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회에 잠깐 비췄지만, 나랑 임권택 감독이랑은 같이한 작품 수도 많고 무척 가깝게 지내는 사이야. 현장에선 내가 임 감독한테 “임영감, 임영감” 이러고, 임 감독은 나한테 “백청년, 백청년” 이러면서 장난을 치곤 했어. 실제 내 별명이기도 한 ‘백청년’은 현장에서 누구보다 젊게 사는 나를 표현한 말이었어. 그만큼 젊은이들과 쉽게 어울려 지내기도 했고.
임 감독과 <만다라>(1981)를 찍을 때엔 신기한 일이 많았어. 당시 설악산에 세트를 지어놓고 영화를 찍는데 화재신이 필요했어. 산 속에서 불장면을 찍는다는 게 보통의 결정은 아니거든. 찰나에 마른 잎들로 불이 번질 수도 있고,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설악산의 수목을 해칠 수 있다는 이유로 촬영 자체가 매우 조심스러웠지. 그래서 촬영 전날 소방차를 한대 불러 촬영장 부근에 미리 대기시켜놓는 등 만반의 준비를 갖추느라 분주했는데, 이게 웬일이야. 그날 밤 갑자기 예정에 없던 부슬비가 내려준 거야. 주위의 낙엽들을 전부 적셔놓을 만큼의 충분한 비가 내렸어. 다음날 촬영 당일엔 날씨가 말짱해졌지. 적절히 수분을 머금은 주위 환경 덕분에 화재신은 아무 사고없이 무사히 끝낼 수 있었어.
그뿐만 아냐. 임 감독이 “내일은 눈이 좀 왔으면 좋겠는데…” 하면 다음날 어김없이 눈이 오는 거야. 비가 왔으면 좋겠다고 하면 비가 내리고, 눈이 와줬으면 좋겠다고 하면 눈이 내리기에, 우리 스탭들이 뒤에서 이렇게 얘기할 수밖에 없었어. “혹시 임 감독이랑 하나님이랑 무슨 관계인 거 아냐.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운이 좋은 건지 모르겠다”고. 심지어 “언제 무슨 신을 찍겠다고 하나님과 미리 합의본 건 아니냐, 이번 작품은 하나님과 임권택 공동작이라고…”라는 우스갯소리도 등장했어. 어쨌거나 신기할 정도로 하늘이 임 감독 맘을 딱딱 맞춰주는 가운데 영화의 촬영이 종결됐지.
하늘 덕도 보는 감독인데, 사람 덕이야 없을라구. <만다라>를 찍기 전 <깃발없는 기수>(1979), <족보>(1978), <상록수>(1978) 등을 찍을 때야. 하나같이 전주에서 촬영이 있던 작품들이었는데, 이땐 전주에 사는 ‘열혈 영화청년’의 도움으로 아주 수월하게 영화를 찍었어. 그이 직업이 경찰서 경위인가 그랬는데, 어찌나 앞장서서 자기 일처럼 챙겨주는지, 장소 헌팅까지 알아서 해줄 정도니…. 혹시라도 감독이 뭐가 필요하다고 그러면 반드시 구해다 갖다준 그이는 이유를 물으면 그저 영화가 좋고, 사람이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만 했어. 나중에 그이의 도움을 인정한, 제작사인 화천공사로부터 감사패가 전달되었지. 그러나 안타깝게도 교통사고로 불의의 죽음을 당하고 말았어. 그를 알았던 모든 사람들이 마음으로 통곡했지. 그만큼 강한 인상을 남겼던, 성실한 인물이었어. 임 감독과 영화를 찍을 때면, 큰 어려움 없이 주위의 도움으로 일이 술술 풀리는 걸 자주 목격했어. 그 사람은 딱 영화찍으며 살라는 팔자인가봐.
감독과는 믿음과 존경으로 뭉쳐진 사이지만, 배우들과는 형제와 같은 감정을 느끼기도 했어. 당대의 두 배우, 허장강과 김승호는 나와 깊은 정을 나누던 친구들이었지. 자주 모임을 도모하진 못했지만, 촬영을 마치고 간간이 마시던 술은 우애를 다지기에 충분했어. 나이가 동년배라 더욱 동류의식이 강했던 우리는 정월 초하루엔 어김없이 모여앉아 떡국에 술 몇 순배를 돌리곤 했어. 당시에 모이던 멤버들은 위의 두 사람을 빼놓고, 김희갑, 박구 감독이 있었어. 내가 특히 이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들이야말로 연기의 참맛을 아는 배우들이었기 때문이지. 한눈에도 투박하고 거친 모습의 김승호씨는 한국적 연기라는 것이 어떤 건지 잘 보여준 스타일리스트였고, 허장강씨 역시 특유의 반질한 이미지로 중산층 서울 남자의 비애를 잘 그려냈어.스틸을 찍을 때에도, 이들은 별다른 지시를 안 해도, 프레임 안에 딱딱 들어왔어. 촬영 전날 대본을 미리 읽어온 내가, 이 대목에선 이렇게 움직이겠지 하고 동선을 미리 머리 속에 그려오면 딱 고대로 움직여주는 거야. 기다리던 각도에 배우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려 셔터만 누르면 됐지. 일하기도 그만큼 수월했어. 축구를 좋아하던 허장강이 시합 도중 심장마비로 타계했을 땐 가족을 잃은 슬픔에 비할 데 없더라고. 내가 찍었던 그의 스틸들을 바라보며, 명복을 빌어줬어. ‘잘 가시게… 편히 주무시게.’
내가 찍은 스틸 사진에 담긴 재미있는 ‘애정 역사’ 한 토막도 들려주지. 지금은 부부인 가수 혜은이와 탤런트 김동현은 1980년작 <네 멋대로 해라>로 처음 만났어. 이미 그전에 혜은이는 자신의 <제3한강교>(1979)로 대히트를 친 여가수였고, 동명의 영화에도 출연해 배우로서의 가능성도 보여준 상태였지. <네 멋대로…>의 스틸 중에, 말괄량이 소녀 혜은이를 쳐다보는 김동현의 모습이 담긴 게 있는데, 그때 그의 심정이 어땠을지는 짐작하고 남음이 있지. 그들 부부 거실에 큼지막하게 걸어놓아도 좋은 그런, 추억의 순간을 담아낸 사진 한장이야.
사진·구술 백영호/ 스틸작가·54년간 영화현장 사진에 몸담음·<유관순> <생명> <천하장사 임꺽정> <만다라> <바보사냥> <바보선언> <아다다> 등 100여 작품 5만여컷의 스틸작업정리 심지현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