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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보다 앞선 몸의 언어로
2001-03-28

마임배우 남긍호

약동하는 개구리 같달까? 그는 한순간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앉았다 일어섰다,

손은 시종일관 그림 그리듯 허공을 휘휘 젓고 있었고, 눈썹, 눈동자, 코, 입, 볼은 저 천장 어디쯤 누군가가 실을 달아 잡아당기는 듯 제각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한가닥 남기고 삭발한 머리가 다분히 눈길을 끌 만한 마임이스트 남긍호(39)씨. 죽어가는 아내 정연 앞에서 마지막

‘선물’로 눈물젖은 공연을 펼쳐보이던 <선물>의 삼류개그맨 용기의 마임을 지도해준 사람이다. 3분 정도 정연의 죽음과 교차편집되는 이 공연은

“남녀가 어린 시절을 거쳐 사랑하고 죽어가기까지를” 담았다. “무대 위에 가림막을 일부 설치해서 상상의 공간으로 만들었어요. 마임적 상상력을

동원하는 거였죠.” 검은 장막은 때로는 바닷물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담벼락이 되기도 했다. 남긍호씨와 <선물>의 인연은 “라스트신에는 좀더

격있는 공연을” 원했던 제작진의 의도가 전해지면서 이루어졌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걸어다니는 재상영관”이었다. TV나 극장에서 영화 한편을

보고온 다음날이면 교실의 친구들은 “영화보다 더 리얼한” 그의 공연에 관객처럼 울고 웃었다. 당연히 대학도 연극영화과를 선택했고 경성대에서

연극배우를 꿈꾸었다. “문제는 사투리였어요.” 부산 토박이 연극배우는 영 대사극에 대한 자신이 붙지 않았다. 그리고 점점 관심은 입보다는 몸으로,

정극보다는 코미디로, 자연스럽게 마임으로까지 흘러오게 되었다. “마임의 언어는 말 이전의, 혹은 말을 초월한 것이에요. 연극이 소설이라면 마임은

시랄까? 인생을 단 4분 만에 표현해낼수 있는 압축적인 표현형태지요.” 파리로 건너가 ‘마임의 거장’이라 불리는 마르셀 마르소의 마임학교에서

수학한 뒤 파리8대학 연극과에서 실기석사과정을 마쳤다. 졸업논문이 ‘마임과 영화몽타주의 비교’였을 정도로 남긍호씨는 영화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욕망>(Blowup)이란 작품의 마지막엔 모두들 흰칠을 하고 테니스를 치는 장면이 나오거든요. 다분히 마임적

시도였어요. 영화의 기법을 마임에 차용한다든지, 영화 속에 마임을 넣는다든지 하는 시도, 재미있지 않나요?”

현재 극단 ‘호모루덴스’(유희하는 인간, 놀이하는 인간)의 대표이기도한 남긍호씨는

지원기금을 받아 정기적으로 발표공연을 하고 해마다 춘천에서 열리는 마임축제에 참가하기도 한다. 지금은 3기 연극동인들이 1년간 6편의 작품을

선보이는 ‘동인제’의 첫 번째 주자인 <의자들>이란 부조리 연극에 출연중이다. 광주 비엔날레 때처럼 가끔 CF를 찍기도 하고 행사에 참가해

공연료를 받기도 하지만, 고정적인 수입은 한국종합예술대학 연극원, 음악원을 비롯한 5개 대학에 출강해 벌어들이는 강사료가 고작이다. 그러나

“표현하고 싶고 관객을 만나고 싶은 욕망을 어쩔 수 없어” 무대를 떠날 수 없다는 남긍호씨. 9월쯤이면 제자들과의 워크숍이 열리고, 이 온몸에

촉수가 달린 집단은 ‘야구’라는 소재를 가지고 허공 속에 ‘돈 한푼 안 들인’ 꿈의 스타디움을 지을 계획이다.

글 백은하 기자 [email protected]

사진 오계옥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