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컬처잼 > TV 방송가
뉴스의 폐허 위에서 피는 웃음꽃,<개그콘서트>의 <9시 언저리 뉴스>
2003-05-22

KBS2 <개그콘서트> 매주 일요일 밤 8시50분

KBS 뉴스9

2003년 한국에서 가장 인기 좋은 뉴스는? MBC의 도, KBS의 <아침뉴스>도, SBS의 <나이트라인>도 아니다. 줄곧 시청률 30%의 언저리를 맴도는 <개그콘서트>의 다. <…언저리 뉴스>의 웃음 코드 속에는 이 나라 뉴스 프로그램의 엄숙주의에 대한 조롱이 들어 있다.

<…언저리 뉴스>의 인기는 뉴스 위기 시대의 반영이다. 정보 홍수시대의 텔레비전 뉴스는 속보성은 떨어지고, 심층분석에도 실패하고 있다. 아무리 새로운 척 떠들어도 상당수 시청자들은 이미 인터넷을 통해 뉴스의 실체에 대해 알고 있다. 게다가 대한민국 뉴스들은 수박 겉핥기식 현상전달, 찬반양론의 기계적인 나열, 교훈 섞인 마무리로 구성되는 전통적인 구조를 고수해 시청자들을 질리게 만든다. 게다가 시청자들은 첫마디만 들어도 무슨 내용인가에 어떤 흐름으로 전개될지를 대충 짐작하는 ‘빠꼼이’들이다. 뉴스 생산자들에게는 불행하게도 마지막 한마디까지 긴장하고 들어야 하는 ‘충격적인’ 뉴스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언저리 뉴스>의 인기비결은 도통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뉴스 프로그램의 무미건조함이다. 근엄한 ‘아버지의 얼굴’을 한 대한민국의 뉴스 프로그램들은 한없이 심각한 척하고 끊임없이 나무라고 싶어한다. 사소한 문제도 부풀리는 침소봉대, 닳고 닳은 소재도 새롭게 우려먹는 뻔뻔스러움, 잔뜩 힘을 준 지루한 어투는 뉴스 시청자들의 인내를 실험한다. 뉴스가 끝나면 우리는 시대를 개탄하고, “내 탓이오”를 되뇌이며 은근히 주눅든다. 이에 비하면 개그 아나운서 김지선과 장웅이 실없는 말장난 끝에 겸연쩍어하며 고개를 조아리는 언저리 뉴스는 최소한 폭력적이지는 않다. 게다가 실없는 미소까지 머금게 한다. 어차피 ‘알맹이 없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뉴스가 근엄할수록 <…언저리 뉴스>의 반전은 유쾌해진다.

뜯어볼수록 <…언저리 뉴스>의 구조는 실제 뉴스와 닮아 있다. 심각한 첫머리와 허탈한 마무리. 수미상관의 구조는 ‘대한 늬우스’ 이래로 이 나라 뉴스가 초지일관 견지해온 유구한 전통다. <…언저리 뉴스>는 단지 이 전통적인 코드를 살짝 뒤어 허탈한 설교 대신 애교 섞인 반전으로 마무리한다. 이미 뉴스의 ‘허무 코드’를 입력하고 있는 시청자들은 김지선, 장웅의 맥빠진 한마디에 알아서 웃음보가 터져나온다. 실없이 스며나오는 웃음 사이로 자못 심각한 뉴스 진행자의 얼굴이 겹쳐진다.

“여러분 이럴 수 있습니까. 이젠 정말 철저히 알고 드셔야겠습니다. 서울 시내 곳곳에 설치돼 있는 자판기 커피가… 맛있습니다.”

자판기 커피에 대장균이 우글거린다는 뻔한 고발은 자판기가 생긴 이래로 반복돼 왔다. 숱한 카메라 고발도, 밀착 취재도 세상을 살균하지 못했다. 우리는 여전히 대장균이 우글거리는 자판기 커피를 즐기고 있다. 차라리 ‘맛있다’는 경험이 훨씬 진실에 가깝다.

“다음은 가슴 훈훈한 소식을 들려드리겠습니다. 떡볶이 장사를 해서 30억을 모은 할머니가 못 배운 한을 풀기 위해 서울대 총장실을 찾아가… 자랑했답니다. 30억인데∼ 30억인데∼.”

뻔한 고발에 이어지는 지겨운 미담. 아름답지 않은 세상에서 할머니의 “30억인데”는 솔직하다, 통쾌하다. 가슴이 후련하다 못해 훈훈해지기까지 한다. 어차피 뉴스의 ‘진심’이 의심 받는 시대이므로.

<…언저리 뉴스>는 각종 패러디를 양산하며 진실은커녕 사실마저 왜곡하는 뉴스에 대한 비판 코드로 발전하기도 한다. 이라크 침공에 반대하는 반전평화운동이 활발하던 무렵에 유행했던 <CNN 언저리 뉴스>가 그 사례다. “드디어 이라크 군부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미국과 영국 동맹군의 용맹과 화력에 무력화된 이라크 남부 지역의 사단장과 부하 8천여명이 집단으로… 무너진 채 흩어져 싸우고 있습니다. 용감하게. 아… 무서버라.” 게시판을 돌아다니며 꼬리에 꼬리를 물고 <CNN 언저리 뉴스>는 덧붙여졌다. 의도를 가진 뉴스들이 많아질수록 더 많은 <…언저리 뉴스>들이 양산될 것이다.

<…언저리 뉴스>는 뉴스의 신뢰가 무너진 자리에서 피는 웃음꽃이다. 뉴스여, 제발 목에 힘빼고, 어깨에 뽕빼라. 고리타분한 설교를 집어치우지 않는 한 그대들의 시청률은 <…언저리 뉴스>의 언저리에도 미치지 못할 테니. 참, 제목만 훑어봐도 8할은 짐작 가는 신문의 위기는? 이미 <딴지일보>가 ‘똥꼬 깊수키’ 가르쳐주지 않았는가.신윤동욱/ <한겨레> 왜냐면 담당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