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가 달포 앞으로 다가왔다. 앞으로도 무수한 변수에 따라 흔들릴 수도 있겠지만 상당수 유권자들은 대체로 지지 후보를 점찍어 두고 있을 것이다. 이처럼 지지할 후보를 마음에 담아둔 사람들은 나름의 이유와 명분에 따라 판단 했을 터이다. 하지만 일찌감치 커밍아웃을 한 나로서는 다른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가 좀 궁금하다. 오며가며 귀동냥으로 주워들은 바에 따르면 그 이유가 참으로 각양각색이어서 의아할 따름이다. 물론 선악이나 옳고 그름으로 평가할 문제가 아니기에 그 점에 대해 시비할 생각은 전혀 없다.
아직 지지할 후보를 정하지 못한 부동층도 있겠지만 특정 후보를 지지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다. 그야말로 노선과 정책의 차이에 따른 정치적 입장이 분명한 사람들이 있는 반면, 단순히 정서적 호감에 끌려 지지 의사를 밝히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특정 후보의 정치적 역정, 노선과 정책에 대한 이해없이 외모가 어떻고 인상이 어떻다느니, 안정감이 있네 없네 하면서 피상적인 이미지로 지지 여부를 결정하는 경우가 바로 후자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단편적이고 극단적이긴 하지만 이런 현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사례를 가정해볼 수 있다.
이를테면 아시안게임 때 부산에 온 북한 응원단을 보고 눈물흘리며 통일을 염원한다던 사람들이 냉전의식이 바탕에 깔린 대북정책을 지지하고, 자신은 사실상 영세민이면서 재벌 중심의 성장 우선 경제정책을 내건 정당의 후보를 안정감이 있다는 등의 이유로 지지하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인 셈이다. 또 위와 비슷한 정책을 내세우지만 월드컵 유치에 기여한 바가 있다고, 재산이 많기 때문에 부패할 우려가 덜하다거나 멀끔하게 생겼다는 따위의 이유로 지지하겠다(주변에 실제로 그런 사람이 있음)는 것도 마찬가지다(이 밖에 오로지 출신지역에 따라 지지 후보를 정하는 사람을 나는 경멸하기 때문에 이들에 대해서는 별로 할말이 없다). 잠시 샛길로 빠진 이야기를 다시 끌어오면, 하여간 지지할 후보를 결정하는 핵심적인 요건이 정책이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고, 그중에서도 문화예술 관련 정책에 가중치를 주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는 말이다.
경제, 남북관계, 국민통합 등 중요한 정책 현안이 많긴 하지만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는 제발 좀 수용자 중심의 문화정책이 분명한 ‘문화 대통령’을 뽑았으면 좋겠다. 창작자와 생산자에게는 여건과 환경을 개선해주고, 각종 시설과 네트워크 등 인프라를 축적해 건강한 유통 질서를 도모하고, 또 수용자들에게는 일상적으로 향유하고 다시 재생산이 가능할 수 있도록 거시적이고 총체적인 문화예술 정책 비전을 구체화하는 것이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문화예술의 산업적인 기능과 함께 사회 전반의 문화적인 기운을 배양하는 일도 결코 미룰 수 없는 현안이다. 자치단체마다 시민회관이니 문화회관이 하는 건물만 지어놓고 기껏해야 예비군훈련, 민방위교육장으로나 쓰는 전시용이거나 엘리트 중심의 문화정책이 아니라, 서민들이 생활 속에서 문화예술의 에너지로 활력을 얻고 궁극적으로 삶의 질을 끌어올릴 수 있는 문화예술 정책이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이미 우리는 문화예술이 먹고사는 문제와 선후를 따질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은 궁극적으로 또 다른 의미의 국가 경쟁력을 제고하는 절대 조건이다.
지난 10월15일 영화인회의, 스크린쿼터문화연대, 문화개혁시민연대 등 17개 단체에서는 각 후보 진영의 문화예술 관련 공약을 이끌어내기 위해 ‘문화정책 16대 핵심공약과 107대 주요 과제’라는 정책을 제안했다. 이 단체들은 이 제안에 대한 각 후보 진영의 답변을 언론을 통해 공개하는 한편 답변 내용에 따라 ‘필요하다면’ 가장 반문화적인 후보를 선정해 발표할 예정이라고 했다. 또 11월 중에는 대선 후보들을 직접 초청해 문화정책 토론회도 열 계획이다. 정책도 정책이지만 후보 당사자의 문화적 소양과 문화예술 정책 기조, 비전에 대한 후보의 신념도 검증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기회가 닿는 대로 후보들의 면면을 꼼꼼하게 따져보고 제대로 된 ‘문화 대통령’을 (뽑는다기 보다) 만들 수 있기 바란다.조종국/ 조우필름 대표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