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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인사

<씨네21>에서 원고 제의를 받고 무엇을 써야 할지 고민하던 끝에 일단 우리 회사의 탄생 일화부터 쓰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지면을 스쳐간 많은 필자들이 영화를 알고 싶어하는 독자들을 위해 자신들의 분야를 충실히 전달한 것처럼 나 역시 영화마케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에서이다. 내가 영화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1986년 7월, 양전흥업이라는 영화사 기획실에 들어가면서부터였다. 그때만 해도 몇몇 회사를 제외하고는 기획실을 둔 영화사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나마 기획일을 하고 있는 사람은 모두 남자였다. 여자는 내가 홍일점이었다. 여자여서 차별받는 것도 싫었지만 특별대우받듯이 화젯거리가 되는 것도 달갑지 않았다. 각자 위치에서 스스로의 실력과 노력으로 정당하게 평가받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영화계에서 기획일을 시작한 지 10년쯤 되던 1994년. 영화사업에 뛰어든 삼성은 홍보마케팅을 담당할 별도의 전문집단이 필요하다며 나에게 그 일을 의뢰하고 싶다는 제의를 했다. 언젠가 독립할 거라면 지금이 좋은 기회다 싶어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회사를 처음 만들면서 이름을 어떻게 지어야 할지 무척 고민스러웠다. 명색이 홍보마케팅사인데 이름 자체에 홍보성이 없으면 누가 믿음직하게 생각하겠는가. 자신들 이름도 제대로 못 짓는 사람들이 카피를 쓰고 홍보물을 만든다면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몇날 며칠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는 내게 남편이 던진 것은 ‘올 댓 시네마’라는 이름이었다.

‘영화의 모든 것’- 올 댓 시네마.이름값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걱정이다. 정말 ‘영화의 모든 것’을 보여줄 능력이 있을까?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할 때마다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부끄러움을 지울 수 없다.

1994년 7월1일.드디어 충무로에 영화홍보마케팅 전문회사가 입성했다. 이름도 창대하야 ‘ALL THAT CINEMA’.

세상일이 다 그렇겠지만 무언가 시작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두려운 일이다. 직장을 가지고 월급받는 생활을 하는 것도 쉽지는 않지만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하는 사업은 주위의 시선까지 겹쳐 몇배로 힘이 든다. 부푼 포부를 갖고 회사를 차린 지 횟수로 꼭 10년째다. 10년 동안 남자 직원은 단 한 사람뿐이었고, 지금도 ‘올 댓 시네마’의 식구들은 모두 여성이다. ‘일부러 남자는 안 뽑냐’, ‘남자를 역차별한다’, ‘아마조네스군단이다’ 등등 말들이 많다. 하지만 일부러 여자만 뽑은 것은 아니고 필요한 사람을 선택하다보니 여자들만 모였다.

요 몇년 사이에 여성 영화인력이 부쩍 늘었으며 분야별로도 꽤 다양해졌다. 특히 홍보마케팅 분야는 90% 이상이 여성이다. 업무 자체가 섬세하고 감각적인 것을 요구해 여성에게 잘 어울린다고 한다. 유혹적이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래서 이 계통에 발을 들여놓고 싶은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홍보마케팅사의 문을 두드리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홍보마케팅 일을 전문적으로 하겠다는 후배들을 만나면 무척 반갑다. 여자라고 특별히 플러스 요인을 지닌 것은 아니지만 홍보마케팅은 여자가 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직업 가운데 하나라고 믿고 싶다.

홍보마케팅은 영화의 처음이자 마지막 단계다. 아직 맨송맨송한 새색시의 얼굴에 신부화장을 하는 작업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화장을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결혼식장에 들어서는 신부의 모습은 달라 보인다. 물론 알맹이도 중요하지만 포장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영화 한편을 멋지게 포장해서 관객에게 선사하는 일. 그 일을 우리는 오늘도 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올 댓 시네마’에 애정과 격려와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께 이 지면을 빌려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여러분, 늘 고맙습니다. 열심히 할게요.’채윤희/ 올 댓 시네마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