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영화, 넌 죽었어!”라는 다소 도발적인 슬로건을 내세우며 새로운 이름으로 출발한 서울독립영화제가 올해는 “충돌”을 외치고 있다. “낡은 경향과의 충돌, 충무로 영화와의 충돌, 길들여진 내부질서와의 충돌, 그리고…. 충돌이라는 글자 옆에 쉼표 하나 보이시죠 그게 ‘그리고,…’의 뜻이에요. 단지 충돌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과시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탄생, 발전으로 나아간다는 뒷말을 숨긴 거죠.” 영화제 사무차장 송승민은 또박또박한 슬로건 해설에 이어 재밌는 에피소드 한 토막을 안주삼아 집어준다. “뒤에 얼마든지 말을 붙일 수 있게 하자는 일종의 자유 연상을 목적으로 쉼표를 찍었는데, 가는 곳마다 쉼표가 슬그머니 사라지는 거예요. 인쇄하는 곳도 그렇고, 기사 지면에서도 공공연히 빠지기 일쑤라 이젠 알아서 미리미리 강조하죠. 이게 ‘뽀인뜨’라구요. 알았죠 하구요.” (웃음)
서울독립영화제를 독특하게 하는 것은 비단 튀는 슬로건뿐이 아니다. 금관단편영화제와 한국청소년 영화제의 전통을 이어받은 국내 유일의 경쟁 독립영화제라는 점, 관객심사단을 꾸려 올해부터 관객 참여의 수준을 한층 업그레이드시킨 점, 아… 또 하나, 독립영화제 치고 규모가 큰, 1억원 가까운 영화제 재정이 실은 빛좋은 개살구였다는 점(수상작에 주어지는 상금 총액만 4700만원으로 이는 재정의 반을 넘보는 액수다. 송승민은 그동안 사무국을 가리켜 부자라고 말한 이들에게 진실을 전하고 싶어했다^^) 등이다. 관객심사단의 역할에 대해 첨언하자면 학벌, 전공의 연관성을 찾을 수 없는 스무명가량의 관객이 철저한 비전문가의 시선으로 본선 경쟁작 42편을 심사하는 것으로, 영화제마다 마련된 관객상 심사 정도에만 참여하던 관객을 영화제의 참주체로 인정한 것이기도 하다.
지난해부터 홍보팀장으로 일하기 시작한 송승민은 이 일을 시작하기 전엔 인권영화제, 독립예술제, 퀴어영화제 등지를 거치며 대중문화 기획과 영화제 운영 전반을 익혔다. 사학을 전공하던 학생 시절부터 새로운 글쓰기 방식으로서 영상을 고민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다큐멘터리에 대한 관심으로 결국은 영화제의 참여로 이어졌다. 고민을 자연스레 실천으로 옮기는 그녀만의 삶의 방식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고민이란 단지 그거였어요. 나이…요. 나이가 너무 많아서 받아주지 않으면 어쩌지,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쩌지….” 퀴어영화제가 첫선을 보인 98년, 그녀가 젊고 싱싱한 자원봉사자들 틈에서 괜히 도드라질까 위축되자 당시 사무국장이었던 박기호씨가 “임마, 나도 이 나이에 영화제 한다고 뛰어들었는데, 뭘 갖고 그래” 하고 단박에 어깨를 펴준 그때 알았다. 배우고 싶은 걸 늦추지 않는 것이 나이를 배반하지 않는 일이란 걸.글 심지현 [email protected]·사진 이혜정 [email protected]
프로필
→ 1969년생·대학서 사학 전공→ 독립예술제(프런지 페스티벌)와 퀴어영화제를 거쳐 현재 서울독립영화제 사무차장과 홍보팀장을 맡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