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명(31)이란 이름 때문에 으레 총각(?) 목소리를 기대했건만, 수화기 저편에서 들려온 건 아가씨의 씩씩한 목소리였다. 어여쁘지도, 기교도 없는 목소리를 들으며, 분명 생김새도 당찰 거라고 생각했는데, 호리한 몸매에 스무살짜리 미소를 지닌 그녀가 앉아 있다. 연거푸 두번이나 틀리고 나니, 괜히 면전에서 쑥스러운 헛웃음만 짓게 된다. 동석하기가 무섭게 음료수를 뽑아다 주겠다며 바쁘게 일어서는 그녀의 구두에 눈길이 가 머문다. 거칠게 닳은 뒷굽을 확인하자 비로소 중앙시네마에서 ‘억척녀’로 통하는 강기명을 제대로 찾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통성명을 하는데, 전화상의 그 목소리가 또 아니다. 물론 전기신호로 바뀌어지면서 음이 소실되거나 변질된 탓도 있겠지만, 그녀 말대로라면 화려한 ‘비즈니스 애티튜드’(Business Attitude) 중 하나일 것이다. 방실방실 웃는 얼굴 어디에 강단이 숨겨져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자신에 대해 “홍보할 땐 ‘뻐꾸기’도 잘 날리고, 배급 관련 영업에선 협박도 곧잘 하는 깡순이”라 자랑스레 소개한다.
독일어를 전공하던 대학 시절이 끝나고 이듬해인 96년 벽산그룹 홍보실에 채용되면서, 그녀의 꿈은 대기업 비서실의 보기 좋은 꽃에 머무르는 듯했다. 천성적인 순발력과 발상 전환으로 남들 사이에서 금세 눈에 띄는 사람이긴 했지만, 그런 장점을 마땅히 부려놓을 곳이 없어 목말라하던 차였다. 98년, 벽산 계열이던 중앙시네마가 단관에서 3개관으로 증관하면서, 이미지 쇄신과 인지도 증대를 위해 열심히 뛰어줄 사람을 찾았다. 이미 기획실과 홍보실 업무를 두루 경험한 그녀에게 극장일은 숙명처럼 주어졌다. 불과 몇 개월 사이에 그룹 홍보실의 편안했던 보직은 어느새 잊고 발로 직접 뛰지 않으면 어떤 것도 해결되지 않는 극장 홍보팀 일에 극적인 궁합도를 자랑하기 시작했다. 주위에선 다들 타고났다고 혀를 내둘렀다.
극장 홍보일을 시작하던 시기엔, 편안하고 즐거운 영화보기에 포커스를 맞춘 인프라 스트럭처 조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극장의 인테리어부터 편의시설을 비롯한 각종 부대시설의 위치와 종류까지 일일이 고민했고, 심지어 바닥의 타일색까지 스스로 결정해야 했다. 틈틈이 다른 극장을 찾아가 분위기와 서비스를 체크하는 것도 빼먹지 않았다. “중앙시네마가 사는 길은 무조건 차별화, 특성화다”라고 맘속으로 읊조리고 또 읊조렸다. 치열한 고민의 결과는 아주 서서히, 긍정적인 변화를 몰고 왔다. 관객 대다수가 이십대 중·후반 여성들인 점을 감안해 여성 화장실에 파우더룸을 설치했고, 지하철과 버스가 잘 연계되지 않는 지리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명동 거리에 부스를 설치, 티켓 테이커(길거리 매표원)로도 변신해서 무던히 빈 좌석들을 채워나갔다. 올해 봄부터는 매일 저녁 단편영화를 한회씩 틀고 있다. 서비스도 중요하지만, 알찬 프로그램으로 승부하려는 생각에서다. 단편영화 관객층이 꾸준히 늘고 있는 요즘은, 한국영화 발전을 위해서라도 추진하길 잘했다는 생각도 든다고.글 심지현 [email protected]·사진 정진환 [email protected]
프로필
→ 1972년생
→ 독문과 92학번
→ 96년 벽산그룹 홍보실 채용
→ 98년 중앙시네마 홍보실로 전임
→ 현재 중앙시네마 영업 및 홍보팀장으로 활약중(올 봄부터 본격적인 영업업무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