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은 콘티그리고, 동생은 딱딱이치고
연인과 부부 사이에만 궁합이 있는 것은 아니다. 형제와 친구, 직장동료 같은 가까운 곳에서 몸 부대끼는 사람들 사이라면 궁합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 헌법 제1조>의 연출부 소속인 김태형(31)·김만근(27) 형제는 궁합 좋기로 소문난 ‘4살 차이’답게 찰떡 궁합을 자랑하는 사이다. 유독 영화계에서는 형제애가 더욱 돋보이는 법. 미국의 워쇼스키 형제, 코언 형제, 패럴리 형제에 이어 한국에는 김태형·만근 형제가 있다. 아직 자신들의 작품으로 인사를 올린 것은 아니지만 어디 시간이 문제랴. 군대 복무 시절 형 김태형이 틈틈이 써온 시나리오를 동생 만근씨에게 보내자 알아서 척 영화로 찍더라는 전설만으로도 그들의 영화 더부살이는 꽤 오래되고, 또한 공고한 것이다.
영화판에 먼저 발붙인 사람은 동생 만근씨다. 고등학교 졸업 뒤 영화 전공을 눈앞에 두고 선택을 망설이던 동생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보낸 것은, 정작 공업디자인을 전공하던 형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헤비메탈과 하드고어 스릴러로 이어지는 일관된 취향을 선사한 것도 형이었다. 정신적 지주와 감수성의 주인이었던 형은 그러나 자신의 앞날을 그저 자동차 디자이너 정도로 가늠할 뿐이었다. 동생이 영화판에 무사히 안착했다는 소식은 그에게 안도감 이상의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그것은 부러움과 질투였다. 상병 진급 신고를 마치던 날, 형 태형씨는 비로 짝사랑하던 영화에 투신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제대 뒤 밀려드는 일 제의에 나름의 신중함으로 결정을 내렸건만, 건드리는 영화마다 엎어지는 통에 의기소침해진 그였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그의 여섯 번째 영화가 될 터였다. 그것마저 엎어지면 안 되는데…. 각색작업을 마친 시나리오를 척 건네주고 나니, 이 영화 왠지 정이 가더란다. 엎어지지 않을 것 같다는 자신감도 생기고. 일단은 동생에게 연출부 일을 제안했다. 동생이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태형씨도 연출부 밥을 함께 뜨기 시작했다.
태형씨의 담당은 콘티작업과 각색, 컴퓨터 특수효과와 미술 그리고 헌팅까지, 동생 만근씨는 자잘한 소품을 챙기고, 딱딱이(슬레이트) 치는 일을 분배받았다. 태형씨는 자신의 디자인 경력을 살려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유머러스한 미술을 완성하는 것이, 동생 만근씨는 카메라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게 현재의 목표라고.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빡빡한 촬영 일정으로는 최근 제작되는 영화 중에서 예를 찾기 힘들 정도다. 특히 윤락가신을 위해 빌린 장소의 대여기간이 일주일이라 매일 새벽에서 새벽으로 이어지는 촬영 스케줄로 좀비가 되는 고통스런 경험도 따랐다. 한달에 무려 18회차까지 찍는 무리한 촬영 일정이 진행되는 동안, 서로가 조금이나마 편할 수 있었던 건 말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이해하는 형제간의 뛰어난 교감이 아니었을까. 의도와 우연이 혼재된 영화라는 특이한 매체 안에서 이들이 들려줄 하이브리드, 고딕풍, 음울 혹은 재밌는 영화의 단상을 얼핏 본 것 같다.글 심지현 [email protected]·사진 이혜정 [email protected]
프로필 : 김태형 1973년생 ·김만근 1977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