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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현실을 직시하는 여정, <힘을 낼 시간> 모임 별 음악감독
이우빈 사진 오계옥 2025-01-02

남궁선 감독의 <힘을 낼 시간>을 얘기할 때 모임 별의 음악을 빼먹을 순 없을 것이다. 모임 별은 2000년에 결성된 밴드이자 다방면의 시각디자인, 아트 디렉션 및 브랜딩을 겸하는 복합적이고 유동적인 집합체다. 2001년 <고양이를 부탁해>의 음악으로 충무로에 참신한 파열음을 낸 뒤 한동안 영화음악에서 멀어졌지만, 최근 남궁선 감독의 전작 <십개월의 미래>와 윤수익 감독의 <폭설> 등으로 다시금 관객들의 귀에 모임 별의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모임 별 특유의 이질적이고 현대적인 음악의 톤 앤드 매너는 <힘을 낼 시간>의 은퇴 아이돌 3인이 겪는 희망과 절망의 복합적인 여행길에 더할 나위 없는 동반자였다. 모임 별의 원년 멤버이자 <힘을 낼 시간>의 음악 작업을 주도한 조태상 감독(모임 별 내에선 ‘소장’ 직함으로 불린다)을 만나 작품의 음악 작업 전반과 함께 얼마 전 발매된 <힘을 낼 시간>의 O.S.T 앨범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 평소 모임 별의 음악, 디자인 작업과 영화음악을 만드는 방식엔 어떤 차이가 있었나.

모임 별의 음반 외에, 바깥에서 의뢰받아 만드는 프로젝트들과 본질적으로 다른 건 없었다. 의뢰인에게 제한된 정보를 전달받아 용역을 진행하는 식이다. 특히 영화는 시나리오와 최종 결과물이 워낙 다른 편이고, 음악이 영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패션쇼의 음악 연출 작업을 예로 들면 비트가 있는 전형적인 런웨이 음악을 사용하는 것보다 음악이 거의 없다시피하거나 노이즈만 넣더라도 그 시즌의 컨셉이 잘 드러나는 게 중요하다. 디자이너들에게도 너무 음악에 기대지 말라고 말하곤 하는데 영화음악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 <고양이를 부탁해> 이후 영화음악 의뢰를 많이 받았을 것 같은데.

영화음악을 한동안 멈춘 이유도 앞서 말한 맥락과 비슷하다. 당시에 <고양이를 부탁해>의 음반을 들은 분들이 모임 별의 음악을 새롭고 서정적이라고 느껴줬고, 유사한 종류의 음악을 많이 의뢰해주셨다. 하지만 그 영화의 음악은 딱 그 시기의 우리가 만든 결과물이었을 뿐이며 우린 더 전위적인 실험이나 탐구를 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무언가에 갇히거나 반복하게 되는 감각이 싫었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상업영화가 아닌 학생영화의 음악에 많이 참여했다.

- <힘을 낼 시간>의 의뢰인인 남궁선 감독에겐 어떤 방향성의 음악을 의뢰받았나.

특별히 원하시는 건 없었다. 다른 인터뷰를 보니 감독님이 모임 별 음악에 어울리는 영화를 만들고 싶으셨다더라. 아마 우리가 갖고 있는 비주류적인 감성이나 팝한 멜로디임에도 전위적인 요소가 묻어나는 방향성을 원하신 것 같다.

- 작업 기간은 어땠는지.

영화의 촬영 기간이 한두달 남짓이었던 터라 중간에 영상을 받아보거나 한 적은 없다. 촬영이 끝나고 어느 정도 러프한 편집본이 나왔을 때부터 본격적인 음악 작업도 시작했다. 편집 과정 중에 계속 감독님과 음악 작업물을 주고받으면서 진행했다. 아, 영화에서 수민과 사랑이 활동했던 그룹 ‘러브앤리즈’의 <FAVORITE>은 감독님이 촬영 도중에 급하게 필요하다고 요청해서 만든 곡이다. 모임 별의 멤버인 서현정씨가 솔로로 작업했던 곡을 살짝 아이돌 음악처럼 만들고 가사를 고쳐서 완성했다. 다른 노래 <Secret Lover>는 감독님이 현장에서 직접 아이폰으로 녹음해서 보내준 가사와 멜로디를 참고해서 만들었다.

- 세 주인공이 전면에 등장하는 작품이다. 인물마다 컨셉을 명확히 정해두고 작업했나.

등장인물 각각의 멜로디나 악기를 정해두진 않았다. 전반적으론 전자음이 명확히 들리는 동시에 어쿠스틱 기타를 교차하고, 명확히 재즈로 들리진 않되 재즈에 기반한 화성을 사용해 현대적인 느낌이 발현되길 바랐다. 관객들이 무의식적으로 세련된 음악이라고 느끼길 원했고, 보통 음악에선 잘 쓰지 않는 노이즈를 삽입하기도 했다. 반복되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반복되는 패턴을 집어넣어서 영화의 감정선, 속도에 맞추기도 했다. 기본적으론 영화에 맞게 기능적인 음악을 택한 거다.

- <힘을 낼 시간>의 O.S.T 앨범을 들어보면 필드 레코딩이나 긴 내레이션 등 기존의 모임 별 음악과 유사한 정체성이 느껴진다. 극 중 자연의 앰비언스소음이나 인물들의 대사가 음악 곳곳에 들어가 있다. 영화 개봉 전부터 계획된 앨범이었나.

그렇진 않다. 원래 음반 발매 계획이 전혀 없었는데 3~4주 전에 영화 홍보용 굿즈 차원에서 제작하기로 결정됐다. 그러다 보니 앨범의 완결성을 치밀하게 따지진 못했지만, 방향성은 뚜렷했다. 영화에 들어간 곡을 추리는 과정에서 영화의 핵심적인 대사들은 꼭 넣고자 했다. 영화를 보기 전에 우리 음악을 먼저 듣는 분들도 있을 테니 영화의 핵심적인 정서는 음악을 통해서도 전달되길 바랐다. 음악을 듣고 나서 극장에서든 OTT에서든 한분이라도 더 영화를 찾아봤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 음반 내에 유일하게 가사가 들어간 트랙은 마지막 트랙 <호수>다. 영화 개봉 전 모임 별의 음반 《우리 개》(Me & My Dog)에 실린 음악인데, 영화에선 엔딩크레딧에 가사 없는 버전의 연주곡으로 재생된다.

시기상 모임 별 음반에 먼저 실리긴 했지만, <힘을 낼 시간> 작업 중에 영화를 위해 만든 곡이다. 가사와 전체 멜로디가 나오기 전 반주만 듣고도 감독님이 무조건 영화에 쓰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엔딩크레딧까지 영화를 본 관객들에겐 가사의 정보량이 과할 수 있겠다는 판단으로 빼긴 했지만, <호수>의 가사가 영화의 상황과도 잘 붙겠다고 느꼈다. 어리고 힘들 때 만난 친구들이 끈끈한 것 같지만 시차를 두고 바라보면 결국 힘과 자산을 가진 사람들끼리 더 길고 풍성한 관계를 맺기 마련이다. 젊었을 때의 인연이 의외로 오래 이어지지 않는 그 상태가 영화와 맞아떨어지는 듯했다. 다만 그런 순간의 힘, “지금만으로 좋다”라는 점이 젊음의 한계인 동시에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한다.

“나와 너 사이엔 가식들이 없지. 흔해빠진 위선조차도. 그럼에도 우린 약속하지. 약속 따위 하지 말자고. 우리의 오늘이 잊혀진다 해도 지금이면 돼. 오늘의 마음이 지워진다 해도 어쩔 수 없어”

- 모임 별 <호수>

- <내가 여기에 있다>는 극 중 수민이 읊는 중요한 대사의 일부이기도 하다. 이 대사에 조응하는 선율과 질감을 꼭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대개 우리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괜찮다’며 자신을 조금씩 속이며 살아간다. 그런데 결국 삶의 밑바닥까지 가게 되면 실존적인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생각보다 생존과 실존은 붙어 있는 경우가 많으니까. 태희처럼 당장 카드값이 밀려서 ‘죽고 싶다’라고 느낀다면 이건 생존과 실존 사이의 고민인 셈이다. 세 주인공이 처한 상황도 비슷하다고 느낀다. 어떤 철학적인 고민이 아닐지언정 ‘내가 왜 여기 나와서 살고 있을까’라는 물음을 자신에게 던지고, ‘내가 여기에 있다. 나라는 사람이 여기에 있다’라는 절규를 읊는 일은 무척 가슴 아픈 동시에 수민에게 분명한 힘으로 작용할 굳은 선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대사가 나오는 장면이 매우 중요하다고 느꼈고, 이 곡만큼은 그 장면 전체를 품을 만큼 관객에게 각인되길 바랐다.

- <힘을 낼 시간>의 이야기를 개인적으론 어떻게 받아들였나.

<힘을 낼 시간>이 단순히 ‘힘을 내자’거나 희망적으로만 귀결되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느낀다. 세 주인공이 여행에서 일상으로 복귀한다 해도 결국 이전과 똑같은 현실을 마주할 것이다. 다만 그 삶에서 이때의 여행을 기억하며 어느 순간의 어려움을 극복할 순 있을 거다. 이런 차원에서 <힘을 낼 시간>의 이야기는 격려라기보다 현실을 직시하는 기회의 여정이라고 생각한다. 감독님과도 미리 대화를 나눴던 부분이다.

- 한동안 영화음악을 자주 맡진 않았는데, <힘을 낼 시간> 이후는 어찌할 예정인가.

앞서 말했던 것처럼 영화음악은 다른 프로젝트와 대비해서 노력, 시간, 자원 대비 그다지 반가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힘을 낼 시간>은 영화 자체로도, 그 작업 과정 역시 무척 좋았다. 이 영화에 참여한다는 기쁨을 진심으로 느꼈다. 그러니 앞으로 올 영화음악 제안에는 더 적극적으로 임해볼 생각이다.

음악 외 모임 별의 작업 일부

아틀리에 에르메스 브랜드 아이덴티티 개발, 그래픽·웹 디자인 등.

2021년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포스터, 브로슈어, 웹사이트, 굿즈 등 디자인.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커뮤니티비프 메인 포스터.

밴드 새소년 아이덴티티 리브랜딩, 팝업스토어 설계·시공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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