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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치미 이프유캔>의 실존모델 프랭크 애버그네일
2003-02-04

장인의 경지에 오른 사기꾼

얼마 전 예비군 훈련을 갔을 때 일이다. 훈련장에서는 주변 사람들과 그다지 말을 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그날도 조용히 시간을 때우는 중이었다. 그런데 내 옆에 앉아 있던 사람이 자꾸 내게 말을 걸었다. 몇번 귀찮다는 내색을 하긴 했지만 집요하게 이런저런 것을 캐묻기에 답변을 해주다가, 어느새 나도 약간 호기심이 동하기 시작했다. 주로 그 사람이 자신의 사는 이야기를 했는데, 부산에서 올라온 그가 모 대형 레스토랑 체인점에서 일하면서 겪은 이야기는 아주 재미있었다.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신이 나서 하는 그는 문득, “어디서 일하세요”라고 물었고, 나는 “컨설팅회사에 다닌다”라고 대답을 했다. 황당한 것은 내 대답을 듣자마자 그의 표정이 약간 굳어지면서 “아휴, 돈 받으러 다니시느라 힘드시겠어요. 부산에 있을 때 컨설팅회사 다니는 형님들을 봤는데, 그렇더라구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가 말했던 컨설팅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대충 짐작할 수는 있었다. 확실한 것은 1886년 아서 D. 리틀이라는 미국인이 최초로 시작을 한 뒤,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매킨지, BCG, Bain 등의 업체를 통해 전세계적인 명성을 쌓은 경영 컨설팅과는 엄청난 괴리가 있었다는 것이다. 하긴 요즘 무슨무슨 컨설팅이라는 이름의 상호는 너무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 사실. 부동산중개사무소에서부터 흥신소에 이르기까지 그 스펙트럼이 넓기도 하다. 물론 컨설팅이 반드시 경영 컨설팅만을 의미해야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컨설팅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경우, 그야말로 컨설팅 공화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다양한 컨설팅업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특정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전문가적인 조언을 제시하는 업종을 일반적으로 컨설팅이라고 부르는 것.

얼마 전 개봉된 스티븐 스필버그의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실제 모델이 된 프랭크 애버그네일 역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Abagnale & Associates’라는 컨설팅회사를 1976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중이다. 영화 속에 그려진 것과 같은 애버그네일의 경력에 비추어, 이 컨설팅회사가 주로 어떤 분야의 컨설팅을 하는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수표사기, 불법도용, 문서위조 등이 그 분야. 현재까지 무려 1만4천여개의 국가기관, 금융기관, 일반회사들에 사기, 도용, 위조에 대한 자문을 제공하고, 새로운 프로세스를 도입하도록 도와주었다. 그중에는 FBI도 포함되어 있는데, FBI 아카데미에 직접 출강해 강의를 도맡아할 정도의 수준이다. 주변에서는 FBI와 그의 얽히고 설킨 관계를 아주 흥미로워하는 것이 사실.

그가 그렇게 컨설팅사를 차려 성공을 하고 또 할리우드 최고 감독에 의해 그의 이야기가 영화화되기까지, 심한 우여곡절이 있었다. 16살 때부터 사기행각을 시작해 약 5년 동안 무려 250만달러 규모의 위조수표를 발행하고 5년간 옥살이를 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 물론 영화 속 내용과 실제는 많은 차이가 있었지만 말이다. 그런 차이가 발생한 원인은 1980년에 출간되어 그를 세상에 본격적으로 알리게 된 동명의 평전이, 조금 과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프랭크와 겨우 4일간 인터뷰한 내용을 기초로, 기자였던 스탠 레딩이 허구를 더해 책을 완성시켰던 것. 특히 토니 커티스가 주연한 61년작 영화 <위대한 사기꾼>(The Great Impostor)이 그 허구 부분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하튼 책이 출간될 당시엔 저자 스탠 레딩이나 주인공 애버그네일도 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 사실이다. 70년대 말 미국 TV의 토크쇼를 화려하게 장식하며 주목을 끌긴 했지만, 책이 날개돋친 듯이 팔려나가리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 그가 세운 컨설팅회사가 본격적으로 사세를 확장한 것도 바로 그즈음부터였다. 이후 애버그네일은 자신의 범죄 경험이 ‘돈’이 된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었고, 2001년에는 <도둑질의 기교: 사기를 알아채고 방지하는 방법>(The Art of The Steal: How to Recognize and Prevent Fraud)이라는 책을 직접 출간하기도 했다. 그리고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영화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는, 컨설턴트의 경험을 살려 직접 제작과정에 조언을 제공하는 역할까지 수행하기도 했다.

그 결과 <에린 브로코비치>의 주인공 브로코비치의 경우처럼 애버그네일 역시 영화의 성공과 함께 대중들의 시선을 끌고 있지만, 그런 시선에 대한 애버그네일의 평가는 좀 색다르다. CHUD.com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70년대의 경험처럼, 나에 대한 관심은 몇달이 가지 못하고 수그러질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라는 사람의 존재를 잊어버릴 것이다. 나는 그런 상황이 다시 발생하길 원한다. 그리고 이 상황이 내 인생의 마지막 장을 장식하길 바란다”고 밝히며, 컨설턴트로서의 직업에 충실하고 싶은 것을 강조했다. 그런 그의 인터뷰 내용을 보고 나니, 애버그네일이라는 인물이 이젠 어느 정도 장인(?)의 경지에 오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예 지금의 상황을 초탈할 수는 없을 테지만, 그것을 자신의 과거에 대한 사람들의 일시적인 관심 정도로 치부하고 자신의 본업에 충실하려는 모습이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이철민/ 인터넷 칼럼니스트 [email protected]

<캐치 미 이프 유 캔> 공식 홈페이지 : www.dreamworks.com/catchthem

프랭크 애버그네일이 운영하는 범죄 예방 컨설팅사 공식 홈페이지 : www.abagnale.com

프랭크 애버그네일과의 인터뷰 : www.chud.com/news/dec02/dec22abagnale.php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