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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들

친애하는 Y는 3월의 마지막주를 영화관과 반전시위 현장을 오가느라 꽤 바빴다. 나는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반전시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일본영화 거장 15인전’에 할애했다. 시위 현장으로 가는 Y에게는 “상영 중인 영화들이 기억의 전쟁을 치르고 있으니 영화관을 전쟁터 삼아야겠다”고 부끄럽게 둘러댔다. 상영한 15편 중 절반 정도가 전쟁의 그늘이 드리운 영화였다. 도쿄필름센터가 추려온 황금기 영화의 절반이 전쟁에 관한 것이라니 의미심장했다. 영화가 전쟁과 대결하는 이 ‘치열한’ 모습은 한국영화에서는 흔히 발견할 수 없는 미덕일 것이다. 전쟁의 그림자는 <다시 만날 날까지> <백치> <스물네개의 눈동자>와 <고지라>에서 표면에 드러났고 <무호마츠의 일생> <밤의 강>과 <열쇠>에서는 은밀하게 잠복해 있었다. 함께 영화를 보았던 일본영화동호회 회원들은 <밤의 강>과 <열쇠>에 주목했고 특히 이치가와 곤 감독의 <열쇠>는 김기영 감독의 <하녀>와 매우 유사하다고 입을 모았다.

전쟁의 그늘은 필름 속만큼이나 필름 밖에도 있었다. 내 시선은 스크린에 닿기 전에 종종 태평양전쟁을 겪었을 법한 연세의 노인들을 지나가야 했다. 기억의 전쟁은 이 노인 관객에게 더 적합한 말일 것이다. 특히 자막을 보지 않고 영화를 보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종종 발견할 때 그 기이한 느낌을 나는 설명할 수가 없다. 영화는 전쟁과 대결하고 생존자들은 전쟁의 기억과 함께 영화를 본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자명한 사실, 그들은 일본영화의 새로운 관객이 되었다.이지윤/ 비디오칼럼니스트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