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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억눌린 욕망에 면도칼을 긋다 <피아니스트>
2002-12-17

■ Story

에리카(이자벨 위페르)는 오스트리아 빈의 음악원 교수다. 어머니와 둘이 작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그녀는 옷 하나 사는 것도 어머니의 간섭을 받는다. 이미 중년에 접어든 딸이건만 어머니는 에리카에게 10대 소녀 대하듯 정숙하고 검소한 옷차림을 강조한다. 그러나 학교와 집을 오가는 에리카의 단조로운 생활엔 비밀이 하나 있다. 그녀는 포르노비디오 가게에서 정액이 묻은 휴지의 냄새를 맡고, 집 화장실 욕조에 앉아 음부에 면도칼로 상처를 내며 억눌린 욕망을 분출한다. 그러던 어느 날 부유한 집안 출신이며 잘생긴 청년 발터 클레머(브누아 마지멜)가 에리카에게 접근한다. 에리카가 피아노치는 모습에 매혹된 클레머는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하지만 에리카와 섹스를 하려던 클레머는 그녀의 기이한 행동에 당황한다. 에리카가 요구하는 도착적 성행위는 클레머가 결코 받아들이지 못할 단계였기 때문이다.

■ Review

에리카는 웃지 않는다. ‘미소’는 그녀의 표정이 표현할 수 없는 금지된 욕망이다. 에리카는 화장을 하지 않는다. 석회처럼 까칠한 그녀의 맨 얼굴은 사람들의 눈길이 머무는 것을 거부한다. 에리카는 구겨진 트렌치코트의 맨 윗단추까지 꼭꼭 잠근다. 그녀의 내면에 뜨거운 관능이 고여 있지만 누구도 그걸 볼 수는 없다. 에리카는 집을 나설 때마다 장갑을 낀다. 그녀의 맨손이 세상과 악수하는 건 오직 피아노를 치는 순간에만 허용된다. <피아니스트>는 이 여자, 에리카가 생에 처음 느낀 사랑이, 채 싹도 트기 전에 철저히 짓밟히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무엇이 에리카의 삶에서 미소를, 윤기를, 관능을, 감각을 빼앗아간 것일까

관객의 눈을 의심케 하는 충격은 에리카의 비밀스런 사생활이 드러나면서 시작된다. 슈베르트의 피아노 3중주가 이끄는 하강의 리듬을 타고 목적지를 향해 뒤돌아보지 않고 걸어가는 에리카, 그녀가 도착하는 곳은 포르노비디오 가게다. 그곳에서 에리카는 남녀의 성기가 클로즈업된 화면을 보며 쓰레기통을 뒤져 정액이 묻은 휴지를 코로 가져간다. 누군가는 이야기만 들어도 눈살을 찌푸리겠지만 에리카의 낯설고 기이한 행동은 계속 이어진다. 목욕탕 욕조에 앉아 자신의 음부를 면도칼로 긋고 카섹스를 훔쳐보면서 소변을 참지 못하는 에리카, 그녀는 보통 여자들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욕망을 해소하는 것이다. 그런 그녀 앞에 훔쳐보기만 하는 존재가 아닌 진짜 살아 있는 남자, 클레머가 등장한다. 그는 에리카가 다른 여자들처럼 자신의 부드러운 키스와 달콤한 속삭임에 취할 것이라 믿는다. 마침내 찾아온 격정의 시간, 클레머는 에리카를 바닥에 눕혀 그녀의 몸을 정복하려 하지만 에리카는 클레머를 애무하다 멈추고 자신의 말에 복종할 것을 요구한다. 자신을 묶고 때리고 입을 틀어막고 물어뜯으라고 말한다. 이제부터 내게 명령을 내리라고, 무슨 옷을 입을지도 정해달라고 애원한다. 그리고 오랫동안 널 기다렸다고 고백한다. 클레머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클레머의 성적 환상을 자극했던 연상의 여자 에리카는 이제 미친 여자, 구역질나게 더러운 존재가 되고 만다.

♣ 음악원 교수 에리카와 그녀에게 피아노 레슨을 받는 제자 클레머의 사연은 기이하면서도 처절하다. 당연히 관음증과 노출증, 사도마조히즘의 욕구에 사로잡힌 에리카가 문제인 것 같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누가, 무엇이 문제인지 답하기 힘들어진다.

아마 클레머가 느끼는 혐오감은 관객이 처음 에리카의 은밀한 사생활을 목격했을 때의 충격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질투심 때문에 여학생의 코트 주머니에 깨진 유리조각을 부어넣는 에리카는 그런 거부감을 더욱 부채질한다. 그렇다면 정녕 에리카는 정신병원에 가야 할 여자인가 영화 <피아니스트>의 마력은 여기서 발현된다. 죄없는 자, 에리카에게 돌을 던져라! 무표정과 맨 얼굴, 구겨진 코트와 장갑에 억눌린 그녀의 욕망은 클레머와 처음 입맞춘 다음, 화사해진 옷차림과 화장으로 발현된다. 그것은 마음의 감옥에서, 정신적 폐허에서 탈출하려는 에리카의 절박한 호소이다. 에리카의 잘못이 있다면 단지 말이 되지 않는 말, 남과 다른 언어를 썼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모든 비밀을 털어놓는 에리카의 편지는 의미가 되기 전에 절규가 되어버린다. 한번 보면 결코 잊지 못할 이 영화의 엔딩은 바로 그 끔찍하고 처참한 비명이다. 감독은 그 소리를 들어보라고 말한다. 귀를 막고 싶겠지만 에리카의 엽기적인 행동에 호기심을 가진 이상 대가를 치러야 한다. 당신이라면 이 가련한 여인을 동정할 것인가 외면할 것인가

오스트리아의 여성작가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소설 <피아노 치는 여자>가 원작인 이 영화는 <퍼니 게임>으로 알려진 미하엘 하네케 감독이 스크린에 옮겼다. 그는 칸영화제 기자회견에서 <피아니스트>의 에리카가 “우리 세계의 현재 모습”이라고 밝혔다. 그것은 어느 정도 원작자의 견해이기도 하지만 하네케 감독이 영화를 통해 부각시킨 측면이기도 하다. 에리카의 행동에 적극적인 동기부여를 하고 있는 소설과 달리 영화는 냉정한 관찰자의 시점을 유지한다. 하네케 감독은 어떤 장면에서도 ‘왜’라는 질문에 분명한 답변을 내리지 않는다. 그리고 에리카가 왜 이런 행위를 하느냐를 설명하지 않음으로 인해 영화는 연상의 여인과 연하의 남자가 만나는, 운명이 예정된 멜로드라마의 틀을 벗어난다. 메스로 자르듯 예리하게 갈라낸 행위와 표정의 몽타주가 끝을 알 수 없는 심연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아마도 심리학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피아니스트>는 프로이트의 비밀을 숨겨놓은 동굴처럼 보일지 모른다.

♣ 자연스럽게 관심을 표하며 다가서는 클레머에게 에리카는 모멸감을 준다. 그러면서도 클레머를 멀리하지 않고 더 다가오도록 미끼를 던진다. 그가 덫에 걸린 순간, 에리카는 사디스트적 태도에서 마조히스트로 급변한다. 그뒤 정말 공격적이고 폭력적이 되는 건 클레머다.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 남녀주연상 등 3개 부문에서 상을 차지한 <피아니스트>는 미하엘 하네케에게 “유럽에서 가장 도발적인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는 명성을 확인시킨 영화이기도 하지만 이자벨 위페르와 브누아 마지멜, 두 배우의 영화이기도 하다. <피아니스트>의 에리카와 클레머를 그들 외에 다른 누가 맡는다고 상상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거나 그랬다 해도 심각한 결점을 안은 영화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피아니스트>가 배우들의 열연을 보여주는 영화는 아니다. 격정과 흥분 속에서도 그들의 표정은 자제력을 잃지 않는다. 브누아 마지멜의 얼굴에 온화한 미소와 잔인한 냉소가 교차하는 동안 이자벨 위페르의 무표정엔 지옥에서 사는 자의 좌절과 고통이 배어난다. 분명한 것은 이 영화를 보고나서 다른 모든 것을 잊는다 해도 이자벨 위페르의 모습만은 잊을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이다. <피아니스트>는 그녀의 몸과 영혼뿐 아니라 그녀의 피로 만든 영화다.글 남동철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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