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토크쇼에서 완벽한 영화에 대한 견해를 밝힌 적 있다. <텍사스 전기톱 학살>(1974)로 출발하는, ‘취향 고백이구나’ 싶은 리스트였지만 최소한의 조건을 전제했다. “완벽한 영화라는 건 모든 미학적 요소를 어느 정도 아우르는 작품입니다. 취향에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걸 깎아내릴 만한 단점을 찾기 어려운 영화들이죠.” 이후 타란티노는 <죠스>(1975), <엑소시스트>(1973), <애니홀>(1977), <영 프랑켄슈타인>(1974) 등을 언급하다가 마지막에 이걸 빼먹을 순 없다는 듯 다급하게 외친다. “<빽 투 더 퓨쳐>(1985)! 정말 완벽한 영화죠.”
타란티노의 단언과 달리 이 영화들의 단점을 꼽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동시에 굳이 그러고 싶지 않은 목록이다. ‘단점을 찾기 어렵다’는 의미가 단점이 없는 게 아니라 찾을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는 거라면 결과적으로 타란티노가 옳았다. 이건 완벽히 타란티노의 영화, 그러니까 타란티노에게 완벽한 영화들이다. 흥미로운 건 그가 꼽은 영화들이 70년대를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목록이 영화사 전체를 아우를 완벽한 선택이라 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쿠엔틴 타란티노가 가장 사랑했고 생기 넘쳤던 시기가 언제인지는 넉넉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생각했던 완벽과는 거리가 먼 리스트를 보며 새삼 ‘완벽’에 대한 생각에 잠긴다.
누구나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시기가 있다. 스펀지처럼 자극을 흡수하여 성장하는 시기. 취향과 세계관을 만들어나가는 시기. 대부분 10, 20대에는 주변을 유연하게 받아들인 후 천천히 자기만의 방을 굳혀나간다. 그렇게 완성된 완벽한 장소와 아름다운 시절은 마치 고향 같아서, 되돌아갈 때마다 휑하게 비어 있던 마음의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 든다. 가령 90년대 노래들을 반복해서 듣다 보면 새삼 그 시절이 나의 완벽에 속해 있음을 실감한다. 하지만 요즘 부쩍, 그 완벽했던 시절이 단지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한 예능프로 게스트로 나온 종교인은 인생의 의미가 무언지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없는 의미를 찾을 게 아니라 “스스로 그 일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기로 결심했는지를 물어야 한다”고.
10대, 20대라서 찬란한 게 아니다. 딱딱하게 굳은 세계를 조금 부드럽게 한 뒤 새로움을 받아들인다면 언제든 ‘지금’을 특별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비어 있는 퍼즐 조각을 찾는 것 말고도 완벽해질 방법이 있다. 주어진 퍼즐 조각의 형태에 맞춰 자신의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빚어나갈 때, 이윽고 빈틈없는 행복을 마주한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 방을 넓히고 취향을 확장해나가는 기쁨. (물론 피곤한 일이다.) 내 기억 속 <빽 투 더 퓨쳐>는 연말연시 혹은 명절 연휴 다시 보기에 완벽한 영화였다. 한마디로 편안한 마음으로 보기 좋은 추억의 영화들. 이번 설에는 익숙한 명작보다 낯설고 새로운 작품들을 좀더 찾아보려 한다. 아직 세상의 어둠이 가시지 않았지만 적어도 올해 설날은 행복해지기로 했다. 완벽한 연휴를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독자 여러분도 그랬으면 하는 바람으로, 여기 2025년 개봉을 앞둔 한국영화 신작들을 소개한다. 언젠가, 누군가의 완벽이 될 이 영화들을 기억해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