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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 앨런식 웃음의 방식,<스몰 타임 크룩스>
2003-01-21

■ Story

접시를 닦는 일을 하고 있는 레이(우디 앨런)는 어느 날 큰돈을 벌 기막힌 계획이 있다며 아내 프렌치(트레이시 울먼)에게 이야기한다. 그의 계획인 즉 은행 옆의 가게를 인수해 가게 지하실에서 은행 금고까지 터널을 파자는 것. 결국 프렌치는 범죄행위에 대한 일종의 방어막으로서 쿠키 가게를 열고 레이 일행은 은행금고에 이르는 터널 파기 작업을 실행한다. 그런데 레이와 프렌치에게 뜻밖의 행운이 찾아온다. 프렌치의 쿠키 가게가 갑자기 번창하게 된 것. 결국 레이와 프렌치는 거대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벼락부자가 된다. 그럼으로써 상류사회에 진입한다. 그러나 어느 날 프렌치는 자기를 가리켜 ‘교양’이 없는 졸부라 비난하는 소리를 엿듣게 되고 잘생긴 미술상 데이비드(휴 그랜트)에게 속성으로 교양을 가르쳐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는 사이 레이와 프렌치의 사이는 점점 멀어져간다.

■ Review

우디 앨런의 데뷔작 <돈을 갖고 튀어라>(1969)의 모자란 범죄자 버질이 나이를 먹으면 이렇게 될까 <스몰 타임 크룩스>의 주인공 레이는 말 많고 지나치게 예민하며 선병질적인, 다시 말해 지극히 앨런적인 캐릭터이지만, 그는 전혀 지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그에 대해 우리가 갖는 일종의 선입견을 거스르는 인물이기도 하다. 감방 동료들이 자신에게 ‘두뇌’라는 별명을 붙여줬다며 우쭐해하는 그는 사실 그게 어리숙한 자신을 비꼬는 표현이란 것도 알지 못할 정도다. 그런 레이가 은행털이에, 그것도 우두머리 자격으로 가담했으니, 이 범행 과정이 순탄치 않으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아니나 다를까, 은행 가까이에 위치한 가게를 인수해 그 지하에서 은행 금고에 이르는 터널을 파겠다는 레이 일행의 계획은 처음부터 어려움에 부닥친다. 배수관을 터뜨리는 바람에 지하실을 물바다로 만드는가 하면 지도를 잘못 보는 바람에 엉뚱한 방향으로 터널을 파는 헛수고를 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스몰 타임 크룩스>의 출발은 분명 지난주에 국내에서도 개봉한 <웰컴 투 콜린우드>(앤서니 루소·조셉 루소, 2002)를 연상케 한다. 서툴기 이루 말할 데가 없는 범죄자들의 (거의 필연적인) 패배를 향한 우스꽝스런 범죄를 다룬다는 점에서 <스몰 타임 크룩스>는 분명 <웰컴 투 콜린우드>와 대응관계를 이루는 면이 있다(영화평론가 조너선 로젠봄은 <스몰 타임 크룩스>의 참고 대상이 된 한편의 영화로 이탈리아산 코믹범죄영화 <마돈나 거리에서의 큰 건수>(마리오 모니첼리, 1958)를 드는데, 공교롭게도 이 영화는 <웰컴 투 콜린우드>의 ‘원본’에 해당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러나 <스몰 타임 크룩스>는 코믹 범죄스토리라는 이 출발지점에서 그리 오래 머물지 않는다. 사정이 미처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흘러감으로써, 다시 말해 은행털이를 위한 일종의 위장전술 정도로 생각하고 열었던 쿠키 가게가 뜻밖에 큰 성공을 거두게 되면서, 성공확률도 높지 않고 불필요한 노고만을 요하는 범죄행위에 더이상 레이 일행이 관여할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

레이와 그의 아내 프렌치가 경영하는 쿠키 가게는 체인점을 둘 만큼 거대한 비즈니스로 급성장했다. 이렇게 사정이 돌변했으니 영화가 새로운 방향으로 발걸음을 내딛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다. 그 새로운 진전 방향의 발단점을 영화는 진정으로 상류사회의 일원다운 삶을 누려보겠다는 프렌치의 애절한 욕구에서 찾는다. 자신이 그저 못 배운 졸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프렌치는 핸섬한 미술상 데이비드로부터 교양속성강좌를 받기로 한다. 이제 영화는 상류사회에의 ‘진정한 진입’에 불가결한 요소로서 교양의 문제를 둘러싸고 코믹한 전개상황을 만들어낸다. 비유해 보자면, <스몰 타임 크룩스>는 <웰컴 투 콜린우드>를 지나 <귀여운 빌리>(Born Yesterday, 루이스 만도키, 1993)- 조지 쿠커의 50년작을 리메이크한 영화로 교양이라곤 전혀 없는 벼락부자의 정부가 한 남자의 개인교수를 받으며 변화해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 로 이월해가는 영화다.

이쯤에서 잠깐 앨런의 예전 작품 <스타더스트 메모리즈>(1980)의 한 장면을 상기해보자. 여기서 영화감독 역을 맡은 앨런은 누군가로부터 이런 말을 듣는다. “나는 예전 당신의 우스운 영화들이 더 좋았어요.” <스몰 타임 크룩스>는 바로 이런 생각을 가질 사람들의 마음에 들 법한 영화일 것 같다. 영화는 시종 가라앉는 법 없이 날렵하게 우스운 상황들을 이어가며 부담없는 재미를 안겨준다. 그렇다고 이 가벼운 코미디영화에 아쉬움이 남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편의상 대략 세개의 장(章), 즉 어설퍼서 웃긴 은행털이 시도에 대한 범죄 코미디인 첫째 장, 계층의 문제로부터 파생된 코미디를 그린 둘째 장, 그리고 또 다른 상황의 반전에 의해 레이가 제목 그대로 ‘삼류도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클라이맥스 상황을 그린 셋째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세개의 장에다가 영화는 웃음의 강도를 골고루 분포시키지 못한다고 할 수 있는데,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영화의 핵심부분에 해당하고 따라서 러닝타임도 가장 긴 둘째 장이 가장 흥미가 떨어진다는 점이다. 예컨대 여기서 등장하는 교양 갖춘 미남 데이비드(휴 그랜트)의 존재는 첫장에서 비실비실 웃음을 새어나오게 만들던 레이의 멍청한 동료들, 특히 데니의 공백을 메우기에는 그를 둘러싼 관계의 상투성 때문에, 그리고 그 캐릭터의 밋밋함 때문에 다소 힘이 부친다. 그렇다고 계층 상승을 꿈꾸는 졸부의 헛된 야심에 대한(상류사회의 교양이란 것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야유에 그리 농담 이상의 큰힘이 실려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하지만 아직 실망만 하기에는 이르다. 셋째 장에 이르면 졸부에서 어설픈 도둑으로 돌아온 레이와 아내 프렌치의 친척인 메이(일레인 메이)- 영화에 그리 오래 등장하지는 않음에도 이 영화를 통해 오래 기억될 만한 캐릭터!- 의 ‘덤 앤 더머’ 콤비가 펼쳐내는, 서투르기 짝이 없어 흥미로운 절도 시퀀스가 나오니까 말이다. 아마도 이 시퀀스가 없었다면, 앨런의 필모그래피에서 그리 돋보일 자리에 처하지 못할 게 분명한 이 영화의 재미는 상당히 반감되었을 것이다. 어느덧 70살에 가까이 간 앨런은 <애니 홀>(1977)이나 <맨하탄>(1979) 같은 대표작을 만들던 전성기는 지났지만 여전히 자신만의 방식으로 영화를 보는 우리를 웃음짓게 만드는 법을 알고 있는 듯하다. 홍성남/ 영화평론가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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