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감독 키스 고든 출연 빌리 크루덥, 제니퍼 코넬리, 몰리 파커, 자넷 맥티어, 샌드라 오 장르 드라마 (유니버설)
신념은 지키기 어렵다. 아니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원래 갈대처럼 흔들리는 것일까? 정치판의 인간들을 보면, 인간이란 종에 대한 회의가 밀려온다. 만약 죽은 자에 대한 기억을 단 하나라도 기억하고 있다면, 여전히 그들의 ‘유령’ 혹은 ‘흔적’과 함께 살아간다면 조금 다르지 않을까. <웨이킹 더 데드>는 사랑 아니 신념에 대한 이야기다. 대통령이 목표인 노동계급 출신의 남자. 그 남자가 자신의 꿈을 이루어가면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여인에 대한 기억으로 신념을 잃지 않게 된다는, 환상적인 이야기.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지나치게 몽상적인 ‘동화’다.
1972년 해안 경비대에 복무중인 필딩 피어스는 형이 운영하는 출판사에 갔다가 사라 윌리엄스를 만난다. 첫눈에 반해 데이트 신청을 하고 사랑에 빠지지만, 그들은 너무 다르다. 필딩은 노조 간부였던 아버지의 꿈을 이어받아 상원의원, 대통령에 도전한다. 사라 윌리엄스는 교회에서 운영하는 고아원 아이들을 돌봐주고, 불법 이민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운동을 한다. 사라와 필딩 모두 약자를 위해 봉사를, 정치를 하겠다고 선언한다. 사랑, 권력, 정치, 운동에 대한 입장 차이로 때로 부딪치기도 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변함없다.
그러나 필딩과 사라의 사랑은, 세상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필딩이 데리고 간 파티에서 사라는 칠레 정부를 옹호하는 글을 썼던 대학교수를 극렬하게 비난한다. 사라가 칠레에서 피신시켜온 반정부 인사와의 저녁식사에서, 필딩은 엘리트의식을 버리지 못하는 그들을 비난한다. 그렇게 그들은 조금씩 갈라진다. 1974년 칠레 정부의 소행으로 보이는 차량 폭파사건의 희생자 명단에 사라 윌리엄스가 오른다. 오랫동안 슬픔과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하던 필딩은 지방 검사로 일하다가 1982년 지역구 의원이 스캔들로 사퇴하며 정계에 입문한다. 출마가 결정된 뒤 돌아가던 필딩에게, 단 한번도 잊은 적 없던 목소리가 들린다. 그날부터 사라의 환영과 환청이 계속된다. 아니 그건 현실이다. 필딩은 혼란스러워하면서도 선거운동에 나선다.
<웨이킹 더 데드>에서는 죽은 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정말로 살았는지, 죽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와 함께 나누었던 사랑을, 신념을 기억하면 되는 거다. 그러면 그는 살아 있는 거다. 필딩도 깨닫는다.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언제까지인지는 알 수 없지만, 죽은 자의 목소리를 듣는 한 쉽게 바뀌지는 않을 거다.
김봉석/ 영화평론가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