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가 ‘오케이’하는 그날까지

KBS1TV <시청자칼럼 우리 사는 세상>, 월~금 오후 6시50분

MBC <파워 소비자세상>, 월요일 오전 11시

요즘 방영되고 있는 CF들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기업들이 떠는 아양이 얼마나 심한지 닭살이 돋을 정도이다. “고객이 오케이할 때까지” 서비스한다는 큰소리는 이미 고전이 돼버린 지 오래고, 자기 회사의 소비자가 아닌데도 눈길에 처박힌 차를 빼주겠다고 팔을 걷어붙이고, “어려울 때 힘이 되”는 친구가 되겠다며 간지러운 구애를 서슴지 않는다. 역사에서 가정만큼 어리석은 짓도 없다지만 만약 몇 백년이 지난 뒤, 지금 존재하는 모든 것이 사라지고 CF들만 남는다면 미래의 고고학자들은 21세기 초 한국을 고객행복 공화국쯤으로 오해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CF 밖에서 이런 달콤한 약속이 실현되고 있음을 체감하긴 쉽지 않다.

기업들이 내거는 갖가지 뜨거운 약속을 냉정하게 검증하는 프로그램들이 있다. KBS와 MBC의 소비자정보 프로그램 <시청자칼럼 우리 사는 세상>과 <파워 소비자세상>이 그 주인공들이다. 왠지 오래 전부터 방영된 것 같은 느낌을 주지만 <시청자칼럼…>은 1998년에, MBC의 <파워…>는 그보다 3년 늦은 2001년에 방송을 시작했으니 길게 보아도 이제 겨우 5년 남짓 되었을 뿐이다. 공영방송으로서의 체면을 차리기 위해 의례적으로 제작된 프로그램처럼 보이지만 제작진들이 들이는 공은 만만치 않다. 프로그램이 방영된 이후의 진행상황을 모니터해서 결과를 일일이 알려주는 정성은 기본이고, <시청자칼럼…>의 경우 참여연대와 연대하여 매주 1번 소비자 문제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까지 전달해주고 있다.

어느 시장에 갔더니 카드를 받지 않더라,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임금 계산방식이 요상하더라, 숙취해소 음료의 효능이 영 아니올시다라는 식의 개인적 체험에서부터 시민의 땅을 합법적으로 갈취하는 악법을 고쳐달라는 호소와 사기로 가입한 우체국 보험을 해지해 달라는 요구까지. 돈이 오가는 경제생활 중 이들 프로그램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은 없어 보인다. 그래서인지 이 프로그램들의 시청자 게시판에는 늘 억울함을 호소하는 글들로 가득하다. 살면서 어처구니없는 경우 한두번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게시판에 올라온 글들을 읽고 있자면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조차 분통이 터질 지경이다.

“소비자 주권시대”를 공언하며 공급자보다는 소비자의 목소리를 전달하겠다는 이들의 의욕은 평가받아 마땅하다. 1996년에야 자동차 리콜제가 시행되었을 정도로 소비자 운동이 척박하기 그지없는 현실에서 이들 프로그램이 기여하는 바는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명확하다. 소비자 운동이라고는 하지만 대부분 지극히 개인적인 억울함을 호소하는 데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어느 회사가 좀더 친환경적인지, 어느 회사가 노동자를 비합리적으로 해고했다든지 하는 식의 정보는 찾아보기 힘들다. 더욱이 특정회사에 대해 불매운동을 벌이는 등의 집단적 움직임이 다뤄지는 경우는 거의 볼 수가 없다. 어느 회사 라면에서 벌레가 나왔다는 식의 불만고발에 그쳐서는 제대로 된 소비자 정보프로그램으로서 기능을 다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소비자 운동가 이네카 젤든 루스트는 소비자 운동이란 물건에 말을 거는 것이라고 말한다. “너는 어디서 왔니? 누가 만들었어? 내가 지불하는 돈 중 얼마만큼이나 노동자에게 돌아가니?” 하고 말이다. 하긴 유통기한조차 제대로 알 수 없는 현실에서 이런 정보까지 제공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그야말로 우물에 가 숭늉 찾는 격이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일단 팔고보자는 기업들이 즐비한 상황에서 소비자 편에 서 있는 프로그램들이 있다는 사실만 가지고는 별 위로가 되지 않는다. 친구가 되자며 살며시 다가와서 등쳐먹고 사라지는 기업들이 버젓이 상장기업 행세를 하는 것이 이 나라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래가지고서야 어디 소비자가 “오케이”하는 그날, 도대체 오기는 오는 것일까?김형진/자유기고가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