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청나라 공주를 구하러 미국에 왔다가 정착한 장 웨인(성룡). 수많은 현상수배범을 잡으며 잘 나가던 보안관 장에게 조그만 상자 하나와 함께 편지가 배달된다. 여동생인 린(판웡)이 보낸 편지에는 옥새를 지키던 아버지가 살해당하고, 옥새를 도난당했다는 비보가 적혀 있다. 장은 허풍쟁이 친구 로이 오배넌(오언 윌슨)에게 맡긴 돈을 찾아 범인이 있다는 런던으로 가기 위해, 우선 뉴욕으로 향한다. 하지만 로이는 이미 모든 돈을 날리고 호텔에 찾아오는 여자들을 꼬시며 웨이터로 살아가는 신세다. 결국 오배넌과 웨인은 무일푼으로 런던에 도착하여 린을 찾아가 범인의 정체를 알게 된다. 웨인의 아버지를 죽인 범인은 영국의 왕위를 노리는 라스본 경이었고, 그의 배후에는 중국에서 추방당한 왕족 우가 있었다.
■ Review
성룡의 할리우드 히트작 <러시아워>가 <폴리스 스토리>라면, <샹하이 눈>은 <프로젝트 A>에 비교할 수 있다. 성룡 영화의 전형을 창출해낸 기념비적인 작품 <프로젝트 A>는 근대화 물결이 밀어닥친 상하이를 배경으로 진기한 풍물과 성룡의 애크러배틱한 액션이 어우러진 새로운 컨셉의 영화였다. 2000년 개봉된 <샹하이 눈>은 미국 서부의 풍경에 중국 무술인의 아기자기한 액션을 더하며 독특한 볼거리를 선보였다. 하지만 그건 이미 이연걸의 <황비홍-서역웅사>에서도 보여준 것이었다. 충분히 즐거웠지만, 조금 아쉬웠던 <샹하이 눈>에 비해 <샹하이 나이츠>는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화려한 풍물에 세련된 유머, 그리고 성룡과 견자단의 화끈한 액션까지 더해 포만감을 안겨준다.
엘튼 존과 쿨리오의 뮤직비디오, 하이네켄 광고 등으로 뛰어난 영상감각을 인정받은 데이비드 돕킨은 1998년 리들리와 토니 스콧 형제가 제작한 <클레이 피죤>으로 데뷔했다. 와킨 피닉스와 빈스 본이 나오는 블랙코미디 <클레이 피죤>은 데이비드 돕킨의 장기가 영상만이 아니라 이야기 전달에도 있음을 증명했다. 아기자기하게 인물과 사건들이 맞물리는 <샹하이 나이츠>는 데이비드 돕킨의 유쾌한 연출력이 돋보이는 영화다.
<샹하이 눈>에 이어 <샹하이 나이츠>의 각본을 쓴 앨프리드 구프와 마일즈 밀러는 인용과 변주에 탁월한 능력을 지닌 작가들이다. <샹하이 나이츠>에서는 과거와 현재, 허구와 역사적 사실을 허무맹랑하지만 섬세하게 연결시키며 웃음을 자아낸다. 과거의 인물과 실재하는 배경 그리고 영화사의 사건들까지 휘황찬란하게 끌어들이는 덕에 그것들을 발견하는 즐거움도 만만치 않다. 서부로 간 찬왕은 자신의 이름을 장 웨인이라 개명하고, 런던에서 만난 소매치기 소년의 이름은 찰리 채플린이다. 뒷골목의 시장에서 우산으로 펼치는 성룡의 액션 위에 <사랑은 비를 타고>가 흐르고, 빅 벤에 매달린 로이 오배넌의 모습은 무성영화 시대의 코미디언 해롤드 로이드의 <세이프티 래스트>의 장면을 연상시킨다. ‘잭 더 리퍼’가 어느 날 갑자기 살인을 멈추고 사라진 이유도 <샹하이 나이츠>를 보면 알 수 있다.
귀족으로 가장한 오배넌에게 라스본의 하인이 이름을 묻자 오배넌은 이리저리 눈을 돌리다가 벽시계에서 셜록과 홈스라는 이름을 따오고, 라스본의 소굴에서 도망치느라 훔쳐입은 옷은 바로 홈스와 와트슨의 단골 복장이다. 그 덕에 웨인과 오배넌을 도와주던 아티 도일 형사는 영감을 얻게 되고, 마침내 그 유명한 코넌 도일이란 이름으로 전업하여 소설을 쓰게 된다. 황당하다고? 물론이다.
하지만 <샹하이 나이츠>는 모든 것을 유쾌한 농담으로 만든다. 그 경쾌하고 현란한 농담이 바로 <샹하이 나이츠>의 즐거움이다. 라스본이 주최한 파티에 잠입했던 웨인과 오배넌이 자동차를 타고 도망치다가 겨우 도착한 풀밭 위에는 거대한 돌들이 놓여 있다. 이런데 누가 돌을 쌓아놓았냐고 투덜거리는 오배넌의 머리 위로 보이는 것은 스톤헨지다. 왜 런던 교외에 스톤헨지가 있냐고 묻는다면, <샹하이 나이츠>를 즐길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
성룡 단독 주연인 <턱시도>도 이미 히트를 쳤지만, <샹하이 나이츠>의 묘미는 역시 성룡과 오언 윌슨의 앙상블이다. <아이 스파이>에서도 보여준 것처럼 오언 윌슨은 파트너를 돋보이게 하는 능력에서는 가히 천부적이다. <아이 스파이>의 어설픈 스파이 못지않게, <샹하이 나이츠>의 말많은 바람둥이 로이 오배넌은 성룡의 액션을 부각시키는 파트너로서 자신의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한다. <러시아워>에서 ‘말’을 담당하던 크리스 터커와 비슷하기는 하지만, 오언 윌슨은 배경으로 물러서는 데도 익숙하다. 그래서 <샹하이 나이츠>는 <러시아워> 시리즈보다 훨씬 과거 성룡의 홍콩영화를 떠올리게 한다.김봉석/ 영화평론가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