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omen, 1939년감독 조지 쿠커출연 노마 시어러, 로잘린드 러셀, 조앤 크로퍼드자막 한국어, 영어, 중국어, 타이어, 인도네시아어화면포맷 1.33:1 풀스크린오디오 돌비 디지털 1 출시사 워너브러더스
<이브의 모든 것>(1950)의 감독으로 잘 알려진 조셉 L. 맨케비츠는 조지 쿠커를 두고 “할리우드의 위대한 여성적인(female) 영화감독”이라고 말한 바 있다. 쿠커에 대한 일종의 관용어구처럼 되어버린 “여성의 영화감독”이란 이 레이블은 물론 맨케비츠만의 용법이 아니라 쿠커에 대한 언급에서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상투적 표현 같은 것이다. 쿠커를 그렇게 정의하는 것은 그와 그의 영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좁히는 것이라고 쿠커 자신도, 그리고 여러 영화비평가들도 지적한 바 있지만, 여하튼 쿠커의 많은 영화들은 여배우들로부터 인간적 온기와 특별한 매력을 이끌어내며 여성들의 세계를 형성해낸 것 역시 부인할 수는 없는 사실이기에 그런 정의는 완전히 폐기처분해버릴 수만은 없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제목부터가 쿠커 영화의 지속적인 주제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여인들>은, 쿠커가 잉마르 베리만이나 페드로 알모도바르 등과 함께 여성의 영화감독에 속한다는 일반적 평판(혹은 선입견)을 새삼 적극적으로 뒷받침해줄 수 있을 만한 그의 대표작들 가운데 하나다.
귀여운 딸 하나를 두고 남편과 만족스런 결혼생활을 누리고 있는 메리(노마 시어러)는 어느 날 친구 실비아(로잘린드 러셀)로부터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을 전해듣게 된다. 메리의 남편인 스티븐이 백화점 점원인 매력적이면서 교활하게 계산적인 여성 크리스탈(조앤 크로퍼드)과 불륜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 그간 남편을 철석같이 믿고 있던 메리는 이 사실을 직접 확인한 뒤 큰 충격을 받는다. 그녀는 이제 이혼밖에 달리 할 게 없다고 생각하고 한편 그녀의 남편과 크리스탈은 새로운 결혼 생활에 들어간다.
<여인들>의 감독인 조지 쿠커에 대해 미국의 저명한 영화평론가인 앤드루 새리스는 <아메리칸 시네마>에서 이렇게 쓴 바 있다. “이 감독의 주제는 상상인데, 그 초점은 상상의 대상에게보다는 상상하는 자(imaginer)에게 맞춰져 있다. 쿠커의 영화는 주관적인 영화로서 그 객관적인 상관물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새리스의 이런 주장이 쿠커의 영화세계 전체를 제대로 설명하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사실 회의를 품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여인들>에만 국한시켜 보자면 이것은 꽤 그럴듯한 설명이 된다고 볼 수 있다. 클레어 부스의 희곡을 각색한 이 영화는 메리와 그 주변의 여성들을 잔뜩 나열해 보여주는데 대개가 상류사회에 속하는 이들의 최고의 관심사는 욕망의 대상으로서 남성을 향해 있다(알맞게도 영화의 부제는 <남성들에 대한 모든 것>이다). 이들은 거의 모두가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가 자신을 떠나려 한다는 데 상심하고 그를 자기 곁에 두지 못해 발버둥치고 심지어 서로 욕설을 내뱉으며 싸우기까지 하는 인물들이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이들의 욕망의 대상물인 남성은 단 한명도 문자 그대로 이 세계 속에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렇게 욕망의 대상은 그 현실적 존재가 부정되고 대신 갈망하는 여인들만으로 구성된 하나의 우주를 보여주는 영화가, 그 제목도 무색하지 않은 <여인들>인 것이다.
<여인들>은 여성 관객의 입장에서 보자면 어쩌면 잔뜩 불쾌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는 영화다. 영화는 사랑을 하는 데 자존심은 사치라고 생각해 기어이 순정을 지키려 하는 여성들과 제멋대로 방종을 일삼는 한심한 여성들을 애써 나누어 각각 동정과 조롱 가운데 어느 한쪽이 강조되는 시선을 던져주려 하지만, 영화를 보는 사람들쪽에서는 거의 맹목적으로 애정의 그물에 빠져든 천박하고 사치스럽고 심지어는 음탕하기까지 한 여성들로만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들을 들여다보는 시선을 문제삼지 않고 그들이 얽혀드는 계속되는 난센스에만 주목한다면 영화는 상당히 흥미롭게 다가올 수 있다. 여기서 정신이 혼미할 정도의 소동과 대사를 비교적 빠른 템포 안에 담아내는 쿠커의 연출력은 <연인 프라이데이>(1940)에서 하워드 혹스가 발휘했던 그것에 비견할 만큼 빼어나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이 영화의 으뜸가는 소구 포인트는 이 세계를 채우는 여인들, 그들 저마다의 독특한 매력과 그 매혹적인 결합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노마 시어러(조지 쿠커의 <로미오와 줄리엣>, 1936), 조앤 크로퍼드(마이클 커티즈의 <밀드레드 피어스>, 1945), 로잘린드 러셀(<연인 프라이데이>)이 영화의 중심을 잡고서 뿜어내는 매력은 감히 거부하기가 힘든데 게다가 폴레트 고다드(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 1936), 조앤 폰테인(앨프리드 히치콕의 <레베카>, 1940) 등마저 조역으로 가세했으니 영화의 흡인력은 실로 엄청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만하면 할리우드 최고의 황금기라는 1939년에 나온 이 영화는 당시 할리우드의 위용을 한껏 뽐낸 영화 가운데 하나라고도 평가할 수 있겠다. 다니엘 다리외라는 거의 전설이 된 여배우부터 신인까지를 망라한 스타들로 구축된 또 다른 여성들만의 세계 (프랑수아 오종, 2002)의 원천이 <여인들>에 있었다. 홍성남/ 영화평론가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