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고급 레스토랑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코미야마 부부. 남편인 타카유키가 계산을 하는 동안 부인 사오리가 사라진다. 별다른 생각없이 회사로 돌아온 타카유키에게 낯선 남자의 전화가 걸려온다. ‘당신의 아내 사오리를 납치했다. 3천만엔을 준비해라.’ 타카유키는 경찰을 부르고, 유괴범의 요구대로 돈을 가지고 경찰과 함께 약속장소로 나간다. 그순간 유괴범은 타카유키의 누나에게 전화를 걸어 돈을 요구하고, 안전하게 받아간다. 그뒤 연락은 두절된다. 그러나 유괴는 거짓이었다. 사오리는 타카유키의 애정을 확인하기 위하여 자작극을 연출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모든 범죄는, 모든 고백은, 모든 인물은 거짓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속이는, 범죄의 연쇄반응이 이미 시작된 것이다.
Review
인간의 마음은 카오스다. 흑과 백, 선과 악 어느 하나로 일색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타카유키의 애인 사토미는, 우연한 범죄의 책임을 모면하기 위하여 다른 범죄를 계획한다. 그리고 한 남자를 끌어들인다. 그러나 그 ‘속임수’의 이면에는 남자에 대한 호감이 깔려 있었다. 계획이 성공한다면 좋아, 그 남자가 ‘진실’을 알아내도 좋아. 그렇다면 나를 찾아올 테니까. 필름 누아르의 전형적인 팜므파탈인 사토미는 뭇 남자들을 자유롭게 활용하며 자신의 목적을 향해 나아간다. 그런 그녀를 모든 남자들은, 사랑한다.
<카오스>는 앞뒤가 꽉 짜인, 모든 세부가 철저하게 계획된 스릴러로 출발한다. 유괴범이 등장하고, 자작극임을 폭로하고, 시체를 유기하고, ‘연쇄반응’처럼 새로운 범죄가 이어질 때까지는. 그런데 구로다가 시체를 유기하고 돌아온 뒤, <카오스>는 갑자기 다른 궤도로 들어선다. 도미노게임처럼 긴박하게 줄달음치던 리듬이, 한여름의 고양이처럼 축 늘어진다. 그건 의도된 변화다. 이지메를 당하고 돌아온 아들을 바래다주던 구로다는, 차창 밖으로 거리를 걸어가는 사오리를 본다. 그리고 ‘꿈’에서 깨어난다. 완전무결한 스릴러는 돌연 방향을 바꾸고, <카오스>는 구로다와 사토미의 ‘연애’를 쫓는 묘한 영화가 된다.
<카오스>의 원작은 우타노 쇼고의 하드보일드 소설 <사랑받고 싶은 여자>다. 나카다 히데오 감독은 각본을 쓴 사이토 히사시에게 하드보일드한 범죄의 묘사보다는 ‘감정적인 남녀의 이야기’를 요구했다. 그리고 ‘<현기증>의 스타일’로 <카오스>를 만들었다. 나카다 히데오는 <카오스>를 인간 심연의 카오스로 몰고 간다. 이혼하고 남루한 일상을 지탱하던 구로다는 사오리의 자작극을 돕다가 돌연, ‘부자들의 돈장난’을 혐오하며 폭력성을 드러낸다. 구로다에게 발각된 것을 안 사토미는 거리를 뛰어가다가 환한 웃음을 터트린다. ‘캐스팅이 완벽했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의 커뮤니케이션을 길게 보여주고 싶다’는 말처럼, 구로다와 사토미의 세부와 심리묘사는 너무나도 극진하다. <큐어>에서 나른한 사이코 역을 맡았던 하기와라 마사토와 <라센>에서 놀라운 ‘여성의 변신’을 보여주었던 나카타나 미키의 연기도 ‘천하일품’이다.
김봉석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