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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독립영화 회고전 - <상계동올림픽>외
2001-03-28

<상계동올림픽><버려진 우산><칸트씨의 발표회><그날이 오면>

1983, 서울시, 국내건설 경기 부양을 목적으로 도시재개발 계획 추진.

“1988년 가을. <상계동 올림픽>을 보았다. 신도시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삶의 공간을 박탈당한

상계동 주민들의 모습이 화면을 장악하고 있다. 카메라는 가진 자들만의 것이 아니구나. 조그마한 희망을 움켜쥐기 위해 셔터를 누르고, 프레임

가득 세상을 안을 수 있는 거구나. 영화를 생산하는 사람들 그 한켠에 세상과 정면승부를 펼치며 현재를 통해 미래를 기록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아! 깨달음을 얻었다.”

<씨네21> 152호 내 인생의 영화(변영주) 중에서

“다큐멘터리 같은 경우 80년대는 찍기만 했지. 운동의 보조수단으로서 역할을 했고. (그때) 공부를 제대로 한 사람 아무도 없었어.

하지만 (90년대가 오고) 사회가 변했다고 해도, 늦게 철든 사람들은 이런 목소리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80년대 중심에 있지

않았던 사람들이 오히려 버틸 힘이 남았던 거지. 좌절의 정도도 약했을 테니까. 단편영화들이 사회적인 발언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들기도

하고, 그러면서 다큐멘터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이들이 생겼던 것 같아. 나야 개인적인 작업을 하고 싶기도 했지만, 푸른영상이 가능했던

것도 그게 아니었을까 싶어.”

90년대로 진입하는 다큐멘터리에 관한 김동원 감독의 술회 중에서

■<상계동 올림픽> 비디오/ 컬러/ 27분/ 1988년/ 김동원

국내 다큐멘터리 역사에서 뚜렷한 분기점이 된 <상계동 올림픽>은 다큐멘터리 작가의 윤리교범이다. 86년 재판에 필요한

자료를 남기려는 철거민들의 요청으로 카메라를 들고 상계동을 찾은 김동원 감독은 그곳에서 벌어진 비상식적인 일을 하나둘 수집했다. 그는 단순한

관찰자에 머물지 않았고 공부방을 운영하고 주민회의에 참가하면서, 찍으면서 찍히는 입장이 됐다. 그리하여 <상계동 올림픽>에는 흔히 생각하는

객관적 시점이 없다. 하루아침에 살던 집을 뺏긴 사람들에게 ‘객관적 시점’이란 ‘가진 자의 궤변’에 다름 아니기에 영화는 어느 철거민의

독백을 전적으로 신뢰한다. 다각적인 인터뷰 따위를 아랑곳하지 않으며 철거가 진행되는 현장의 야만스런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 것이다.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멀쩡히 살던 집이 하루아침에 폭삭 무너지는 걸 지켜봐야 했던 상계동 철거민들은 명동성당 농성을 거쳐 부천에 자리잡는다.

고속도로변에 작은 땅을 마련해 천막을 짓던 그들에게 또다시 불행이 닥친다. 부천시와 정부당국은 아이들 돼지저금통을 깨서 모은 돈으로 지은

천막촌을 다시 부숴버린다. 올림픽을 밝히는 성화가 고속도로를 지나는 1분간 허름한 천막촌이 보여선 안 된다는 이유로 그들은 간신히 움튼

희망의 싹을 무참히 밟아버린 것이다.

당시 사태가 워낙 야만스럽고 어처구니없는지라 진실을 보여주는 것만도 대단한 호소력을 발휘하지만 <상계동 올림픽>의 생생한 감동은 묘한 데서

드러난다. 명동성당 농성이 이어지던 지칠 대로 지친 어느 날 카메라에 천진한 어린이의 웃는 얼굴이 잡힌다. 꼬마는 천막 앞에 놓인 합판

뒤에 얼굴을 숨겼다 ‘나 여기 있지롱’ 하는 표정으로 환하게 미소짓는다. 찢어지는 가난 속에 사는 천국의 아이들은 피를 토하는 연설로 대신할

수 없는 진실을 보여준다. 이곳에서 저질러지는 악행이 초래할 결과에 몸서리치지 않을 수 없다. 철거반을 막다 쓰러진 어머니를 보호하려던

고등학생 아들이 분에 못 이겨 “억울해”라는 한 마디만 되풀이하며 몸부림치는 장면도 잊을 수 없다. 다큐멘터리로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묻는다 해도 <상계동 올림픽>은 그 답변으로 손색없다.

남동철 기자 [email protected]

■<버려진 우산> 16mm/ 12분/ 흑백/ 1985년/ 조진

원폭 피해자인 한 우산장수 가족을 통해 들여다보는 폭력의 실상. 단, 영화는 근접사를 통해 폭력의 끔찍함을 극대화하기보다 “대상과의 거리

유지를 통해”, “관찰의 기회를 좀더 많이 부여하기” 위한 시도들을 선보이고 있다.

■<칸트씨의 발표회> 16mm/ 35분/ 컬러/ 1987년/ 김태영

사진작가의 요즘 관심은 칸트씨다. 그의 행동에 호기심이 발동한 사진작가는 급기야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뒤쫓는다. 관찰을

계속하던 중 그에게 말을 건네기도 하지만 그는 칸트씨의 ‘모든 것’까지 알아차리진 못한다. 그동안 찍어놓았던 사진을 인화해놓고 기다리지만

결국 그는 오지 않고, 한 전경으로부터 그가 끌려간 상황만을 전해듣는다. 그가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실종자였다는 사실과 함께.

■<그날이 오면> 16mm/ 13분/ 흑백/ 1987년/ 장동홍

장산곶매 출신의 장동홍 감독이 서울예전 재학 당시 만든 단편영화. 한 전경의 회상을 통해 사회라는 구조 안에서 한 개인의 의식이 어떻게

주조되는가를 그린 작품. 현실감을 확보하기 위한 장치들이 세밀하게 놓이긴 했지만, 한 개인의 체험으로 축소 해석될 위험이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장동홍 감독은 이후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리면>으로 충무로에 데뷔했지만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