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눈으로 세계를 보자.”(see the world through women’s eyes)는 한결같은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다섯 번째 서울여성영화제가 문을 열었다. 97년 국제영화제로서 첫걸음을 뗀 서울여성영화제는 3회(2001년)까지 격년제로 이어오다 지난해인 4회부터 연례행사로 바뀌었다. 1회부터 4회까지 빠지지 않고 홍보팀으로 활약해 온 김태선(32)씨는 올핸 사무차장으로 직함을 바꿔 달고 사무국 지기가 됐다. 꼬박 7년간 여성영화제를 지켜온 그녀로서는 매년 영화제를 개최할 수 있도록 힘이 되어주는 관객의 관심이 그저 눈물겹고 고마울 뿐이다.
그동안 많은 사람이 다녀갔고, 그 속에서 나날이 호응과 만족도가 높아졌다지만 아직도 영화제 사무실에는 “거기에 남자도 갈 수 있나요?”라고 묻는 전화가 이따금씩 걸려온다. 여성영화제는 여성들만을 위한 영화제가 아니거늘, 여성감독 일색의 작품 선정도 그렇거니와 왠지 이분법적으로 나뉘는 듯한 영화제 이름 앞에서 남자 관객이 주춤하는 모양이다. 심지어 올해 처음으로 사무실에 남자 스탭이 배치됐다. 그동안은 프로그래머들과 스탭들이 모두 여자인 틀림없는 ‘여인천하’였던 셈이다. 김태선씨는 “일부러 남자 프로그래머를 넣지 말자고 한 건 아니고, 1회 때부터 같이 해온 프로그래머들이 그대로 남다보니 인력 충원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뿐이다. 그래도 올해는 사업부에 남자 스탭이 두명이나 배치됐다. 간혹 여성감독이 만든 영화만 틀지 말고, 여성의 시각을 가진 남성감독들의 작품도 포함시키라는 주문을 받는데, 차차 작품의 폭을 넓혀갈 생각”이란다.
사회사업과를 졸업하고 친구들은 전공을 살렸지만, 그녀만큼은 영화쪽에 더 몸이 달았다. 한번 시도했다가 안 맞으면 미련두지 않고 털어내겠다는 속편한 심정으로 일단 영화사에 들어가 홍보 일을 도왔다. 첫 단추가 중요하다고, 그러다 그녀가 소개받은 곳이 막 첫회 잔치를 준비하던 여성영화제 사무국이었다. 배운 게 도둑질이니 그녀는 그곳에서도 일단 홍보팀에 배속됐다. 가만히 주어진 일만 해내는 스타일이 아닌지라 적극적으로 기획하고, 남에게 미룰 일손 따위는 없어 스스로 실천해내는 영화제 일이 그녀의 성격에 맞았던 모양이다. 지금은 오히려 친구들과 만나면 쏟아지는 전공 용어를 되물을 정도로, 예전에 공부했던 게 오히려 생경할 정도다. 눈 높기로 소문난 그녀가 같이 살을 부대끼던 영화제 안에서 운명의 그를 만나 조용한 열애 끝에 결혼에 골인한 것은 그녀가 받은 최대의 보상.
올해 영화제는 7개의 섹션 안에 120여편의 먹음직스런 작품을 담고서 관객에게 손짓하고 있다. 인도여성영화제(3회), 대만여성영화제(4회)에 이어 필리핀 여성영화를 소개하기도 한다. 서울여성영화제와 긴밀한 유대를 맺고 있는 프랑스의 크레테유여성영화제와 독일의 도르트문트여성영화제, 일본의 오사카여성영화제에서 파견된 심사위원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역동적인 기운이 느껴지는, 살아 있는 영화제”라고 관객의 참여도를 놀라워했다. 김태선씨는 영화제가 오직 사람으로써 굴러간다는 것을 이제 실감하는 중이다.글 심지현 [email protected]·사진 정진환 [email protected]
프로필
→ 1972년생→ 1, 2회 서울여성영화제 홍보팀→ 3, 4회 서울여성영화제 홍보팀장→ 5회 서울여성영화제 사무차장→ 5회 부산국제영화제 홍보팀→ 1, 2, 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홍보팀→ 1회 한국영화축제, 서울 NET FESTIVAL 홍보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