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반을 동네의 곳곳을 함께 떠돌던 나와 내 친구는 결국 내가 멀리 이사를 가게 됨으로써 ‘동네친구’의 연을 끝맺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간 함께했던 장소들을 다시 탐방함으로써 추억을 정리하고 이별을 실감하기로 했다. 비디오방에서의 추억 또한 각별했다. 순진했던 우리는 그곳에서 각각 <터보레이터> 1과 2를 섭렵하고 장어섹스라는 묘한 카피에 이끌려 <밤볼라>까지 본 뒤 마침내 한국 에로까지 처음 접하는 역사를 이루었던 것이다.
물론 남녀 커플에 익숙하신 사장님께 여자 손님 두명이 에로영화를 고르는 건 쉬운 풍경이 아니었다. 우리를 번갈아 쳐다보는 미묘한 눈길하며, 영화를 보고 있는 중에도 문을 벌컥 열고 필요없다고 이미 말한 재떨이를 건네주신다거나 창문 뒤로 그림자를 비추시는 등 사장님은 우리 둘이 ‘정도에서 벗어난 행위를 하지나 않을까’ 각별한 관심을 표하셨으니까.
그러나 우리는 집에서는 할 수 없는 것을 바깥에서 경험해본다는 심정이었을 뿐 작품에 상관없이, 영화 관람과 평에 임하는 자세는 언제나 한결같이 냉정하고도 혹독했다. 옆방의 남녀가 우리 벽까지 쿵쾅거리며 난동(?)을 부릴 때면 벽을 쾅 하고 침으로써 답례를 해주기도 하고, 혹시나 몰래카메라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정하에 엉덩이로 이름쓰기 따위의 이벤트를 벌인 것 이외에는 우리는 항상 정숙했다. 어쨌거나 그런 추억마저도 이제는 안녕이다. 이제 나는 낯선 곳의 낯선 비디오방에서, 그것도 혼자서! 새 역사를 창조해야만 한다. 손원평/ 자유기고가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