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에 관한 다큐멘터리 몇편을 보고 뿌듯한 기분으로 활력연구소를 나오는데 문득 ‘그 선배’ 생각이 나 전화를 걸었다. “형, 활력연구소라고 알아?” “활력도 연구 하냐?” “그게 아니라 미디어센턴데… 다큐멘터리나 독립영화도 볼 수 있고 편집도 할 수 있고 사진도 볼 수 있는 그런 곳인데… 하여튼 되게 재밌어요. 시간 좀 내요.” “어디 있는 건데?” “충무로역이요.” 나는 지하철 안이라 짧게 약속시간만 정하고 퍼블릭 액세스에 대해서 말하려다 참았다. 퍼블릭 액세스, 글자 그대로 공공이, 공공적 차원에, 누구나 공공적으로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권리로 아직 초보적인 논의 단계에 있지만 미디액트와 활력연구소 같은 열린 공간을 만들어냈을 만큼 중요한 개념이다. 그 선배는 만학도로 올해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신촌의 C교회에서 그 지역 대중을 상대로 매주 한번 주최하는 ‘목요쉼터’의 공연기획(콘서트, 영화 상영, 공연, 공개방송 등)을 몇년째 담당하고 있다. 뇌의 반은 예수 반은 대중문화로 차 있는 그 선배는 두 문화 사이의 소통에 어떤 불편과 부족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나는 두 문화 사이에 벌어진 상당한 간극에 퍼블릭 액세스 개념이 다리를 놓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교회 역시 공공적 차원이 존재할 것이다. 육교도 심지어 화장실도 공공적이지 않은가? 그러나 경사로가 없고 계단만 있는 육교는 휠체어 사용자와 자전거 사용자의 접근이 어렵다. 공공적 차원엔 늘 소수자가 넘기 힘든 문턱이 존재한다. 장애인영화제는 영화의 문턱을 알게 하지 않았나? 수화방송은 방송의 문턱을 알리고 있지 않나? ‘그 선배’를 생각하면서 예수와 대중문화 사이에 어떤 공공적 차원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형 그런 게 활력소가 될 수 있지 않을까?”이지윤/ 비디오칼럼니스트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