜디스의 영화들을 특징짓는 형질들이었다. 아마도 이제 와서 그에게 어떤 네임 라벨을 붙인다면 극히 ‘창조적인’ 익스플로테이션의 계승자라고 해야 적당하지 않을까. 또는 현대판 돈키호테, 성스러운 음악을 찾아 떠난 ‘미국인’ 몬티 파이손은 어떨까. 글쎄, 영화를 보기 전까지 그런 거창한 명명법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오늘은 제이크가 모범수 판정을 받고 가석방되는 날이다. 마중나온 동생 엘우드와 감격적인 포옹을 나누는 제이크, 온통 검정색으로 빼입은 두 형제는 리듬 앤 블루스의 자존심을 지키던 뮤지션 ‘블루스 브러더스’다. 그러나 제이크가 감옥에 가 있는 동안 블루스 브러더스 밴드의 나머지 구성원들은 살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고, 설상가상 형제가 자라났던 가톨릭 부설 고아원은 과중하게 부과된 재산세를 내지 못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부정한 돈은 절대 받지 않겠다는 ‘펭귄’ 수녀님의 단호한 거절 아래, 형제는 어떻게 합법적으로 5천달러를 모을 것인가를 궁리하던 도중 클리오퍼스 목사의 설교에서 불현듯 영감을 얻는다. 역시 우리가 갈 길은 밴드다!
무엇보다도 <브루스 브라더스>를 보면서 기꺼이 경배를 바치게 되는 이유는 음악 때문이다. 제임스 브라운과 캡 갤러웨이, 레이 찰스, 아레사 프랭클린, 존 리 후커에 이르기까지 영화의 주요 배역으로 출연하며 한곡씩 멋들어지게 열창하고 사라지는 명창들의 그루비한 리듬에 어깨를 들썩거리다보면 (예수 그리스도가 R&B에 맞춰 탭댄스를 호언장담하던 제이크의 말마따나) 어느새 영화 속으로 빨려들어가 교회 한복판에서 재주를 넘고 덤블링하거나 속옷이 보일 정도로 치마를 걷어붙이는 신도들 중 한명이 되고 싶어진다. 가장 순수하고 원초적인 리듬과 멜로디에 맞춰 내 몸을 움직이고 싶다는 욕망, 그야말로 느낀 그대로 혹은 본능적으로 우리의 마음 한복판을 기어이 훔치고 마는 존 랜디스의 전략에 행복하게 항복하고 싶어지는 것이다(물론 약간의 라틴음악과 로큰롤, 컨트리 뮤직과 클래식 음악이 끼어들긴 하지만, R&B의 황홀한 향연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다).
메인 디시인 음악에 곁들여지는 애피타이저로서, 존 랜디스의 무지막지한 유머감각은 <브루스 브라더스>를 보는 내내 낄낄거림을 멈출 수 없게 한다. 박장대소의 즉각적인 웃음보다는 그야말로 ‘낄낄거림’, 나도 그 코드를 이해할 수 있어라는 동지의식을 확인할 수 있게끔 하는 은밀한 표식으로서의 웃음. 거의 이단적이리만큼 어찌 보면 불유쾌하고 히스테리컬하게까지 느껴지는 유머의 향연은 야단법석 슬랩스틱과 믹스되며 온갖 신성모독과 정치적·성적 금기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든다. 드라큘라 백작처럼 도사리고 숨어 있다가 깜짝 놀랄 만한 속도로 죽도를 휘두르는 ‘펭귄’ 수녀님 시퀀스, 또는 끔찍한 아수라장의 과잉 속에서도 주변에 전혀 관심없는 듯 묵묵히 자신들의 성스러운 임무를 향해 돌진하는 쿨한 블루스 브러더스의 단순무식 과격함을 선명하게 대조시키는 액션 시퀀스들은 왜 이 영화가 지금까지 컬트의 제왕 한자리를 당당히 차지할 수 있는지 그 생명력의 근원을 확인시켜준다.
그러나 가장 안타까운 점은 아무리 이렇게 떠들어보았자 이 영화가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사실이다. ‘유럽과 스칸디나비아반도, 그린란드 지역을 강타하고 돌아온’ 블루스 브러더스 형제 밴드의 잼 세션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감상한 다음에야, 당신도 비로소 이 저속한 경쾌함이 주는 쾌락을 진정으로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순간부터 우리의 구호는 하나가 될 것이다. Let’s Boogie!김용언 [email protected]
Blues Brothers, 1980년감독 존 랜디스출연 댄 애크로이드, 존 벨루시, 캐리 피셔장르 코미디DVD 화면포맷 1.85:1 아나모픽오디오 돌비디지털 5.1출시사 유니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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