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인물은 청춘남녀, 장소는 바깥 세계와 떨어진 외딴 곳, 섹스하면 죽는다, 살인마가 죽었다고 안심하지 마라. <컷>은 난도질 공포영화의 공식들을 정확히 지켜간다. <나이트메어>에서 <스크림>까지, 공포영화의 걸작들이 일궈낸 장면과 소품까지 일일이 ‘카피’하면서.
공포영화를 만들다 살해당하는 스탭들이라는 설정은 <스크림3>에서 등장했다. <스크림>의 그림자는 <컷>을 보는 내내 여기저기서 어른거린다. 주인공인 영화감독 라피의 실루엣은 <스크림>의 시드니와 겹쳐 보이며, <피의 축제>의 시작은 <스크림>의 오프닝과 똑같다. 살인마가 일격에 여자들을 죽이지 못하고 그들에게 가격당하는 것도 <스크림>의 가르침. 그밖에도 <컷>이 참조한 공포영화는 다양하다. 살인마의 무표정한 마스크는 <할로윈>이나 <텍사스 전기톱 살인마>의 그것이고, 마스크를 벗은 살인마는 <나이트메어>의 프레디다. 극중 역할인 가면을 쓰고 살인을 저지른다는 설정은 <아쿠아리스>에 이미 나왔다. 살인도구인 정원용 가위를 보면 <버닝>이 떠오른다.
그뿐이다. 수많은 장면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미안할 것도 없이’ 잔뜩 빌려와 뒤섞어 놓았을 뿐, 장르의 법칙은 그대로다. 웨스 크레이븐의 <스크림>이 난도질 공포영화의 규칙을 무너뜨리고, 재구성하며 걸작 공포영화를 창조한 것과 달리 <컷>은 공식 안에서 유희로 일관한다. <컷>은 단지 감독이 공포영화광이라는 것만을 증명한다. 80년대부터 끈질기게 공포영화를 봐왔다면, <컷>의 ‘컷’들을 보면서 추억의 공포영화 명장면을 반추해보는 즐거움은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세련된 <데스티네이션> 같은 공포영화를 보다 <컷>을 보면 아무래도 조잡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캐스팅에서부터 킴블 렌달이 80년대의 흔적을 되살리려는 것은 분명하다. 바네사 역을 맡은 배우 몰리 링월드는 존 휴즈 감독의 <식스틴 캔들스> <브렉퍼스트 클럽> 등에 출연하면서 각광받았던 ‘브랫 팩’의 선두주자였다. 힐러리 역을 맡은 호주 출신의 카일리 미노그 역시, 요즘 복귀한 80년대의 인기 아이돌 가수.
위정훈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