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산에>의 이지행·<승부>의 허종호·<가리봉 슈퍼맨>의 임성운 당선
단편영화여, 날개를 달고 비상하라. 한국코닥주식회사와 <씨네21>이 공동 주관하는 ‘이스트만 단편영화제작지원제도’가 올해 네 번째 선정작을 발표했다. 선정작은 이지행 감독의 <봄산에>, 임성운 감독의 <가리봉 슈퍼맨>, 허종호 감독의 <승부>. 올해의 응모작은 모두 81편으로 지난해 92편보다 약간 줄었지만 그 열기만큼은 예년 못지않았다.
이들 출품작 가운데 본심에 오른 작품은 모두 6편. 당선작 3편 외에 <흉내낸 열정>(박은영), <애로영화>(김시경), <비둘기>(강만진), <아날로그>(김태균)가 최후의 순간까지 각축을 벌였다. 올해 심사위원은 영화평론가 정성일씨, 정태성 부산영화제 PPP 담당 이사, 허문영 <씨네21> 팀장이 맡았다. 당선작 3편에는 코닥에서 35mm 네거티브필름 1만자(시가 650만원 상당)를 지급하며, 무비캠, 신영필름이 카메라를 무료 대여해주고, 할리우드 영화제작기술, 서울현상소, 세방현상소가 현상과 인화를 무료로 지원해준다. 또 고임표 편집실, 박곡지 편집실에서 편집을, 와이드비전, 형보제작소, 무비라인이 텔레시네 작업을, 영화진흥위원회가 사운드 작업을 50% 할인해주는 등 혜택도 준다. 이번에 당선된 작품은 완성된 뒤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부문에 출품돼 관객들을 찾아간다.
심사평
엽기보다 감동, 준비된 연출자를 찾는다
영화는 시나리오가 좋으면 절반은 이미 결판난 것이라고 말한다. 같은 말을 다르게 하면 시나리오 다음이 아직 절반 남았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시나리오만을 보고 좋은 영화의 운명을 점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그 위험한 일을 기꺼이 떠맡은 까닭은 한 가지 이유뿐이다. 미래의 영화를 미리 보고 싶다는 참을 수 없는 유혹 때문이었다. 올해 응모한 작품은 모두 81편이었다. 우리 시대의 키워드 ‘엽기’가 압도적이었고, 그 다양함은 공포영화에서 SF영화를 거쳐 퀴어영화에 이르기까지 거의 무한정 펼쳐졌다. 그러나 재담이 넘쳐나는 반면 진지한 성찰은 사라져가고 있었으며, 포복절도의 기겁할 만한 아이디어들은 사방에 복병처럼 숨어 있었지만, 감동은 촌스러운 철지난 유행이 되어가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결론이 나지 않아 2차 면접을 한 영화는 윤종호의 <승부>, 강만진의 <비둘기>, 박은영의 <흉내낸 열정>, 이지행의 <봄산에>, 김시경의 <愛老映畵>, 임성훈의 <가리봉 슈퍼맨>, 김태균의 <아날로그> 등 모두 7편이다. 이 영화들은 각자 다른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그만큼의 단점이 있었다. 그러나 이 시나리오들의 공통적인 장점은 읽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점점 더 보는 것에 사로잡혀가는 영화들이 배워야 할 만한 점이라는 데 동의했다. 시나리오들 중 인터뷰를 통하여 선택한 기준은 연출자가 얼마만큼 준비되었는가 하는 점이었다. 준비되지 않은 영화는 무한정 기다리는 시나리오일 뿐이기 때문이다.
매우 어렵긴 했지만 세편의 수상작은 만장일치의 선택이었다. 그러나 내심 바라는 것은 떨어진 영화들이 걸작으로 태어나 우리에게 한방 먹이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게 신나는 세상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