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 래즈베리상과 골든 래즈베리 재단을 어떻게 만들게 됐나.
우선 난 영화를 많이 보는데, 좋은 영화를 아주 좋아하고 엉망인 영화를 싫어한다. 사실 좋은 영화를 만나기란 힘든 일이다. 또 하나는
내가 아주 이상한 유머감각을 가진 사람이란 것이다. 이런 시상식, 즉 ‘최악’에 대해 상을 준다는 생각은 다른 사람들에겐 농담으로 여겨질
만하니까.
왜 이름을 ‘골든 래즈베리’(Golden Raspberry)라고 지었나. 사전적 의미로 ‘나무딸기’란 뜻 외에 속어로 경멸과 조소를
담은 야유라는 뜻이 있던데.
영어로 ‘래즈베리’란 단어는 뭔가 맘에 들지 않을 때 입술을 떨면서 ‘푸르르’ 하고 내는 소리를 말한다. 그리고 골든 래즈베리상의
별칭인 ‘래지’는 누군가를 비웃다, 놀리다, 무안을 준다는 뜻의 동사 ‘래즈’(razz)에서 왔다. 또 미국의 대부분 상의 이름을 안다면
눈치챘겠지만, 에미상, 토니상, 그래미상 등 대부분 ‘이’음으로 끝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Razz+ie로 만들었다. 아마 미국사람들은
대부분 이 이름 자체가 다른 상들에 대한 풍자라는 걸 알아들을 거라고 생각한다.
래지상의 후보와 수상자는 어떻게 선정하나. 미국 35개주와 해외 10개국에 분포한 500여명의 골든 래즈베리 재단 멤버들의 투표로
결정된다고 알고 있는데.
그렇다. 요즘은 인터넷을 통해 후보 선정에 참여하는 신청을 받기도 하기 때문에 좀 늘어났다. 우리는 영화평에도, 박스오피스 성적에도
주의를 기울인다. 물론 흥행이 잘됐다는 게 후보 선정에 영향을 끼치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어떤 사람들이 참여했는가에도 신경을 쓴다. 마돈나나
실베스터 스탤론, 케빈 코스트너의 대다수 작품처럼 어떤 배우들은 항상 안 좋은 영화를 만드는 경향이 있으니까. 그리고 ‘최악의 리메이크
또는 속편’이라고 약 5년 전쯤 만든 특별 카테고리가 있다. 요즘 만들어지는 영화의 상당수가 더이상 오리지널이 아니고 싸구려 복제품이거나,
리메이크거나, 리바이벌, 혹은 아주 좋았던 1편의 후진 속편이니까. 우리는 일단 웹사이트를 통해서 올해 정말 싫었던 영화가 뭐였는가에 대한
의견을 모은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전통적으로 비평가들이 매년 베스트 10과 최악의 10편의 리스트를 만드는 게 꽤 전통적인데 그걸 본다.
그리고 우리 멤버들에게 우리가 최악이라고 생각하는 영화들의 리스트를 만들어 보내고 투표하게 한다. 어떤 해는 아주 의견이 갈려서 마지막까지
어떤 후보가 수상할지 불분명하지만 어떤 해는, 예를 들어 올해의 경우 결과가 뻔히 보인다. <배틀필드>가 상을 휩쓸 것 같으니까.
어떤 영화나 출연배우들을 ‘최악’이라고 규정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우선 논리적으로 더 좋은 것을 할 수 있었나, 없었나를 따져보는 관점이 있다. 마돈나 같은 경우는 그렇지 않다는데 별 논란의 여지가
없지만, 로렌스 올리비에나 존 트래볼타 같은 경우는 뭔가 더 나은 것을 할 수 있는 배우라는 논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영화를 만들
때 아무런 생각이 없었는가, 아니면 그게 최선이었나 하는 것도 고려한다. 소재 자체도 중요한 점인데, 많은 영화들에서 존 트래볼타나 애덤
샌들러 같은 경우 영화 출연을 제안받을 때 무서운 속임수를 당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그들이 하기로 한 프로젝트고 그들이 골랐다면 선택과정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당신이 생각하는 ‘최고’의 영화는 무엇인가. 예를 들어 지난해 최고의 영화를 꼽는다면.
보통 좋은 영화는, 올해 아카데미에서도 보이지만 돈이 많이 안 들어간다거나, 스타 중심이 아니라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이 신경을
쓰고 전력을 다해 만든 작은 영화들. 리안이 <와호장룡>의 제작비를 구하는데 얼마나 문제가 많았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고생을 했을 테고,
소더버그가 <에린 브로코비치> 다음으로 <트래픽>을 만들 때도 쉽지만은 않았을 거다. <초콜렛>도 그렇고. 좋은 영화는 사람들이 그 프로젝트
자체를 믿도록 만드는 경향이 있다. ‘이 영화를 하면 나한테 뭐가 좋겠다’고 하는 경력관리 차원이나, ‘이 정도 폭발과 이 정도 특수효과가
어쩌구, 공연자들도 좋고’ 하는 것은 영화를 만드는 훌륭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 좋은 영화는 소재와 그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사람들 사이의
어떤 개인적인 연결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꼽는 최고와 최악이 있다면.
나의 올타임 베스트는 <선셋대로>다. 그래서 그 영화가 끔찍한 뮤지컬로 만들어졌을 때 아주 아쉬웠다. <선셋대로>는 내가 적어도
15번 이상 본 영화로, 인물과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 수 있는 작품이다. 첫눈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많은 재담이 들어 있기도 하다. 아무튼
내가 본 것 중 최고의 영화다. 반대로 최악의 영화는 모두 래지에서 최악의 작품상을 탔던 영화들이다. 조앤 크로퍼드의 삶을 그린 <사랑하는
엄마>(Mommie Dearest)는 너무나 진지한 주제를 다룬 좋은 책이었는데 웃기는 영화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스타가 되고 싶어 작품을
잘못 고른 전형적인 예로는 피아 자도라의 <외로운 여인>이 있다. 해롤드 로빈스의 괜찮은 소설을 각색한 건데 정말 환상적으로 건조하고,
쓰레기같이 불쾌한 영화였다. 그리고 역대 래지상의 챔피언인 <쇼걸>을 꼽겠다. 도무지 즐길 수가 없는 영화 중 하나로 그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진지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놀라웠다. 감독과 작가 등이 그 영화를 아직도 진지한 작품이라고 변호한다는 게 사실 우스꽝스럽고 시시한
일이다.
래지상은 올해로 21년째를 맞는다. 20년간 지속된 래지상이 영화계, 영화문화, 영화소비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나.
데미 무어의 경력이 몇년간 주춤했다는 게 우리와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또 소피아 코폴라가 다시는 연기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이유가 <대부3>로 한번에 두개의 상(최악의 신인스타와 최악의 여우조연상)을 받았기 때문이란 얘기를 들은 적은 있다. 래지상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려고 의도하는 건 아니지만, 스탤론의 경력에 문제가 생긴 것에 일익을 담당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더이상 래지상을 받지 않기를 바라는
목적에서. 그는 정말 좋지 않은 선택을 해왔다. 벌써 8번이다. 그는 분명히 특정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고, 아직도 후보에 오르긴 하지만
이제는 수상까지 가진 않는다. 그는 래지의 ‘화신’ 같은 사람이지만, 요즘 들어선 사람들이 별로 재밌어하는 것 같진 않다. 시상식 즈음에는
비디오 대여점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을 것이다.
20년 넘게 계속되면서 시상식의 규모와 권위도 점점 커졌다.
아카데미 시상식 전날 열리고, 그때는 세계 각국의 언론들이 아카데미 시상식 때문에 LA에 몰려드는 날이기 때문에 언론매체의 참여도가 높은
편이다. 기자들은 꽤 찾아오는데, TV의 경우 사람을 보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또 이 일을 해오면서 재미있다고
생각되는 점 또 하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우리가 실제 시상식을 한다는 것을 잘 모른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이 수상자가 누구인지도
알고, 기사도 보지만 실제 시상식이 벌어지는 건 잘 모른다는 인상을 받았다. 대부분의 언론기사는 솔직히 통신사의 기사를 참조한 거다. 와
<로이터> 등 3대 메이저 통신사들이 취재를 하니까.
매년 래지상을 개최하고 운영하는 데 드는 예산은 얼마나 되나. 그리고 이 행사로 돈을 벌지는 않는다고 했는데, 경비를 어떻게 조달하나.
운영하는 데 드는 돈은 어떻게든 마련된다. 래지상이 매년 계속 열리도록 유지하는 데는 약 2500달러에서 3500달러 정도가 든다. 경비는
래지상의 구성원들과 메일링 리스트에 있는 사람들이 내는 회비와 기부금으로 마련한다. 내 자신도 너무 즐기는 일이어서 계속 꾸려가고 싶고
나만큼이나 즐기는 핵심 구성원들이 있다.
전공은 뭐였나.
UCLA에서 영화/TV연구(Motion Picture/Television Studies)를 전공했고, 77년에 졸업했다.
아카데미나 골든글러브뿐 아니라 MTV영화상이나 각 도시의 비평가협회상 등 다른 영화상들과 비교해서 래지상이 갖는 의미를 정의한다면.
래지는 영화계 종사자들과 대중의 조합이 투표해서 뽑는 드문 상 중 하나다. ‘누구나’ 웹사이트 http://www.razzies.com
를 통해 참여함으로써 래지의 투표인단이 될 수 있다.
시상식 행사는 어떻게 이뤄지나.
올해 행사는 기본적으로 30분짜리 기자회견이 될 것이다. LA라디오의 명사인 빌 A. 존스가 진행하고, 후보들을 소개한 뒤 봉투를
열어 수상자들을 발표하는 것 외에 최악의 작품상에 오른 다섯 작품의 클립, 그리고 최악의 작품상 수상작의 특별 클립이 상영된다. 오랫동안
우린 오프닝곡과 여러 명의 시상자, 그리고 후보에 오른 모든 영화들과 배우들의 클립을 준비해서 ‘완전한’ 식을 거행해왔다. 올해는 후보들이
너무 끔찍해서 완전한 쇼를 행할 가치가 없는 것 같다.
황혜림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