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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내러티브의 힘,<나의 그리스식 웨딩>

■ Story

서른살 노처녀 툴라(니아 바르달로스)의 삶은 갑갑하기만 하다. 그리스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그녀의 부모가 경영하는 그리스식 식당 ‘댄싱 조르바’의 일을 거들지만 단조롭고 지리하다. 부모들은 시집갈 것만 종용하고, 마음에 드는 남자는 안 나타나고, 하루 종일 왁자지껄 떠들어대는 그리스인 친척들의 소음에 넋이 나갈 정도다. 어느 날 식당에 손님으로 온 청년 이안(존 코벳)을 보고 반한 그녀는 연정과 함께 삶의 의욕도 타올라 대학에 갈 결심을 한다. 툴라는 컴퓨터를 전공하면서 이모가 차린 여행사의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이안을 다시 만난다. 이안과 마침내 로맨스가 싹트지만, 그리스인이 아니면 시집보낼 수 없다는 집안의 반대에 직면한다.

■ Review

영화 도입부에 흘러나오는 툴라의 독백. “그리스 여인에게 주어진 삶의 과제는 다음의 세 가지다. 그리스 남자와 결혼하고, 그리스 자식들을 많이 낳고, 그들이 죽을 때까지 밥해 먹인다.” 툴라는 그게 어디 사람이 할 짓이냐는 투로 말하지만, 이건 그리스만이 아니라 어느 나라든 전통적인 대가족 사회가 지니는 특징이기도 하다. 가부장적이고 폐쇄적이다. 툴라의 친척들은 시카고에 식당, 여행사 등을 꾸리면서 안정되게 정착했지만 매일 자기들끼리 만나 수다를 떨며 그리스계 미국인 소사회에 갇혀산다.

이런 사회의 또 다른 특징 하나는 시시콜콜 간섭과 관심, 구설수로 인해 구성원들의 프라이버시가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일탈을 꿈꾸는 자에겐 숨막히는 사회다.

일탈을 꿈꾸는 툴라의 눈에 토박이 미국인 이안이 들어온다. 이안 앞에서 툴라는 자기 집안과 그 문화가 부끄럽지만, 개방적인 이안은 타문화에 대한 편견이 없다. 남은 문제는 이방인 사위를 금기시하는 툴라의 부모. 얼핏 한 여자의 가부장 사회로부터의 탈출 내지 독립기거나 <브리짓 존스의 일기>처럼 노처녀의 짝구하기일 것 같기도 하던 영화는 이제 분명하게 가닥을 잡는다. 사랑하는 연인과 결혼에 반대하는 집안의 충돌 및 화해라는 로맨틱코디미의 고전적인 주제다. 그 갈등의 원인을 민족문화의 차이에 놓는 것도 다민족국가인 미국의 50년대 TV드라마에서 자주 선보였던 고전적인 방식이다.

<나의 그리스식 웨딩>은 평이하면서도 충실하게 장르의 공식을 좇는 영화다. 500만달러의 저예산으로 만든 이 영화가 미국에서만 2억4천만달러의 흥행수익을 올린 건, 결혼과 가족을 대치시켰다가 화해하게 하는 고전적인 내러티브가 시대를 넘어서는 소구력을 지녔음을 새삼 입증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영화의 좀더 큰 장점은 그리스 집안의 문화와 인물들에 대한 묘사다. 그 문화에서만 가능한 유머와 해프닝을 적절히 구사하면서, 완고하지만 결국 자식에게 지는 툴라의 부모들에게서 모두의 가슴속에 들어 있는 부모상을 끄집어낸다. 그럴 때 미국의 개인주의와 그리스 대가족 문화의 차이는 대도시와 시골, 타지와 고향, 또는 어른이 된 뒤와 어린 시절의 차이로 외연이 확장된다.

잠자리 안경에 도무지 세상 살맛 안 난다는 얼굴을 하고 있던 툴라는 그리스 식당에 손님으로 온 이안에게 반해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위 사진은 `사랑에 빠지기 전 vs 사랑에 빠진 뒤`의 툴라의 달라진 모습.

툴라는 이안과의 교제를 다시 생각해보라는 엄마의 말에 “이안을 사랑해요”라고 답한다. 사태가 만만치 않음을 안 엄마의 말. “그래, 얘야. 뭣 좀 먹어라.” 얘기를 접고 시간을 벌기 위해 먹는 일을 권하는 그 어법이 정겹다. 다이어트와는 거리가 먼, 푸짐한 음식을 즐기는 그리스 문화의 한 단면이 엿보인다. 이윽고 딸의 편에 서게 된 엄마가 아버지를 설득하겠다며 툴라에게 말한다. “남자가 머리라면 여자는 목이야. 머리는 목이 돌아가는 대로 따라 돌 수밖에 없단다.” 결국 아버지도 엄마를 따르지만 속으로는 못마땅하다. 이안을 만났을 때, 이안이 못 알아듣는 그리스어로 말한다. “우리 조상들이 철학을 논할 때 너희 조상들은 나무를 타고 다녔어.”

쉴새없이 먹고 떠들고, 자식을 많이 낳아 사촌이 수십명에 이르는 이 그리스 집안의 문화는 다분히 과장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리스계의 한 필자는 filmcritic.com에 쓴 리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관객은 이 영화가 유머를 자아내기 위해 그리스식 문화를 과장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 집을 포함해 대다수 그리스계 가정에서 그건 사실이다. 남자들은 막 잡은 양의 뇌를 먹기 위해 거실에서 정원까지 싸우며 달려간다.”

툴라의 가족은 사람 수만 많은 게 아니라 엄청 요란뻑적지근하다. 툴라는 가족 때문에 이안과의 사랑이 난관에 부딪힐 것이라고 걱정하지만, 과연 결론은?

냉정하게 보면 이 영화는 <옵서버>의 비판대로 “친숙한 클리셰들의 반복적인 나열”이기도 하다. 또 갈등을 해결하는 데 툴라의 역할이 거의 없다. <빌리지 보이스>는 “툴라의 결혼을, 여자의 자아실현이라는 페미니스트적 이상의 승리로 보기란 어렵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영화가 전통적인 대가족 사회에 대한 향수를, 매우 영리하게 자극하고 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툴라와 이안의 로맨스를 뒷받쳐주는 디테일이 빈약함을 감안하면, 그 향수가 미국에서의 흥행 성공에 큰 몫을 한 것처럼 보인다. 할리우드가 <가문의 영광>의 리메이크 판권을 사간 것도 같은 맥락 아닐까. 임범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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