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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 부는 한국영화 바람
2001-05-17

한국영화 불모지에 새싹이 보인다

■ LG 한국영화제와 우디네영화제, "아시아의 새로운 영화" 환대

세계를 향한 한국영화의 발걸음이 가볍다. <춘향뎐>이 5월5일 미국 61개 도시에서 개봉했고 <공동경비구역

JSA>는 5월26일 일본의 280여개 극장에서 대대적으로 개봉하는 등 올해 들어 한국영화를 받아들이는 해외의 눈길이 유달리 따스해진

것을 느낄 수 있다. 이같은 환대에 발맞춰 한국영화는 아시아와 미주를 거쳐 유럽으로 발길을 옮기고 있다. 최근 벌어진 이탈리아의 우디네영화제와

런던의 ‘LG 한국영화제’는 한국영화에 대한 유럽의 관심을 읽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런던과 로마의 <씨네21> 통신원이

유럽에서도 서서히 불기 시작한 한국영화의 상큼한 봄바람을 담아왔다. 편집자

LG 한국영화제, 런던관객과 행복한 대면

런던은 유럽에서도 한국영화의 불모지 같은 곳이었다. 런던에서 한국영화를 보려면 매년 한번뿐인 런던영화제를 기다리거나, 아주 드물게 아트하우스에

걸리는 영화들(지난해 초의 <거짓말>처럼)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극소수의 영화 전문가나 아시아 영화광들을 제외한

런던의 일반 영화관객에게 한국영화는 아무것도 알려져 있지 않은 미지의 영역 같은 것이었다. 최근 한국영화산업의 급작스런 성장과 국제영화제에서의

선전에 힘입어, 한국영화에 관한 호기심은 높아졌지만 여전히 이들을 만날 수 있는 실제적인 기회는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지난 4월29일부터 5월5일까지 일주일간, 런던 시내 중심의 메트로극장에서 열렸던 ‘LG 한국영화제’는 런던의 일반 영화관객에게 한국영화를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뜻깊은 행사였다. <공동경비구역 JSA>를 포함, 7편의 서로 다른 성격의 작품을 선정, 가장 젊고

역동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한국영화의 색다른 면모를 보여줬다. 특히 지금까지 영국에 소개된 한국영화가 주로 아트하우스 영화였던 것과는 달리

이번 영화제에 소개된 작품들은 나름대로 어느 정도의 수준을 갖춘 주류영화들 중심이었고 각 영화가 한국 사회의 다양한 측면에 대해 발언하는

영화들이었다는 점도 의미있는 부분이었다.

이 영화제에 대한 런던 언론의 관심도 높아서, 행사기간중 <가디언>지는 영화제 자체와 영화 <…JSA>에

대한 긍정적인 리뷰를 연달아 실었으며, <인디펜던트>지에는 영화제의 의의와 함께 한국영화산업과 역사를 전반적으로 소개하는 글이

실렸다. 두번의 상영에서 <…JSA>는 매회 매진을 기록했으며, 특히 배창호 감독의 <>에는 영국 관객이 대거 몰려,

거의 빈 좌석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높은 좌석 점유율을 기록했다. 이외에 <정사> <간첩 리철진> <세친구>

<파란 대문> 등에도, 모두 최신작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객이 찾았다. 이들 관객이 영화제를 찾은 이유는 다양해 보였다.

아시아영화 전반에 대해 관심이 있어서 온 관객이나 한국문화 자체에 대한 관심 때문에 오는 관객, 순수하게 영화적인 관심에서 온 사람들도

있었다.

영화제 특별 행사로는 런던에서 한국 학생들이 만든 단편경선과 영화제를 찾은 박찬욱, 이재용 감독과 송강호씨의 토크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모두 14편의 단편이 출품된 단편경선의 심사위원 중 한명이었던 <오사카 스토리>의 재일동포 감독 나카타 도이치는 “죽음에 관한

성찰적인 다큐멘터리부터 셰익스피어 스타일의 시대극에 이르기까지 그 다양성과 독특함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특히 “한국 사람이 만들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 것에 놀랐다고 심사 소감을 밝혔다.

이번 영화제는 최근 런던에서 대만, 이란 등 아시아영화에 관한 관심이 높아가고 있는 시점에서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과 대중적 인지도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현재 영국의 영화배급회사인 메트로 타탄은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와 김기덕

감독의 <섬> 배급권을 사놓은 상태이며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6월중 개봉할 예정이기도 해 올해는 런던에서 한국영화의

인지도를 확고히 하는 한해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영화제는 유럽에서는 최초로 한국영화에만 바쳐진 최초의 영화제라는 의의가 있다”는 영화제 디렉터 하태욱씨는 “<>이 성공하는

것을 보고 한국에서는 안 먹혔던 영화가 런던에서는 더 잘 먹힐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어떻게 PR을 하는가가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다시금

절감했다. 물론 영화도 어느 수준 이상이 돼야 하겠지만, 이미 어느 정도 수준이 되는 영화에 대해서는 그 영화 자체의 내용과 맥락을 고려하면서

어떻게 영화를 잘 포장하느냐가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런던=이지연 통신원

우디네영화제, "<반칙왕>은 한국의 <풀몬티>"

지난 4월20일부터 28일까지 이탈리아의 우디네에서 열린 우디네영화제(Far East Film Festival)는 이탈리아에 한국영화의

이미지를 확고하게 심어준 계기가 됐다. 1500석의 대형 오페라하우스 누오보 조바네 극장에서 일주일 동안 열린 이번 영화제는 경쟁 영화제는

아니었지만 관객 투표로 결정되는 최우수 관객상과 우수상을 각각 김지운 감독의 <반칙왕>과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가

차지하는 영광을 안았던 것이다.

올해 출품된 한국영화는 <반칙왕> <…JSA> <해피엔드> <물고기 자리> <시월애>

<동감> 등 11편이었으며, 게스트로 이현승, 김지운, 박찬욱, 정지우, 김형태 감독 등과 배우 송강호가 참석해 한국영화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관객은 지난해에도 <조용한 가족>으로 우디네를 방문한 바 있는 김지운 감독의 <반칙왕>을 ‘한국의

<풀몬티>’라며 극장을 들썩이게 했다. 주최쪽은 “그 웃음 뒤에 소외된 주인공의 현실이 드러나 결코 코믹한 영화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 이 영화의 장점”이라고 선정이유를 밝혔다. 폐막작으로도 선정된 <…JSA>는 민감한 남북문제를 주제로 하면서도 추리적이고

드라마적인 요소를 복합적으로 잘 표현했다며 많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또 현지 언론들은 <해피엔드>의 정지우 감독을 ‘한국의 히치콕’이라고

극찬했으며, 단순한 사랑이야기가 아니라 사랑의 집착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간 김형태 감독의 <물고기 자리> 역시 단순한 멜로드라마나

스릴러영화가 아닌 색다른 시도였다고 평가했다.

영화제 기간중에는 중국, 홍콩, 한국영화 등을 분석하는 토론도 마련됐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한 관객은 영화의 뒷얘기뿐 아니라 한국영화에 관해

갖가지 궁금증을 보였다. 영화제에 참여한 평론가와 기자들은 한국영화가 빠른 속도로 질적 성장을 하고 있으며, 아시아영화에서 중요한 위치로

떠오르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 다양하고 색다른 주제와 개성있는 스타일의 시도가 장점이라며 한국영화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올해로 15년째를 맞는 이 영화제는 시행 초기에는 매년 개성있는 주제를 선택, 영화상영과 토론을 통해 낮선 영화들과 관객과의 만남을 제공하는

자리를 마련했었다. 그리고 1998년 ‘홍콩영화’를 주제로 아시아영화에 처음 접근을 시도한 뒤 이듬해부터 주제를 아예 ‘아시아영화제’로

바꿔 올해로 3회째를 맞고 있다. 이 영화제는 해를 거듭할수록 규모가 커지고 있다. 올해 초청된 작품 수는 모두 73편이었고 관객 수도

3만명이 넘어 아시아 밖에서 열리는 아시아영화제로는 매우 큰 규모에 속하는 영화제가 됐다. 올해는 중국의 왕정 감독 특별전을 마련하여 제작자로서

100편, 감독으로서는 75편의 영화를 만들었고, 배우로서는 20편 이상에 출연해 중국과 홍콩영화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그의 공을 인정하였다.

또 ‘이소룡의 기억’이라는 이름의 이소룡 영화 특별전을 열어 그의 오랜 작품들을 다시 보는 계기도 마련했다. 한편 이번 영화제는 수준 낮은

홍콩 액션영화도 초대돼 비난을 받았고, 영화 상영중 소리와 초점 등이 맞지 않는 등 잦은 기술적 문제가 발생해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같은 아시아에서도 보기 힘든 필리핀, 타이, 베트남 등의 영화까지 관객에게 소개하는 성의는 돋보였다. 다만 영화제가 끝난 뒤에도

작품성이 높은 영화들의 배급계획은 여전히 세워지지 않은 점은 서구에서 아시아영화가 풀어야 할 어려운 숙제로 남았다.

한편 4월29일 폐막된 제5회 베로나 센티멘털 멜로 영화제(Festival del Cinema Sentimentale e Melo)에서도 이현승

감독의 <시월애>가 젊은 심사위원상, 최고 예술기여상, 그리고 기자와 비평가가 뽑은 ‘스테파노 레지아니’상 등 3개 부문에서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도시 베로나에서 열린 이번 영화제에는 <시월애> 외에도 곽지균 감독의 <청춘> 등 한국영화

10편이 출품됐다.

우디네=이상도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