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 부산을 달굴 2003 부산아시아단편영화제가 5월15일부터 20일까지 경성대 콘서트홀 등과 시네마테크 부산에서 열린다. 한국영화인협회 부산 지회와 부산영상위원회가 공동주최하는 이번 행사에는 15개국 136편의 단편영화가 상영될 예정이다. 접수된 473편 중 엄선된 작품들은 한국단편경쟁 부문 46편, 아시아 극·실험영화 부문 38편, 애니메이션 부문 28편(국내 21편, 해외 7편), 다큐멘터리 부문 9편(국내 3편, 해외 6편)이며, 특별전에서 15편이 선보일 예정이다.
올해 행사의 가장 큰 특징은 실험영화에 대한 강조다. 실험적 작품들은 한국 단편 등 여러 부문에 고르게 분포돼 있을 뿐 아니라 특별전을 통해서도 집중적으로 소개된다. 특히 올해 3월9일 사망한 미국 언더그라운드 영화계의 거장 스탠 브래키지의 작품 5편이 소개되는 프로그램인 ‘스탠 브래키지: 빛으로 쓴 시’와 60년대부터 90년대를 아우르는 10편의 실험영화 모음전 ‘프레임의 정신’은 관심을 끈다.
또 하나의 초점은 타이, 이란, 이스라엘 등 아시아 3개국의 작품들이 진기한 빛을 발한다는 것. 특히 개막작 3편을 모두 타이 감독들의 영화로 선정한 데서 알 수 있듯, 이번 행사는 아시아의 새로운 영화 맹주로 떠오르는 타이의 젊은 영화인들의 약진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 한편 최우수 작품에 상금 500만원 등이 주어지는 이번 행사에서 심사위원은 오기민 마술피리 대표, 김인식 감독, 홍효숙 부산영화제 와이드앵글 프로그래머, 일본 히로시 오쿠하라 감독 등이 맡을 예정이다(문의: 051-744-1978, http://www.basff.org).
개막작
5월15일 오후 7시 경성대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개막식 직후 상영될 2003 부산아시아단편영화제의 개막작은 젊은 타이 감독들의 작품들이다. 미국에서 영화를 공부했다는 아딧야 아사랏 감독의 <기다림>은 어린 시절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한 여인을 찾아나선 중년 남성 쿤의 쓸쓸한 여행길을 좇아가는 일종의 로드무비다. 올해 방콕영화제, 싱가포르 단편영화제 등에서 수상한 작품이기도 하다. 그의 전작 <모터사이클>은 2001년 부산아시아단편영화제에서 상영된 적도 있다. 타베봉 프라툼웡 감독의 <키작은 아빠>는 키가 작은 아버지와 그보다 성장해가는 아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라타폴 자나라루안통 감독의 <오토바이쇼와 풍선>은 유원지에서 상연하는 오토바이쇼를 보고 싶어하는 풍선 파는 소년의 이야기다. 기술적으로나 미학적으로나 높은 경지를 보여주는 이들 영화는 타이영화의 미래가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듯하다.
한국단편경쟁 부문
지원작 265편 중 선정된 46편은 최근 수년 사이에 단편영화의 기술과 미학의 수준이 큰 성장을 보이고 있음을 입증한다. 특히 실험영화의 강세는 김동우 감독의 <나무>, 위준석 감독의 <나쁜 여자의 최후>, 문제용 감독의 등 실험성을 표방한 영화들뿐 아니라 이나 <기억, 발꿈치를 들다> <머리에 꽃을> <빛속의 휴식> <미소의 유일성> <머리가 아프다> 등 극영화들에서도 드러난다. 이들 작품은 호러영화의 문법을 차용해 대상물을 낯설게 보이게 하거나(<기억, 발꿈치를 들다>), 제한된 공간과 반복성을 통해 주제의식을 증폭하기도 하며(<미소의 유일성>), 편집을 통해 의도적으로 내러티브를 파괴(<머리가 아프다>)하기도 한다. 신비로운 소녀와 그녀를 관찰하는 한 남성의 이야기 <시즈쿠>나 관계의 단절과 고통의 전이를 미장센을 통해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사이에 두고> 또한 실험성이 두드러진 영화들.
일상에 대한 관심도 여전하다. 대학원생 남성과 직장여성 사이의 미묘한 관계를 밀착해서 보여주는 <선재네 집에서 하룻밤>, 시부모님의 제사를 준비하는 며느리의 현실과 머릿속을 그리는 <이효종씨 가족의 저녁식사>, 앵벌이 소녀와 조깅하는 남자의 순간적 만남을 보여주는 <갈치> 등은 이런 영역에 속한다. 불법운전교습소를 배경으로 사장과 여직원의 팍팍하고 미묘한 관계를 매우 섬세하게 묘사하는 이하 감독의 은 일상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보여준다.
또 탈북자가 한국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을 그리는 <여기가 끝이다>, 갑갑한 일상에서 탈출하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나타나는 한 여성의 이야기 <쥐구멍은 어디에 있나?>, 비 오는 날의 분위기를 경쾌한 리듬으로 묘사하는 도 주목할 만한 작품들이다. 배우 유지태의 ‘감독 데뷔작’ <자전거 소년> 또한 풋풋한 유년의 감성을 전달한다.
올 부산 아시아단편영화제는 개막작 3편 모두 타이 감독들의 영화로 선정됐다. 아딧야 아사랏 감독의 <기다림>과 타베퐁 프라툼웜 감독의 <키작은 아빠>, 배우 유지태의 감독 데뷔작인 <자전거소년> (맨 왼쪽부터).
아시아 극.실험영화 부문
이스라엘 마이클 페레츠 감독의 <손목시계>는 아버지의 유품인 손목시계를 잃어버린 소년의 이야기로 올해 베를린영화제에 출품되기도 했다. 이란 샤람 알리디 감독의 <끝까지 셀 수 없는 마을>은 쿠르드의 어느 산속 마을의 인구조사를 하기 위해 길을 나선 국세청 직원의 험난한 여정을 담았다. 일본 마사카주 사이토 감독의 실험영화 <햇살 한 조각>은 편집기법을 통해 일상의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려는 작품. 타이 송요스 수그마카난 감독의 <나의 코끼리>는 재미난 상상력을 가진 한 소년의 깜찍한 이야기.
다큐멘터리 부문
박효진 감독의 는 아이디어가 참신한 개인적 다큐멘터리. 감독은 오래 전부터 짝사랑한 남성 ‘그’에게 인터뷰를 청하고, 그동안 묵혀뒀던 이야기를 나눈다. 카메라의 ‘힘’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라 할 만하다. 이정민 감독의 는 황신혜밴드 멤버였던 조윤석의 지방의원 출마기를 담았다. 최진성 감독의 <그들만의 월드컵 Ver.2.0>은 지난해 각광받았던 ‘버전 1.0’을 재편집한 작품이다. 월드컵에서 소외됐던 ‘대한민국’ 사람들을 보여준다.
애니메이션 부문
이성강 감독의 <오늘이>는 신화적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작품. 계절의 향기와 바람이 시작되는 곳 원천강에 살던 야라는 소녀의 신비로운 이야기를 그린다. 이효정 감독이 만든 는 사진을 찍는 이와 그 대상간의 관계를 고찰하는 작품이며, 임아론 감독의 <I Love Picnic>은 북극에서 살던 백곰이 소풍을 가서 겪는 일을 그리는 3D 디지털애니메이션이다. 머리에 휴대폰을 달고 태어난 소년의 슬픈 이야기인 싱가포르 라이 제이슨 감독의 <가까이하기엔…>도 관심을 끈다.
특별프로그램
‘스탠 브래키지: 빛으로 쓴 시’에서는 새로운 시각체험을 제안하는 스탠 브래키지의 세계를 엿볼 수 있다. 대표작인 <독 스타 맨>은 필름 위에 색을 입히거나 렌즈를 왜곡해 만들어낸 이미지 등을 신비롭게 보여주며, <생명의 빛>은 카메라 없이 필름에 나방의 날개 등 다양한 물체를 콜라주한 영상이다. ‘프레임의 정신’은 실험영화계에서 유명한 피터 휴튼, 마틴 아놀드, 루이스 레코더 등의 작품을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