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남양에 가서 찍고 싶다”
50년대 후반을 떠올리며 세 번째 <꿈>의 제작을 꿈꾸다
50년대 후반의 한국 영화계는 소규모 프로덕션이 전성한 시기로 알려져 있다. ‘영화예술협회’, ‘서울영화사’, ‘신프로덕션’의 이름으로 신상옥 감독이 운영한 영화사들도 이 무렵에 등장한다. 카메라도 없이 도둑 촬영을 해야 했던 때 시스템을 갖춘 영화사란, 신 감독의 표현대로 공상이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영화 작가로서의 맹아”라 할 작품들이 이곳에서 나왔고, 영화기업 ‘신필름’의 꿈도 여기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코리아>(1954) 만든 영화예술협회라는 건 전쟁 때 빈집에 들어가 책상 위에서 자면서 예술영화협회라는 거 해야되갔다 생각한 그 시절인데, 이른바 상징적인 협회, 다시 말하자면 예술가들을 모아서 독립프로덕션 같이 해야 된다고 생각해서 ‘유나이티드 아티스트’를 생각했다고. 그러니까 완전히 공상이지 어렸을 때는. 나뿐이 아니라 모든 독립프로듀서들이 모여야 된다고 생각하고 만든 게 예술협횐데 한번만 하고 말았지.
그뒤에 서울영화사라는 게 나오는데, 그건 그때 영화사라는 게 있어야지 돈벌이가 되갔다 생각을 해가지고 비로소 영화사 이름을 붙였다. 사무실 비슷한 게, 방 하나가 있었고 변순제하고 또 누군가 서넛이서 했다. 서울영화사라는 건 제작보다도 일종의 배급을 머리에 두고 한 것이다. 배급이라는 게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거든? 신프로덕션이니 이런 것은 제작하는 냄새가 나고 서울영화사라는 건 배급하는 회사 냄새가 나는데, 배급회사 개념이 있어서 서울영화사라는 걸 했었지.
<코리아>는 그 안에 춘향전도 나오고, 처용무도 나오고, 석굴암도 나오고, 그걸 다 수록할래니까 시간이 많이 걸렸다. 석굴암은 아마 영화로는 처음 찍었을 거야, 이 영화가. 석굴암 올라가는 데가 전부 자갈밭이었으니까. 짚차 아니면 못 올라갈 때였을 거야. 이걸 다큐멘타리로 찍은 것은 외국에 팔려고. 뭔가 하니 너무 한국을 모르니까 한국의 역사와 현대까지 한번 쭉 훑어간 것인데, 드라마틱하게 기승전결을 보기 쉽게 엮었다. 이게 1시간30분인가, 길지는 않은데 35mm가 일년에 한두개 나오면 잘 나오던 때 35mm로 찍었으니까 그렇게 보면 대단했다고 봐야겠지.
<꿈>(1955)은 내가 한(제작한) 것이 아니고 변순제가 돈 대서 한 작품인데, 지금도 한번 더 해보고 싶다. 소재 자체도 좋았지만 제작조건이 용이했지. 우리가 독립 영화사를 채리고 나서부터는 경비가 문제고, 세트장이 문제고 그랬으니까, 근본적으로 올로케이션을 찍을 수 있다 하는 게, 로케이션이 많다는 게 오히려 하나의 좋은 조건이 됐다. 그때 광릉에서, 세조대왕 묘지 앞에서 거의 찍다시피했다. 이때 아리후렉스(아리플렉스 카메라)를 처음 썼는데, 토요일 일요일밖에 못 찍었다고. 문공부에 있는 아리후렉스 도둑질해다 찍으니까.
1967년 <꿈>(A dream), 제작사 신필름, 제작자·감독 신상옥, 각본 임희재, 촬영 최승우, 음악 정윤주, 미술 정우택, 조명 김태진, 편집 오성환, 출연 신영균, 김혜정, 서월영.
이게 황남이 한 첫 번째 <꿈>이고, 신영균이가 한 두 번째(1967)는 설악산에 5월에 들어가서 찍었다. 거기 파도 들어오고 그런 게 낙산사거든? 세 번째 <꿈>은 남양(南洋)에 가서 찍고 싶다. 태국이나 버마에 가서. <꿈>에는 예술적으로 놓치기 싫은 좋은 장면이 많다. 우리는 조형문화가 발달된 것 같으면서도 스님들이 산달(샌들) 안 신고 고무신 신고 다니는 것도 이상하고 완전히 내추럴한 게 없다고. 이조 때 불교가 탄압 돼가지고 아무리 가봐도 고려시대 때 맨든 부석사 무량수전인가 그 안에 있는 부처님 외에는 부처님다운 게 하나도 없다. 모두 똑같이 맨들고, 중국 배부른 귀신처럼 맨들어가지고 불상다운 게 하나도 없다.
존 스타인벡의 <진주>(Perla, La, 에밀리오 페르난데스, 1947)라는 게 있다. 멕시코영화. 감독은 유명한 사람이었는데 기억이 안 나네. 젊은 부부가 어린애가 아퍼서 며칠 동안 고기 잡으러 못 나가다가 나가서 진주 큰 걸 얻는다, 우연히. 그것 땜에 소문이 나가지고 그걸 자꾸 뺏을려는 놈들한테 쫒겨댕기는 얘기다. 마지막에는 진주를 물에 떤지는 게 끝이다. <꿈>이라는 건 그 영화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대담 신상옥·김소희·이기림정리 이기림/ 영화사 연구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