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재개장을 앞둔 한 백화점, 깊은 밤 홀로 늦게까지 남아 있다 퇴근하던 한 여사원은 잠시 화장실에 들렀다가 거울에 비친 스스로의 분신에 의해 끔찍한 죽임을 당한다. 이튿날엔 백화점에 근무하는 또 다른 직원 하나가 역시 자신의 분신에 의해 살해당한다. 경찰에서 은퇴한 뒤 백화점 보안실장으로 근무하던 영민(유지태)은 이 사건에 뭔가 석연치 않은 것이 있다고 느끼는데, 과거 그의 동료였던 현수(김명민)는 이 사건을 연쇄살인으로 단정하고 수사에 뛰어든다. 이때 백화점 화재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던 자신의 언니가 여전히 백화점 안에 있다고 주장하는 지현(김혜나)이 나타나고 끔찍한 살인사건은 계속된다.
■ Review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반영이 더이상 단순한 반영이기를 멈추고 자율적인 의지를 지닌 분신처럼 행동한다면? 호러장르에서라면 그리 낯설지만은 않은 이러한 설정은, 좀 멀게는 독일 호러영화 <프라하의 대학생>- 제정 시기(1913), 바이마르공화국 시기(1926), 그리고 나치 집권기(1936)에 걸쳐 총 세 차례 영화화되었던 작품이다- 을 떠올리게 만든다. 거기서 다소간 파우스트적인 계약에 말려든 주인공 발트빈은 분신이 저지르는 끔찍한 악행을 막을 방편으로 결국 자살을 택하고 만다. 일찍이 영화학자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는 그의 유명한 저서 <칼리가리에서 히틀러까지>에서 이러한 발트빈의 모습은 매시기 독일인들의 이중적 의식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2003년 여름은 바야흐로 한국 공포영화의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그 가운데 그간 많은 기대를 불러일으켰던 신인감독 김성호의 데뷔작- 각본 또한 감독 자신이 직접 썼다- <거울 속으로>도 함께 자리잡고 있다. 나의 반영과 동시에 나를 배반하는 분신을 생산하는 거울이라는 소재가 얼른 불러일으키는 것이 매혹과 공포라는 이중적 감정이라는 데는 별다른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거울 속으로>의 주된 소재 자체는 많은 공포영화가 목표로 삼는 심리적 기제의 이중적 작동을 위해 지나칠 정도로 잘 어울리는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간단히 결론부터 말하자면, <거울 속으로>는 오싹한 공포를 유발하는 영화가 아니며 동시에 그다지 매혹적이지도 않은 영화다. 차라리 정신분석학적 영화연구 수업이나 이미지 분석 연습을 위한 보조교재로 쓰기 위해 만든 프레젠테이션에 어울리는 영화라고 부르는 편이 나을 것이다.
영화의 주인공 영민은 경찰로 근무할 당시 거울에 비친 상을 실재로 착각했다가 결국 인질로 잡혀 있던 동료를 죽음으로 몰고 간 뒤 폐인이 되다시피 한 인물이며, 억울한 죽음을 당하고 백화점 안을 떠도는 원귀의 쌍둥이 동생 지현은 거울이 없으면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인물이라는 설정 등은, 영화의 소재와 캐릭터간의 유기적 관련을 만들겠다는 의도를 너무 과도하게 드러내며, 관객에게 공감을 주는 데 실패한다. 게다가 오랜만에 스크린에 얼굴을 내민 유지태, 각각 <소름>과 <꽃섬>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던 김명민과 김혜나는 <거울 속으로>에선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연기를 보여준다.
<거울 속으로>가 거울에 얽힌 ‘전설’을 구성하기 위해 끌어들인 벨라스케스, 얀 반 아이크, 조르주 드 라투르, 히에로니무스 보슈의 회화들, 그리고 좌우가 뒤바뀐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서명에 관한 야사 등은 흥미롭기는 하지만 흡사 프리프로덕션 단계의 조사물들을 그저 고스란히 펼쳐놓은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무엇보다 <거울 속으로>의 흥미를 반감시키는 요소는 영화의 플롯 자체에 내재해 있다. <거울 속으로>는 <장화, 홍련>식의 ‘허무호러’(?)를 요령껏 피해나가기는 하지만 결국 기업 내부의 음모와 배신이라는 텔레비전 드라마의 닳고 닳은 이야기를 해결책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거울 속으로>는 텔레비전 드라마가 타깃으로 삼는 시청자들과 최근 상승세를 타고 있는 공포영화의 관객들을 동시에 끌어들일 수도 있었겠지만, 오히려 양자에게 공감을 사지 못하는 혼란스러운 영화가 되고 말았다.
<거울 속으로>가 어느 정도는 그간 한국에서 일어난 ‘원인은 있으되 누구에게도 책임은 없는’ 인재(人災)에 대한 함의를 담으려 노력한 것은 사실이다. 한데 그것을 기업 드라마의 상투적 플롯 안으로 축소시키고 진부한 거울놀이를 통해 결함을 애써 감추려 드는 동안, 거울 너머의 대상은 어떤 식으로든 우리에게 자꾸 원한을 토로할 것이다. 벽 너머에 있던 에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처럼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안병기의 <폰>과 마찬가지로 포의 소설을 빌려 마무리한 <거울 속으로>가 정작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크라카우어 식의 사회심리학적 분석에 관심있는 이라면 이 영화가 아주 흥미없는 것으로 보이진 않을지도 모른다.
:: <거울 속으로> 김성호 감독이번 영화는 ‘실물과 반영’, 다음 영화는 ‘현실과 기억’
첫 장편으로 호러 장르를 택했다.특별히 공포영화를 의도하지는 않았다. 거울 소재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시초였다. 거울 이미지를 줄곧 생각하다보니, 거울 속 내가 다르게 움직인다면 혹은 다른 인간이라면 어떨까 하는 상상이 들었고 그로부터 스토리를 짜 나가다보니 무서운 느낌이 많아 공포영화가 됐다.
그래도 호러로서 장르적 완결성을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지 않았나.<거울 속으로>에는 현실과 다른 또 하나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판타지 요소와 죽은 이가 거울에 보인다는 호러적 요소가 있었다. 한쪽으로만 기울기엔 아쉬워 접점을 찾아 동시에 풀어가기로 했다. 드라마, 호러, 판타지, 코미디를 모두 포함하는 형태가 된 것 같다.
기존 한국 공포영화에 대한 견해는. 하나의 요소나 소재만 갖고 끝까지 가는 단선적인 면이 제일 아쉬웠다.이야기 자체가 풍부하길 원해 <거울 속으로>는 캐릭터의 색깔, 다양한 이야기를 깔아놓고 후반에 한꺼번에 거둬들이는 ‘멀티레이어드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인간이며, 그중에서도 나 자신”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인가.출발점은 그렇다. 많은 공포영화에서 ‘괴물’은 프레임 밖에서 들어오거나 홀연히 나타난다. 하지만 <거울 속으로>에서는 가장 무서운 대상이 바로 프레임 안에 존재한다는 점이, 외부의 누군가가 아니라 나 자신이거나 내부의 무엇이라는 점이 재밌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주온> 같은 영화를 보면서 역시 분칠하고 산발한 귀신이 제일 무섭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거울 속으로>에서 무서운 존재들은 우리의 온전한 모습 그대로다. 무섭다기보다 장면 자체가 흥미로웠으면 했다.
배우들의 연기 톤이 다소 불균질한 것 같다.배우와의 소통 문제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마지막 편집 과정에서 다듬다보니 누락된 부분도 생겨 설득력이 반감된 부분도 있다.
거울 장면과 관련된 촬영기법을 설명한다면.거울상과 실물의 상이 분리되는 장면은 컷으로 나누면 재미가 덜할 것 같아 되도록 롱테이크를 취했다. 우영민이 잠에서 깬 장면은 좌우가 뒤바뀐 동일한 세트를 2개 만들어 찍었고, 김 부장이 나오는 탈의실 신은 거울을 정면에 붙인 채 찍은 뒤 거울에 비친 스탭들을 CG로 지웠다. 후반의 장면은 그대로 찍은 뒤 후반작업에서 좌우를 통째로 뒤집었다. CG 분량은 140컷, 15분가량이다. <예스터데이>를 작업한 팀이 맡았는데 SF인 <예스터데이> 못지않게 많다고 하더라. (웃음)
단편 시절부터 보여준 ‘거울을 사이에 둔 이원적 세계상’에 대한 집착은 이제 일단락됐나.다음에는 기억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거울이나 기억처럼 경계에 서 있는 이야기, 경계에서 어디로 갈지 확정짓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이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