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사우론의 사악한 세력에 맞서서 반지를 지켜낸 원정대는 이제 뿔뿔이 흩어져 제 갈 길을 가게 된다. 프로도는 충복 샘과 함께 불의 산으로 향하지만 골룸이라는 새로운 위협을 맞이하게 되고, 우루크하이족에 잡혀갔던 메리와 피핀은 엔트족의 구출을 받게 된다. 한편 메리와 피핀을 구하기 위해 우르크하이 군대를 추격하던 아라곤과 레골라스, 김리는 팡고른 숲에서 백색의 마법사로 부활한 간달프를 만나게 되어 사우론이 암흑세계의 두개의 탑 오르상크와 바랏두르를 통합해 점점 그 세력을 넓히고 있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이에 아라곤은 중간대륙의 선한 세력들과 힘을 합하여 사우론을 견제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이게 되는데….
■ Review
무릇 세상의 모든 높은 것들은 무너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 나무수염인 엔트족들이 사루만의 두개의 검은 탑을 공격할 때, 세상을 향해 우뚝 서 있는 두 탑을 배경으로 한 <반지의 제왕> 2편의 진정한 이름은 <반지의 제왕: 두개의 쌍둥이 빌딩>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그것은 미국의 돈으로 9·11 테러에 대해 가장 심한 조크를 퍼붓는 피터 잭슨의 검은 농담인가, 아니면 여전히 반지는 뉴욕의 8번가의 보도를 뒹구는 탐욕의 업보임을 입증하는 착시인가. 드넒은 사루만의 땅에는 인간의 탐욕과 분노, 시기와 질투, 미움과 오만 등으로 칸칸이 이루어진 영겁의 바벨탑이 서 있다.
이제 반지는 자신의 에피소드 안에서 모든 내러티브를 소진한다. 우루크하이족의 군대에 잡혀간 메리와 피핀이 굶주린 우루크하이의 먹잇감으로 절체절명의 위험에 처해 있을 때, 우리는 안다. 그들은 누군가에게 구출될 것이라는 것을. 아라곤이 혹은 프로도가 길을 잃고 헤매거나 오크의 칼 아래 목숨이 경각에 달려도 걱정은 없다. 구원은 다른 데서 튀어나오니까. 질서-위험의 신호-절체절명의 위험-구조의 손길-질서의 회복으로 이어지는 반지의 내러티브 구조는 원작의 곁가지를 털어낸 반지의 제왕 앞에 피할 수 없는 덫처럼 입을 벌리고 있다. 여기에 뿔뿔이 흩어진 반지원정대- 프로도와 샘, 메리와 피핀, 김리와 레골라스 아라곤의 세 갈래의 이야기는 다소 혼란스런 편집으로 관객의 정서적 몰입을 계속 점프시킨다. 그러므로 피터 잭슨이 <반지의 제왕> 2편에서 가야 할 길은 반지 운반자 프로도의 운명처럼 이미 정해져 있는지 모르겠다. 스펙터클의 거대한 환영주의.
존 포드처럼 피터 잭슨은 뉴질랜드의 눈덮인 산맥들과 평야를 신화화하는 문제에 좀체 강박관념을 떨치지 못한다. 그는 1편보다 훨씬 자주, 익스트림 롱숏으로 반지원정대의 모습을 잡아내는데, 팔레트를 거부하고 양동이에 먹을 풀어 대붓으로 그림을 그렸던 운보의 기상처럼, 원시의 공간에서 유영하는 반지원정대를 잡는 카메라의 각도는 깊고 피터 잭슨의 연출은 장대하다. 특히 컴퓨터그래픽으로 점철된 사우론과 사루만 세계의 인공성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반지의 제왕에서 흰색 그리고 그 흰색을 머금은 고귀한 뉴질랜드의 자연은 절대선의 장소로 승화되고 있다. 이 가운데 반지의 제왕은 최후의 결기를 자랑한다. 뉴질랜드의 시각효과 전문회사인 WETA의 정성으로 이루어진 헬름 협곡의 전투신은 <반지의 제왕> 2편이 선사하는 스펙터클의 화룡정점을 이루면서 보는 이를 압도할 것이다.
그러나 피터 잭슨이 바라마지 않았던 이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무엇이 반지에는 있는 것인가 반지의 소명을 받은 대원들은 이제 각자의 힘으로 자신과 맞서서 본격적인 모험을 해나가기 시작한다. 사실 간달프를 제외하고는 반지의 인물 중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위기를 빠져나올 수 있는 자는 거의 없어 보인다. 그들 모두는 유한 존재인 인간의 운명을 자각하기 시작한다. 요정 아르웬을 사랑하는 아라곤은 자신이 죽어도 아르웬은 여전히 이 세계에 남아 있어야 함을 깨닫고, 프로도는 반지가 점점 무거워진다며 자신의 능력에 회의를 품는다. 무엇보다도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골룸의 반목. 저주받은 지킬과 하이드처럼 착한 호빗인 스미골의 영혼과 탐욕스럽고 의심 많은 골룸의 영혼이 한 육체 안에서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모습, 날생선을 좋아하고 아이 같은 슬픈 눈으로 프로도를 바라보다가도 뒤돌아서서는 그에 대한 살의로 몸을 떠는 골룸이야말로 두개의 탑의 진정한 주인공이자 톨킨이 말하는 인간의 원형성을 집약한 인물일 것이다.
어쩌면 탐욕의 역사가 존재하는 한, 양차대전을 경험하며 존 로널드 로웰 톨킨이 써내려갔던 장대한 신화의 메시지는 여전한 유효기간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팡고르 숲의 말하는 나무수염 엔트에게서 환경보호의 역설을 듣더라도, 전쟁을 하자 말자며 옥신각신하는 세오덴과 아라곤의 갈등에서 이라크전을 둘러싼 세계의 갈등을 보아도 놀라지는 말자. 돌아온 <반지의 제왕>은 <스타워즈>의 2편이 그러하듯 스크린에 가장 길고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울 예정이다. 어둠 속으로, 심연으로, 가장 진한 무의식의 그림자 속으로. 반지는 끊임없는 역사의 도돌이표를 반복하는 돌림노래의 사슬, 질투, 이별, 죽음, 반목, 이 모든 인간의 자리를 목격한 이 자그마한 금속의 울음소리는 해를 지날수록 깊어가는 목청을 돋우고 있다. 심영섭/ 영화평론가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