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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stage] 세일즈맨의 죽음
정재현 2025-01-17

한 남자가 무거운 캐리어와 그보다 더 무거운 노구를 이끌고 집 안으로 들어온다. 그의 이름은 윌리 로먼. 일평생 한 회사에서 세일즈맨으로 복무했고 나이든 아내와 장성한 두 아들을 두었지만 여전히 가장으로서 가계를 책임져야 한다. 아서 밀러가 1949년에 출판한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은 이미 고전이 됐다. 원전의 상징과 가치, 시대를 막론하고 무대에 다시 오르는 해마다 이 극이 가지는 동시대성에 관해선 수많은 평론가와 기자가 일찍이 정리한 바 있다. 그럼에도 정리해야 하는 한 가지는 극의 제목에 명시된 ‘죽음’이다. 세일즈맨 윌리를 포함해 작중 모든 등장인물은 일종의 죽음을 겪는다. 이들이 겪는 죽음은 물리적인 사망을 포함해 과거로부터의 단절, 관계의 변화 등 수많은 폐쇄와 분리로 은유 가능하다. 그렇다면 이들을 죽게 만든 요인은 무엇일까. 작중 모든 인물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지만 이들은 변화의 해일을 못 본 척하며 좋다고 믿는 과거만 맹종하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필멸한다. 그래서 거대한 죽음 앞에 모종의 깨달음을 얻은 캐릭터들이 이후 자기 앞에 놓인 미래에 어떻게 대응해가는지를 비교해보면 작품을 보다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배우 박근형에 대해 적고자 한다. 연극으로 배우 경력을 시작해 특히 브라운관에서 천하를 호령할 듯한 카리스마를 뿜어내던 그는 이번 무대에서 여전히 놀라운 연기를 보인다. 기실 말끔한 무대였다고는 할 수 없다. 첫 공연임을 감안해도 잘 전달되지 않는 대사도 있었고 무대 위 배우에게 강한 완력과 날렵한 동작이 요구되는 지점에서도 쇠잔했다. 하지만 이 배우가 무대 밖, 브라운관 밖에서 정직하게 통과한 세월의 더께가 윌리 로먼의 퇴로와 결합하는 순간 알 수 없는 애처로움이 배가된다. 결괏값과 별개로 그가 버티고 살아낸 시간이 배역에 틈입해 끝내 경외감을 이끌어내는지도 모르겠다.

기간 1월7일~3월3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시간 화·목·금 오후 7시30분, 수 오후 3시, 토 오후 2시·7시, 일·공휴일 오후 2시, 월 공연 없음 등급 14세이상관람가

사진제공 쇼앤텔플레이, T2N 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