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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 리뷰] <오징어 게임> 시즌2
김소미 2024-12-27

*<오징어 게임> 시즌2 에피소드1~7 전체를 포괄하는 묘사가 있습니다.

넷플릭스 역대 최고 히트작의 귀환이 드디어 이뤄졌다. 2021년 콘텐츠 시장을 강타했던 <오징어 게임>의 속편은 첫 시즌의 성공을 뛰어넘으려 하기보다는 자신만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는 데 주력한다. 시즌2에선 홀로 살아남은 성기훈(이정재)이 다시 게임의 무대로 향한다. 456억원이라는 엄청난 상금을 움켜쥐었으나 역설적이게도 그에게 화폐의 가치는 무의미해졌다. 밤마다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남자는 을씨년스러운 모텔을 개조해 작전의 근거지로 삼고, 대부업 용역들을 풀어 리크루터(공유) 찾기에 나선다. 시즌1에서 형의 존재를 확인한 경찰 황준호(위하준)도 합류했다. 시즌2의 이야기는 리크루터가 성기훈을 찾아와 새로운 게임 초대장을 건네면서 급격한 전환점을 맞는다. 게임의 수뇌부를 처단해 더이상의 살육을 막고자 하는 기훈은 위치추적기를 달고 게임에 참가하지만 곧 외부와 차단되고 만다. 동시에 준호와 일행은 배 위에서 해협을 수색하며 비밀의 섬을 찾는 데 주력한다.

새 시즌의 가장 큰 미덕은 ‘우리가 이미 죽음의 게임을 알 때 어떻게 행동하겠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성숙한 답변이다. 지난 게임의 우승자인 성기훈이 다른 참가자들의 생존을 돕는다는 설정 자체는 예측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성기훈과 같은 단 한 사람의 존재가 참가자들의 태도를 전반적으로 바꾸어놓는다는 점이 시즌2의 진정한 변화다. 다시 반복되는 첫 관문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에서 팔로 입을 가린 기훈이 “얼음!”을 외치며 참가자들을 호령하고, 살아남은 이들은 몸집이 큰 순서대로 서로의 앞을 막아주는 기차놀이 대형을 만들어 피해를 최소화하는 장면이 대표적인 예다.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 소개되는 이 시퀀스는 시즌2가 지향하는 바를 일찌감치 상징적으로 알린다.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독려하는 인물들의 잠재적 역량과 협동심에 보다 초점을 맞춘 시즌2는 자본주의에 감염된 인간의 타락한 면모를 위악적으로 들추는 일에만 골몰하지 않고 극한상황 속에서 인간적 감정이 어떻게, 얼마나 발현되는지 침착히 탐구한다. 새롭게 등장하는 게임들 역시 이에 복무한다. 5인조로 팀을 구성해 한 사람씩 딱지치기-비석차기-공기놀이-팽이돌리기-제기차기를 완수해서 제한 시간 내 운동장을 한 바퀴 도는 게임, 동요 <둥글게 둥글게>에 맞춰 인원수대로 짝짓는 게임 등 반드시 ‘함께’ 살아남아야만 하는 딜레마가 더욱 커졌다.

캐릭터의 균형감 있는 배치가 돋보이는 가운데 게임 참가자들의 관계성이 극대화된 점도 눈에 띈다. 수많은 피해자들을 양산한 투자 유튜버 333번 명기(임시완)와 그의 아이를 임신한 222번 준희(조유리), 도박 빚을 갚기 위해 게임에 참가한 007번 용식(양동근)과 그의 노모 149번 금자(강애심) 등 이미 관계의 두께를 지닌 캐릭터들이 게임장에서 재회하는 형국이다. 기훈의 오랜 친구 390번 정배(이서환)가 주요 동료로 합류했고, 그와 해병대 출신의 의리를 다지는 넉살 좋은 청년 388번 대호는 배우 강하늘이 맡아 겸손한 연기를 펼쳤다. 트랜스젠더, 체구가 작은 여성, 노모와 아들, 무속인 등 약육강식 시스템에서 배제된 이들이 자연스럽게 한팀을 꾸려 서사의 주요 선상으로 나아가는 과정도 그려진다. 특히 배우 박성훈이 연기한 특전사 출신의 트랜스젠더 120번 현주는 이번 시즌에서 가장 미덥고 매력적인 캐릭터라 할 만하다. 아픈 딸의 치료비를 구하기 위해 게임에 참가한 화가 경석(이진욱)과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출신의 래퍼 타노스(최승현), 그를 따르는 기회주의자 남규(노재원) 등도 적소에서 등장한다. 배우 박규영이 연기한 노을은 북에 두고 온 아이를 되찾기 위해 생계에 몰두하는 탈북민 출신 여성으로, 게임 진행 요원의 시선을 한층 구체적으로 펼쳐낸다. 한편 시즌1의 일남(오영수)과 같이 다크호스로 기능하는 이는 001번으로 게임에 나타난 프런트맨(이병헌)이다. 기훈의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그를 견제 또는 조력하는 영일(이병헌)의 관찰자적 시선이 시리즈 내내 효과적으로 병치되면서 게임장 내부와 외부, 영일과 프런트맨이라는 이중의 정체성이 서사의 저류에서 끊임없이 긴장감을 형성한다.

피는 더 많이 흘리지만, 블랙코미디적 색채도 더욱 짙어졌다. 게임 장면의 클라이맥스에서 음악이 전면에 나서는 몇몇 몽타주 시퀀스는 한층 역동적이고 아이러니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본게임 이후 게임의 속행과 중단을 가르는 OX 투표가 이어지는 서사의 패턴이 굳어질 무렵엔 기훈과 일당이 숙소를 탈출해 수뇌부의 첨으로 향한다. 서바이벌에 순응하길 멈추고 시스템을 공격하는 시즌2 후반부의 전개는 액션 장르로의 전환을 통한 환기라는 측면에서 효과적인 동시에, 작품의 궁극적인 방향성을 설정하는 데 일조한다. 요컨대 이는 이미 456억원을 손에 쥐어본 주인공의 내면이 재편되면서 시리즈의 방향성도 미묘하게 달라진 결과다. 상금보다는 생존이, 자신의 생존만큼 타인의 생명이 중요해진 사람의 세계에서는 ‘쓸모없는 존재’들이 서로의 쓸모를 발견하는 뭉클한 연결이 일어난다. 전세계의 피드백을 효과적으로 흡수한 <오징어 게임> 시즌2는 말초적인 자극과 신파의 전략적 축소라는 현명한 목표에 도달한 듯싶다. 동일한 컨셉에서 주제의 예각을 한층 첨예하게 세워나가는 작가적 시도로서도 성공적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힘입은 지난 시즌이 성취했던 전례 없는 파급력을 시즌2가 경신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럼에도 이번 작품이 감정과 장면의 활력, 자본주의 서바이벌 우화의 기능에서 진일보한 것만은 분명하다. 넷플릭스 속편들의 연이은 부진으로 많은 기대와 우려를 한몸에 받았던 황동혁 감독이 두 번째 게임의 묘수만큼은 확실히 고안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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