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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기 힘든 화면의 잔상,<로드무비>
2002-10-15

■ Story

대식은 어느 날 거리에서 술에 취해 쓰러져 있는 석원을 만나게 된다. 석원은 주가 폭락으로 증권사의 유능한 펀드 매니저에서 노숙자로 한순간에 전락한 인물이다. 자신의 동성애적인 감정을 감추고 대식은 석원을 보살펴 준다. 노숙자 생활에 지친 그들은 무작정 길을 떠나고 여행 도중 바닷가 변두리 마을에서 도발적인 여자 일주가 나타난다. 고단한 삶을 영위해온 일주는 자신을 구해준 대식을 사랑하게 되고 한사코 뿌리치는 대식을 따라 여행에 합류한다. 이제 엇갈린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세 사람은 기이한 여행을 계속하게 되는데….

■ Review

어떤 사람들은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길은 집으로 통한다. 길이 콘크리트의 화장발을 벗어버리고 맨 얼굴의 진심을 드러낼 때, 사람들은 그제야 자신이 고향에서 아주 멀리 떠나와 있음을, 자신의 발자국 외에는 아무것도 받아주지 않는 아주 좁은 곳을 걷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길은 세상을 벗어난 자, 이 지상에서는 단 한줌의 승리도 맛보지 못한 자들의 영원한 게토이다. 보라! 길 위에서 만나는 그들, 무장강도가 돼버린 델마와 루이즈나 텍사스에 있는 파리를 찾아 헤매는 트레비스의 풀어헤쳐진 얼굴을.

김인식 감독의 영화 <로드 무비>는 이 ‘길’이란 장르적 코드에 동성애란 사회적 코드를 접목시켜 새로운 감수성으로 로드 무비란 장르를 접수하려 든다. 질척질척하고 끈끈한 두 남자의 리얼한 정사신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비역질이라 불리는 동성애에 방점을 찍어버리며, 더도 덜도 아닌 두 육체가 맞물리는 사랑의 행위로 동성애를 봐달라고 주문한다. 이 장면의 농밀함은 에로틱하다기보다 오히려 두 육체가 죽음의 가장자리까지 말려 올라가는 처절함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첫 장면의 이데올로기적 문턱만 넘으면, <로드 무비>는 로드 무비 본연의 장르가 가지고 있는 더없이 쓸쓸하고 외로운 뒷모습을 점점 더 드러내기 시작한다. <로드 무비>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 산사나이였던 대식이나 펀드 매니저였던 석원, 창녀 일주 혹은 아이를 밴 미친 여자, 공금을 횡령한 남자 모두는,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시도 때도 없이 술을 마시고 약을 먹고 문득 죽음의 충동에 이끌려 어딘가에 몸을 던진다. 감독은 그들의 죽음 앞에서 ‘왜’라는 수식어를 달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을 감싸안은 수려한 풍광이 주인공들보다 먼저 다가와 이들의 핏속에 녹아 있는 역마의 슬픔을 대변해 준다.

슈퍼16mm 카메라로 찍어 디지털로 옮긴 뒤 다시 키네코 작업을 거쳤다는 <로드 무비>의 화면은 잊기 힘든 잔상을 남긴다. 사랑하는 남자가 떠나자 소주 한병에 수면제 한 움큼으로 자살을 감행하는 남자의 뒤편에는 묵묵한 아픔을 같이 짊어진 채석장의 바위가 허허롭고, 차를 배달하러 나왔던 일주가 몸을 던지는 동해의 바다는 밤보다 더 진한 푸른색을 지니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영화에 나오는 공공의 장소들, 기차역, 버스터미널, 심지어 서울역 지하도조차 가장 익숙한 일상에 감추어져 있던 낯선 시선을 토해낸다. 흑과 백의 뿌연 삶의 분진에 가라앉은 무국적의 그곳은 들뢰즈가 이야기했던 탈주의 공간, 유목의 장소에 다름 아닌 것이다. 석원은 길이 끝나는 저기에 희망이 있을 줄 알았다데, 길이 끝나는 거기엔 아무것도 없다고 토로한다.

오히려 <로드 무비>에서 아쉬운 쪽은 여백으로서의 풍광보다 도형으로서의 사람들이다. 화장실에서 낯선 남자와 일회성 정사를 갖고 착취적인 젊은 남자를 사랑하는 대식의 비애, 혹은 노래방에서 자해하듯 알몸을 드러내는 일주의 행동은 전형적인 동성애자 혹은 전형적인 창녀의 질곡을 벗어나지 못한다. 특히 일주의 대식에 대한 사랑, 그리고 석원에 대한 대식의 사랑은 이 영화의 멜로적 무게중심인데도 첫눈에 반한다는 운명론적인 설명 외에는 너무 쉽게 설득을 포기했다. 그래서 다이너마이트로 죽음과 장난을 치고 비가 내리는 염전에서 알몸을 섞음으로써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대식과 석원의 처절한 몸짓은 확실한 감정의 꼭지점을 붙들지 못한 채 그만 종장을 향해 내달린다. <해피 투게더>처럼 시작하고 <아이다호>처럼 끝을 맺는 <로드 무비>가 이들 영화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의 폭발적인 힘, 그리고 그 밑바닥에 침잠해 있는 모든 것을 버린 자의 아스라한 연민을 공유하기 위해서 주인공들의 관계 자체에 좀더 긴 호흡을 부여했으면 어떠했을까.

<아이다호>의 리버 피닉스는 자신의 집을 그토록 갈망했건만 결국 길 위의 삶이 자신의 삶임을 받아들이며 이렇게 중얼거렸었다. ‘난 이 길을 알지… 길은 누군가의 얼굴 같아. 일그러진 얼굴.’ 일주와 대식과 석원, 이 애증의 인연을 반복하는 쥴 앤 짐들은 동성애냐 이성애냐 하는 이데올로기적 결정이 아닌 다만 ‘누군가 옆에 있어줄 사람’이 필요했을 것이다. 감독의 진심이 영화의 만듦새를 추월하는 바로 이 지점에서, <로드 무비>는 이 가을, 우리가 세상 밖으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를, 그들이 꿈꾸는 낯선 세상의 속내를 문득 보여주고 떠난다. 심영섭/ 영화평론가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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