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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국] 가신 등용론
2003-01-15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와 대통령직인수위에 대한 뉴스가 연일 넘쳐나고 있다. 여러모로 각별하게 주목받는 노무현 당선자와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가 큰 탓이려니 했다. 그런데 보도되는 기사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기대가 큰 만큼 시기와 시샘도 적지 않아 보인다. 언필칭 유력 신문들의 기사대로라면 인수위가 나라를 망쳐놓지나 않을까 가슴을 졸여야 할 판이고, 새 정부도 싹이 노래 보인다. 하지만 이런 기사들을 보고 나면 인수위나 새 정부에 대한 우려보다, 상당한 비약이지만 우리 사회의 가장 시급한 과제가 언론개혁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여러 사안 중에서도 언론의 이른바 ‘측근, 가신 타령’은 특히 거슬린다. 오랫동안 같은 길을 걸어온 사람을 가까이 두고 ‘참모’로 쓰는 것이 무슨 문제라는 것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영화 한편을 만들어도 사람들끼리 뜻이 맞아야 결과가 좋은 법인데, 하물며 한 나라를 통치하는 데 철학과 신념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주도 세력을 이루는 것이 당연한 일 아닌가. 잘은 몰라도 미국은 대통령이 바뀌면 아예 백악관과 정부 등 행정력이 미치는 요직에는 모두 자기 사람을 재배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그동안 우리는 자리에 따르는 약간의 권력이라도 생기면 그 주변에 파리떼처럼 사람이 꾀어 줄을 대고, 또 이를 사리사욕에 활용하는 질긴 커넥션을 지겹도록 보아왔기에 지레 방정을 떠는 것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의 본질은 철학과 신념에 따라 사람을 중용하지 않고, 공사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사람을 썼기 때문에 생긴 폐단이었다. 일제 때 친일했던 사람이 해방 뒤에는 반공을 무기로 득세하고, 유신을 거쳐 군부정권에 아첨했던 사람들이 여전히 양지에서 권력을 누려왔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여러 가지 함정도 있겠지만 나는 가신, 측근을 참모로 적극 등용해야 한다는 쪽이다. 최근 정치권의 동향을 보더라도, 세상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끈질기게 기생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만큼 우리나라가 정체되어 있고 역동적이지 못한 사회임을 방증하는 것이다. 가장 먼저 세상이 바뀌는 만큼 사람이 바뀌고, 패러다임에 순응하는 발상의 대전환이 있어야 한다. 영화쪽도 마찬가지다. 영화사마다 만드는 작품과 일하는 방식이 다르고 나름의 개성과 색깔이 있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뜻 맞는 사람들이 끼리끼리 모여서 일을 하게 마련이다. 영화의 컨셉조차 이해 못하는(동의하지 않는) 스탭들과 일하는 것은 곤욕이다. 한 제작자는 그날 어떤 장면을 찍고 있는지도 모르는 스탭들 때문에 화를 냈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관건은 이들의 독선을 경계하고, 어떻게 공조직으로, 시스템으로 계승해서 재편하느냐에 달려 있다.

좀 다른 이야기이지만 영화계에도 심상치 않은 변화의 흐름이 일고 있어서 반갑다. 영화사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노동조합을 만들고, 대표는 이에 기꺼이 호응한다는 소식이 대표적인 사례다. 직원들의 권익을 옹호한다는 것이 출발이지만 이들의 관심사가 넓게는 제작 환경을 개선하는 일까지 나아가 있다는 점은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풀어야 할 과제는 아직도 많지만, 영화계는 변화의 흐름을 능동적으로 주도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영화계가 여러모로 정치권보다는 낫다. 조종국/ 조우필름 대표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