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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불가?이민소망!
2002-07-31

이민 가야겠다는 말을 부쩍 자주하게 된다. 농담투로 하는 말이지만 불쑥불쑥 정말 그러고 싶을 때도 있다. 아무개가 대통령 되면 이민 가버릴 거라는 말은 투정이라고 해도, 터무니없는 인습이나 촌스러운 관행에 맞닥뜨릴 때면 그렇다. 친절까지는 바라지도 않지만 손님으로 탄 사람이 무안할 정도로 짜증내는 택시기사를 만나거나, 옆에서 우당탕탕 빈그릇을 치우는 식당 종업원 눈치보며 밥을 먹어야 할 때면 이민을 생각한다. 몇 백만원 대출받으러 은행에 갔다가 심한 모멸감을 느꼈을 때도 그랬고, 관공서에 드나들 일이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겨우 그 따위 일로 이민 타령을 하느냐고 타박하거나, 참 까탈스럽고 피곤한 사람이려니 하는 게 보편적인 ‘국민정서’다. 타고난 불평불만주의자의 대수롭지 않은 투덜거림 정도로 치부해도 하는 수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는 아주 사소한 일이어도 당사자가 용인할 수 없는 일에는 첨예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곱씹어주기 바란다. 나는 까다롭고 예민한 사람이어서 나름의 곡절이 많다. 무던하지 않은 성격 탓인지 뭣 때문인지 모르지만, 깐깐하고 피곤한 사람으로 매도당하지 않기 위해서는(매도당해도 상관없지만 벌어먹고 사는 데 큰 장애가 되기 때문에) 그런 내 취향과 정서를 일일이 해명하고 설득해야 하는 것이 너무 귀찮다. 택시기사가 어떻다는 둥 이런저런 거슬리는 일은 그렇다치더라도, 우리 사회가 보편적(보편성이라는 통념에 대해서도 이의가 많지만)이지 않은 각자의 개성을 너무 업신여긴다는 게 내 이민 충동의 뿌리다.

최근, 영화 <죽어도 좋아>에 대해 제한상영가 등급(현재로서는 사실상 개봉 불가 조치!!!)을 부여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또 이민을 생각했다(<죽어도 좋아> 파문에 대한 사실관계나 경위 등은 다른 기사를 참조하시기 바람). 영화내용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접어두고라도, 우리나라의 영화에 대한 검열, 심의, 등급분류 따위의 말을 더이상 입에 담는 것조차 시쳇말로 쪽 팔린다. 수년째 하나도 바뀌지 않은 이론과 논리로 버티는 견고한 구태와 이에 한결같이 거세게 부닥쳐보지만 다시 제자리인 상황이 진저리를 치게 한다.

칸영화제에서도 호평을 받은 영화를 놓고, 막말로 인터넷에 포르노가 둥둥 떠다니는 세상에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리얼한’ 섹스가 나오고, 성기가 좀 보인다고 어른들의 소화불량 걱정까지 해야 한다면, 소가 웃을 일이다. 기준과 원칙이 어떻다느니 선례가 어떻다느니 하는 논리도 말 그대로 문화후진국의 진면목을 짜증스럽게 확인시켜 주는 데 불과하다. 최근 열린 부천영화제에서 ‘블루무비’라는 이름으로 상영한 단편 포르노 프로그램을 보고, 문화 건달로 알려진 미국인 스콧 버거슨이 “한국의 도덕주의자들이 믿는 것처럼 한국사회가 폭발해서 잿더미 속으로 사라지는 일 따위는 벌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단다. 내겐 심한 욕으로 들린다. 조종국/ 조우필름 대표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