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극장에서 딸아이와 함께 본 <몬스터 주식회사>를 비디오로 빌려 다시 보았다. 극장에서 볼 땐, 한글 자막 처리된 프린트여서 옆에 앉은 젊은 청춘 관객의 눈총을 받으며 빠르게 지나가는 자막 읽어주랴, 영화를 보면서 웃으랴, 소리 지르랴 정신 없었다. 무릎에 앉혀놓은 딸아이는 어떤 장면에선 몸을 부들부들 떨며 놀라기도 하고,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며 보기도 했다. 그러나 다 보고 나와서는 6살 꼬마여서인지 총체적인 관람평을 한다거나 하는 수준까진 보여주지 못하고, 외눈박이 괴물 마이키가 너무 시끄러워 얄미웠다는 허튼() 소감을 피력하는 정도였다.
아이의 열화와 같은 요청으로, 우리말 더빙판을 빌려 보았는데 영 제 맛이 나지 않았다. 수다쟁이 빌리 크리스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어서 더욱 그랬다. 내가 <몬스터 주식회사>를 비디오로 다시 빌려본 이유는, 아이와 다시 한번 즐거워 보자는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설리의 ‘그 푸른 털’의 부드럽고 미세한 움직임을 다시 한번 보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전체적인 스토리와 인상적인 몇 장면이 기억 속에 있지만, 모든 장면을 컷 단위로 외우고 있진 못할 터. 거실에 널브러져 함께 보던 딸아이가 손으로 눈을 가리며, 다음에 무서운 장면이 나온다고 소리를 지른다. 슬렁슬렁 보다가, ‘엉’ 하며 자세히 보니 마이키의 손이 어딘가에 잔인하게 끼이는 컷이었다. 내 머릿 속엔 전혀 입력되어 있지 않았던 거였다. 아이와 나는 이 영화에 대해 그토록 다르게 어떤 장면을 기억하고, 추억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 참에 서로 의견을 꿰맞추다 보니 내가 인상적으로 보았던 장면이나 내러티브와 다른 측면에서 아이는 자기 느낌을 갖고 있었다.
하여튼 영화의 매력은 그런 것 같다. 복잡하게 각을 세운 다면체와 같은 것이어서, 그 누구도 사실은 100% 같은 ‘느낌’으로 어떤 영화를 보게 되는 건 아니라고. 주제에 대해서 아주 극과 극의 결론을 유추해낼 수도 있고, 감독의 의도를 전혀 다르게 읽어낼 수도 있고, 형식적으로 가장 빼어난 장면도 다 다를 수 있으며 마침내, 마음속 기억의 저장고에는 어떤 이에겐 세모꼴로 또 어떤 이에겐 동그라미 모양으로 남아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요즘엔 리뷰든 비평이든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네티즌들의 관람평이든 모두 그게 그거다, 라는 생각이다. 평론가들이 매기는 별점도 뻔하고, 논쟁의 장은 어디에도 마련되어 있지 않으며, 영화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리는 관객의 의견도 대부분 좋아요, 싫어요 식으로 단순하다. 색다른 시선, 튀는 관점, 깊이있는 시각을 발견해서 너와 나의 영화 경험이 폭넓어지는 기쁨을 누리는 즐거움을 찾기가 쉽지 않다.
요즘의 영화들은 그렇게 기자들과 평론가와 관객이 허공에 불어올리는 비누방울처럼 톡 떠올랐다가 금세 사라진다, 라는 생각이다. 마음속의 세모꼴과 네모꼴은 서로 꺼내보지 않고 맞춰보지 않고 그저 쟁여둘 뿐인 것 같다. 심재명/ 명필름 대표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